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8 새로운교회 주일예배 ‘동굴 속의 기도'(사무엘상 22:1-5) – 김도완 목사

12월 8, 2024

Series: 주일예배

Book: 사무엘상

삼상 22:1-5/동굴 속의 기도

241208 주일설교

1. 억울하고 원통한 고난

오늘 본문은 다윗의 생애 중 가장 힘겨웠던 시간, 도망자생활 10년의 한 대목을 다룹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며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된 후인 기원 전 1020년 경부터 1010년까지의 기간입니다. 그가 군대장관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 것은 그의 인기를 시기한 사울의 암살시도 때문이었습니다. 10년 동안 다윗은 유대지방의 광야, 황무지, 숲, 동굴 등을 전전하고 모압과 블레셋에 망명하는 등 온갖 고초를 다 겪었습니다. 지도의 파란색이 초기 도피경로이고 붉은색이 중기 그리고 자주색이 후기의 도피경로입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에 망명하려다 죽을 뻔하고 다시 도망쳐 숨은 아둘람굴, 모압망명 그리고 헤렛수풀로 이어지는 초기도피경로 중 일부입니다.

지도를 보면 얼마나 고단한 도피생활이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도망자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루 말로 하기 어렵습니다. 왜 이 어지러울 정도로 이 곳 저 곳으로 도망다닙니까? 한 곳에 오래 머물면 꼬리가 밟히기 때문입니다. 늘 언제 사울의 암살특공대가 뒤를 칠지도 몰라 한 시도 마음을 놓고 하룻밤도 발 뻗고 편안히 잘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니 사람들이 가지도, 살지도 못 하는 곳 광야에서 숨어지내야 합니다. 낮에는 일사병에 걸리는 태양과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에, 들짐승의 위협과 굶주림, 온갖 벌레, 뱀, 짐승들이 자는 동굴이나 돌무더기 사이에서 잠드는 괴로움이 일상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과 복지는 꿈도 꿀 수 없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겪은 분들이 혹 계시나요? 렌트비를 못 내서, 신분문제가 해결이 안 되서, 비지니스가 계속 적자가 나서, 가족이 아픈데 병원갈 돈이 없어서, 외롭고 우울한 데 말할 데가 없어서 괴로워 보셨습니까?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더라도 그리고 지금도 있다 하더라도 결코 헛되고 잃어버린 시간이 아닙니다. 왜입니까? 선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상처입은 성도를 귀하게 쓰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쓰십니까?

2. 상처입은 치유자 

첫째, 치유자로 쓰십니다. 1절을 보면 블레셋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유대땅 광야로 도망쳐온 다윗의 소식을 들은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삼상 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아마 사울이 다윗의 가족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박해를 견디다 못한 다윗의 가족이 다윗을 찾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찾아온 것은 가족만이 아니었습니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울 치하에서 환란을 당한 자, 빚진 자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 다윗에게 모여들었습니다. 빚진 자는 사울 치하에서 권력자들에게 착취당해 가족을 뺏기고 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자들을 말합니다. 이 억울한 이들이 갈 데도, 호소할 데도, 도망칠 데도 없어서 눈물만 흘리다가 다윗의 소식을 듣고 그에게 피해 몸을 의탁한 것입니다. 홀로 도망쳤다가는 사울에게 잡혀 죽거나 광야에서 객사하기 십상이었을 그들이 군대장관으로서의 경험과 리더십, 능력을 의지하여 그 그늘 아래서 생명을 보존하고자 피해온 것입니다.

아마 다윗이 도망자가 되지 않고 계속 군대장관으로 승승장구했더라면 결코 미쳐가는 사울 치하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만날 일도, 돌볼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둘람굴이 상처받은 자들의 피난처가 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자신이 사울의 광기에 피해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니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불쌍한 이들을 돌볼 사명을 얼떨결에 떠맡은 것입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억울한 백성을 돌보기 위해 다윗에게 이런 억울한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온갖 억울한 일과 섭섭한 일과 괴로움을 당합니다. 우리 자신만 보면 그것이 억울하고 이해가 안 되고 분통이 터지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거기에는 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처럼 상처받고 마음이 깨진 이들을 돌아보라는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우리를 통해 이웃의 상한 마음도 고치십니다. 우리에게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사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새로운교회는 아둘람굴처럼 마음이 상한 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 아래 모여들어 마음이 상한 이웃을 고치는 은혜의 공동체로 부름받았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이 모여드는 아둘람굴처럼 마음이 상한 이들이 모여들어 치유와 구원을 경험하는 새로운교회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3. 치유받은 개국공신

