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1 새로운교회 주일예배 “다시 사신 왕”(마가복음 16:1-20) – 김도완 목사

6월 4, 2024

Book: 마가복음

마가복음 16:1-20/다시 사신

240331 부활주일

1.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서로에게 축복합시다. 우리의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교회가 영원히 외칠 메시지가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을 왜 이렇게 즐거워합니까? 이 부활로 주님이 증명하신 진리 때문입니다. 그 진리란 무엇입니까?

첫째,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선포하셨을 때 적대자들은 이것이 신성모독이라고 공격했습니다.

(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당신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부활을 부정하려 합니다. 부활을 부정하려고 여러 가지 가설을 만들어냈지만 그 어떤 가설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 안팍의 다양한 기록과 정황과 증인들의 삶은 부활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부활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 기쁨을 모두에게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여러분이 만난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대속하신 십자가의 능력

둘째, 부활은 십자가에서 실제로 속죄가 이루어졌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이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른 대속의 제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니, 정말 예수님 당신이 죽는데 내 죄가 사함받는단 말이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 죄를 대신 질 수 있단 말이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오? 그런 일이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당신은 부활로 증명하셨습니다. 부활의 당신의 모든 약속과 선언이 공수표가 아니라 진리임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만난 모든 이들은 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립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든 죄가 남김없이 다 사함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속죄의 효력은 과거에만 해당하는 것도, 현재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속죄의 능력은 과거와 현재를 거쳐 영원까지 이른다는 말입니다.

(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분을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고 후회스럽고 비참하게 만들었던 모든 죄가 영원토록 사함받은 것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3. 영원한 생명의 약속

셋째, 부활은 영생의 약속이 진실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첫열매가 되셔서 사망이 정복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우리도 사망을 극복하고 부활의 둘째, 셋째 열매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오빠를 잃은 마르다, 마리아 자매에게 이 사실을 약속하시고 나사로를 살림으로 그 약속이 진리임을 증명하셨습니다.

(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에게는 당신이 직접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그 약속이 진리임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죄악으로 병든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우리는 노화, 질병, 상처로 고통을 받습니다. 마음도 역시 오염되어 근심, 걱정, 시기, 질투로 고통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깨끗한 거룩한 새마음으로 썩지도 죽지도 않는 새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날의 영광과 기쁨은 오늘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깡그리 잊게 만들고도 남을 만큼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한 복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생명이 끝나야 하는데 누가 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전재산인들 주기를 주저하겠습니까? 이 누추한 몸을 입고 1년 더 사는 것도 그렇게 큰 일이라면 죽지도 썩지도 않는 새몸과 새마음으로 참된 영광과 사랑 가운데 영원히 산다면 어떤 것을 아까워하겠습니까? 무엇과 그 복을 바꿀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 소망을 사야하지 않을까요?

(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이 소망을 굳게 붙들고 부활의 영광을 반드시 맛보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새창조의 시작

넷째, 부활은 오늘 우리의 삶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었음을 증명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당신을 만나는 모든 이의 삶을 새롭게 만듭니다.

(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부활의 주님은 당신을 만나는 이들에게 그 마음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새마음을 만드십니다.

(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님을 모신 성도는 굳은 마음이 제거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 하는 딱딱한 마음, 형제, 자매를 긍휼히 여기지 못 하는 딱딱한 마음, 원수마저 용서하지 못 하는 딱딱한 마음을 성령님은 사랑의 망치로 부수어 사랑과 긍휼과 용서의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이 새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는 새로운 인생을 삽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과거의 우리 삶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보잘것없고 후회스럽더라도 이제는 부활의 주님의 손에 의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어 성령님의 선하신 인도로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이 새삶을 선물하신 주님과 함께 새출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

이런 놀라운 구원을 하나님은 도대체 왜 우리에게 베푸십니까? 우리는 죄짓고 실수하고 어리석고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도대체 왜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 그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주님이 부활의 첫목격자로 삼으신 제자입니다. 그는 일곱 귀신을 내어쫓아주신 여인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주님은 우연히 그녀를 먼저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일부러 그녀를 택하셔서 먼저 만나주신 것입니다.

(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먼저 보이시니

고대세계에서 여자는 사람수로 계산되지도 못 한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다. 교회가 자유인과 종의 구분이 없고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다고 세상에 외치기 전까지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여자의 증언은 법정에서 채택되지도 못 했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통제 아래, 결혼하여서는 남편의 통제 아래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여자 중에서도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라면 얼마나 멸시와 천대를 받았을까요?

예수님은 부유하고 존경받는 아리마대 요셉을 당신의 첫증인으로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얼마나 모양새가 나고 그 증언이 권위가 있었겠습니까! 베드로나 요한을 첫증인으로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그들이 교회를 세울 때 얼마나 더 권위를 얻었고 수월했겠습니까! 한밤중에 당신을 찾아왔던 바리새인 니고데모를 첫증인으로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얼마나 신뢰를 얻었겠습니까! 그런데 고르고 골라서 미쳐날뛰던 여자라니요! 얼마나 그 선택이 상식을 벗어나 있었으면, 이 기록이야말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묘사가 창작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로 꼽힙니다. 당시 누군가 이야기를 지어내려고 했다면 절대로 첫증인을 여자로, 그 중에서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여자로 고를 리 없었으리라 모두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선택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온인류의 소망이 될 부활의 첫증인이 되는 영광을 억만금이라도 주고 할수만 있다면 모두가 얻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기껏 투자 잘 한다고 워렌 버핏과 점심 한끼에 1,900만 달러를 내고 우주선 타고 하늘에서 지구 한번 내려다보겠다고 5,500만 달러을 낸다는데 진짜 죽음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라면, 그래서 그 분이 주시는 부활을 받아누리는 자리라면 1,000, 1억 조 달러인들 아까울까요! 그런데 이 영광의 자리를 예수님은 미쳐서 경멸받고 무시받던 여자에게 주셨습니다. 왜요? 주님이 원래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멸시받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부활의 증인으로 선택받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경건해서도 신실해서도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긍휼히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긍휼을 입어 부활의 증인으로 택함받았습니다. 이 긍휼을 입어 부활의 소망을 받았습니다. 이 긍휼로 인해 영생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큰 긍휼인지요!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막달라 마리아가 만난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고 온 세상에 전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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