2024.11.10 새로운교회 주일예배 ‘행복하십니까?'(전도서 1:1-7) – 김도완 목사

11월 9, 2024

Book: 전도서

전 1:1-7/행복하십니까?

241110 이웃초청잔치주일

1. 행복의 조건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참고할 만한 조사가 있습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PEW)리서치센터에서 17개국 국민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대부분이 가족, 친구, 건강, 직업 등이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풍요도 빠지지는 않았는데요, 유독 한국만이 가장 많은 사람이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겠지만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통찰을 주는 책이 있습니다. 호스피스 전문가로 임종을 앞둔 1,000명에게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을 듣고 오츠 슈이치가 쓴 책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입니다. 흥미롭게도 흔히 젊을 때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한 성공, 명예, 풍요를 더 갖지 못 한 것을 후회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가장 많이 후회하였을까요? 많은 이가 일상의 삶을 바르게 살지 못 한 것이라 답하였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 못 한 것, 조금 더 겸손하지 못 한 것, 친절을 베풀며 살지 못 한 것, 나쁜 짓을 한 것, 건강을 소중히 여기지 못 한 것 등이었습니다.

2. 생각하지   삶의 의미

그런데 이 스물다섯 가지 후회 중 목사인 저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 한 것’입니다. 젊은 교우들 가정의 새생명 탄생을 축하하는 동시에 연로한 교우의 마지막을 송별하는 특권을 누리는 저로서는 사람들이 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 할까 의아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무데서도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안락하게 보내기를 바라며 바쁘게 생활하느라 삶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이며 이 삶 이후에는 정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 하는 현대인에게 그 누구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도, 답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잘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여러분을 갑자기 집짓는 공사현장에 불러내어 벽돌을 부지런히 쌓으라고 시킨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멈추어 서서 그에게나 주변사람에게 ‘잠깐만요, 이건 누구 집입니까? 왜 짓는 것입니까? 누가 시작한 거예요? 나를 왜 여기 불러낸 거지요? 이 집을 다 짓고 나면 어떻게 되나요? 나는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아니면 내가 이 집에서 살 수 있는 건가요?’라고 가장 중요한 그 어떤 질문하지도 않은 채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벽돌을 나르지? 쉬는 시간에는 휴게소의 햇볕 드는 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식사시간에는 남들보다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을까?.’라고 하며 벽돌만 나를 분이 계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인생이란 집짓기를 하면서는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살고 일하는지, 이 모든 수고의 결과는 무엇인지 묻지도, 답하지도 않은 채 좀 더 큰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잘 먹고 사는 것만을 구하면서 혹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한국말 바보는 ‘밥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밥보란 배부르게 밥 많이 먹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는 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배부르고 편안하고 부유하게 사는 것만을 구하며 사는 이들이라면 밥보와 무엇이 다를까요?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무한 일인지를 깨달은 이의 고백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전도서입니다.

3. 허무한 인생

전도서의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라고 합니다.

(전 1:1)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다.

그는 인간이 흔히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누린 사람입니다. 전성기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권력과 무역을 통해 모은 엄청난 부와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가졌습니다. 부와 쾌락과 권력에 더해 그는 일으킨 사업마다 성공을 거두고 국가를 크게 부강시키는 큰 성취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오만한 졸부나 권력자 쯤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여러 분야를 연구한 학자와 철학자로서 지혜도 구하였습니다. 이 전도서도 그가 남긴 기록 중 일부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모든 조건, 의미있게 살기 위한 모든 조건을 일생을 투자해 탐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이 책 전도서입니다. 그 결론이 2절입니다. ‘허무하고 허무하고 또 허무하고 허무하니 모든 것이 허무할 뿐’입니다.