둘째, 선하신 하나님은 상처입은 이들을 하나님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쓰십니다. 다윗의 10년 도망자생활이 끝난 이유는 주전 1010년 경 그가 헤브론에서 다윗왕국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 왕국은 얼마 후 사울왕국과 통일하여 이스라엘왕국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기로 손꼽히는 통일이스라엘왕국이 되고 다윗은 그 시조가 됩니다. 이 때 다윗과 함께 개국공신으로 맹활약한 이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아둘람에 모여든 400명의 도망자들입니다. 사무엘하 23장 전체에 그들의 활약상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삼하 23: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선하신 하나님은 왜 상처받은 도망자들을 치유하셔서 위대한 왕국의 개국공신으로 쓰십니까? 그 이유는 그래야 그들이 상처받고 서러운 이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귀족학교만 다니다가 아버지 기업을 물려받은 다이아몬드수저 재벌 3세가 렌트비를 못 내서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날까 초조하고 불안한 서민들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홈리스로 살다가 성공한 기업가는 배고픔과 추위와 서러움이 뭔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 10년의 도망자생활의 고초를 겪지 않고, 사울 밑에서 편하게 살던 관리들과 함께 정권을 차지했다면 그도 제 2의 사울이 되어 약자들의 고통에 둔감하고 오히려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제 2의 사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도망자 생활이 다윗을 또다른 폭군이 아닌 이스라엘역사에 가장 위대한 성군 다윗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야의 족보를 묘사할 때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 할 만큼 이스라엘사람은 그를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다윗이란 이름이 얼마나 사랑받습니까? 영어이름을 데이빗을 쓰는 분들 손들어 보세요.

다윗이 고난을 통해 사울과 달리 약자를 돌아보는 하나님백성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갔다는 사실을 삼상 23장의 한 사건이 알려줍니다. 그가 헤렛수풀에 숨어지낼 때 근처의 블레셋과 접한 유대땅의 그일라란 타운이 블레셋인들에게 약탈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삼상 23: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그러자 부하들이 말립니다.

(삼상 23: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우리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목숨을 걸고 다른 마을을 돕습니까? 그들의 문제는 왕인 사울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시고 우리는 우리 안전이나 지킵시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삼상 23: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결국 그는 블레셋을 물리치고 그일라를 구원합니다. 다윗의 마음이 이러했기에 자신을 죽이러온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오히려 살려주었습니다.

(삼상 24: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4.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도

다윗과 아둘람공동체가 고난을 당하면서도 원수에게 복수하는 제 2의 사울이 되지 않고, 광야를 떠돌면서도 약자를 약탈하는 산적이 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상한 자들을 환대하고 그들을 돌아보는 거룩한 공동체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믿음은 그가 굴에서 부른 찬송에 잘 드러납니다. 시 57편은 다윗은 사울을 피해 숨은 굴에서 지은 시입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이 굴 주변을 헤집고 다닐 때 무엇이라고 노래합니까?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두려움을 주님께 다 아뢰고 간곡히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고 노래합니다.

(시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마음이 어떻게 확정되었다는 말입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심했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을 죽이려 칼을 휘두르는 저 원수 사울을 미워하고 복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고백입니다.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이 고난을 통해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결심했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충만한 영광과 기쁨에 사로잡혀 찬송을 터뜨립니다.

(시 57: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57: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시 57: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고난은 우리를 패배자로 만들지 못 합니다. 상처가 우리를 괴물로 만들지도 못 합니다. 불신앙이 우리를 쓰러뜨리고 괴물로 만듭니다. 신실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와 사랑의 삶으로 찬양하는 성도는 상처난 이웃을 치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하나님나라의 개국공신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