(전 1:2)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이루고픈 것을 다 성취했지만 행복하지도, 의미있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전 1:3)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왜 그럴까요? 인생이 너무나, 너무나 짧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전 1:4)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현대과학은 우주의 역사를 138억 년이라고 합니다. 그 긴시간에 미루어볼 때 인생이란 눈 깜빡할 사이보다 짧은 찰라와도 같습니다. 또한 우주의 크기는 지름이 466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서 466억년을 달려야 관측가능한 우주의 끝에 도달합니다. 이마저도 관측가능한 거리이고 관측불가한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거대해 보이는 지구마저도 태평양 바다가 우주라면 현미경으로나 들여다볼 수 있는 플랑크톤 하나보다 작습니다. 이토록 작은 존재인 인간이 이토록 짧은 인생을 어떻게 의미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전도자는 두 가지 지혜를 들려줍니다.

4. 일상을 소중히 여기라

첫 번째 지혜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라’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성공, 풍요, 성취의 욕망을 좇느라 보석처럼 소중한 매일의 일상을 감사하고 누리지 못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지혜입니다. 마치 운전을 빨리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행복은 목적지에 더 빨리 도갈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가는 모든 순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결말부에 가서 이렇게 권합니다.

(전 9:7) 그러니 네 몫의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술을 마시며 기뻐하여라. 이런 일은 하느님께서 본래부터 좋게 보아주시는 일이다.
(전 9:8) 언제나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전 9:9) 하늘 아래서 허락받은 덧없는 인생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끝날까지 즐기며 살도록 하여라. 이것이야말로 하늘 아래서 수고하며 살아 있는 동안 네가 누릴 몫이다.

이는 삶을 긍정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음식을 먹고 술과 마시는 즐거움을 감사하고 누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건강때문에, 형편때문에 이를 못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말입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을 매일의 일상의 삶을 포기하거나 게을리 낭비하지 말고 그 가치를 깨달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 모든 순간이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에게 주신 행복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달콤한 음식을 맛보고 음악에 취하고 미술품을 감상하고 땀흘려 일하고 사랑하는 이의 눈빛을 마주 볼 수 있는 여러분의 매일 매순간은 황금을 주고도 못 사는 보석입니다. 이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5. 영원을 바라보라

두 번째 지혜는 ‘영원을 바라보라’입니다. 이 지혜는 이토록 소중한 일상이 너무나 짧게 끝난다는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이 짧은 생애 너머의 새로운 삶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12:1은 말씀하십니다.

(전 12:1)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삶은 금방 젊고 좋은 시절이 지나가고 노화와 질병과 시련으로 생의 무대를 내려와야 할 때가 옵니다. 그 때서야 삶의 의미와 진실을 이해하려 하면 늦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더 늦기 전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죽은 후에 무슨 다른 생명이 있겠어? 이 진리가 믿기 힘든 분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의 신비를 들여다보면 성경의 이 진리를 외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이 작은 씨앗 하나는 25센트 동전보다 작습니다. 이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높이 100m, 둘레가 수십 m에 달하는 자이언트세코이아나무가 됩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같은 일이 가능합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식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이 자리에 앉아 목사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없을까 판단합니다. 이 생명과 의식은 어떻게 될까요? 육체의 죽음과 함께 영원한 무와 암흑속으로 소멸됩니까? 과학자들은 질량보존의법칙과 에너지보존의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이 우주 안의 질량은 단 1g도 늘거나 줄지 않는다 즉 물질은 갑자기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법칙입니다. 에너지보존의법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주 안의 에너지는 그 형태만 변할 뿐 결코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항상 일정하게 보존된다는다는 뜻입니다. 물질도, 질량도, 에너지도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과 의식은 소멸됩니까? 물질은 소멸되지 않는데 의식은 소멸된다는 주장이 얼마나 비합리적입니까? 오히려 물질이 소멸되지 않는다면 의식은 더더욱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 합리적이 아닌가요?

성경은 인생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의미도 모른 채 우주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창조되었으며  지금 우리의 삶이 전부가 아니며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 준비되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그 창조주를 아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는 길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요 3:16은 이렇게 그 분에 대해 선언합니다.

(요 3: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서 죄와 악을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연약함과 죄를 모두 예수님은 대신 지시고 값을 치르셔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연약함을 극복합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이 끝난 후 영원한 부활의 새생명을 얻습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의 모든 분들을 이 영원한 생명으로 초청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여러분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여러분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일상의 허무에서 벗어나 보석같은 오늘을 누리고 준비된 영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선물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이와 함께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