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36-43/아름다우신 하나님
240414 주일설교
1. 아름다운 여인
인터넷을 보니 미국 어느 연예매체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100명을 뽑았다는데 한국인이 12명이나 들어갔다고 자랑스러워 하더군요. 아마 K팝과 K드라마 덕분이겠지요. 하지만 엉터리 순위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반드시 들어갈 여인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우리 교회에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자매인데요, 꿈에 천사가 이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진희던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천사가 그러던데…
당연히 이 리스트는 매년 크게 바뀝니다. 새로 흥행한 영화, 노래, 드라마의 예쁜 젊은이가 리스트에 들어오고 그러면 밀려난 이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더 안간힘을 써야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뽑는 아름다움은 그 덧없이 짧은 유효기간 때문에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진정 아름다운 여자는 누구입니까? 참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새로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여인이 한 명 있습니다. 그녀는 욥바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성은 다, 이름은 비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다비다입니다.
본문은 초대교회가 탄생하고 얼마 후 이스라엘의 해안평야지대의 항구 욥바에 형성된 제자공동체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람어로 다비다인데 헬라어로 번역하면 도르가 곧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준으로 결코 아름답다 하기 힘듭니다. 바느질을 하는 여자로 부유했던 것도 아니요, 병들어 죽었다는 표현에는 특별히 젊다는 묘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나이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난하고 나이 많은 여자, 분명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이름처럼 진정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왜입니까?
2. 아름다운 주님을 닮았기에
첫째, 그녀는 아름다우신 주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면에서 아름다우셨습니까? 피트니스를 열심히 한 젊은이처럼 우람했나요? 영화배우나 모델처럼 잘 생기고 늘씬했나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이사야서는 메시야를 가리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외적으로 보잘것없는 분이었다는 말인데 그 몸으로 많은 고초까지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름다우십니까? 그 분은 섬기시는 분이었습니다. 주님은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주와 스승이셨지만 스스로 낮아지셔서 제자들을 섬기시는 분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 주심으로 섬기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외적으로 보잘 것 없어 보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비다는 바로 이런 주님을 닮았습니다. 그녀 역시 외적으로는 부유하지도, 젊고 예쁘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섬김의 여인이었습니다.
(행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라.
그녀는 선행과 구제를 그 누구보다 많이 했습니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지않은 과부를 찾기가 어려울 만큼 말입니다. 섬기는 이는 주님을 닮은 자입니다. 섬기는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섬기는 이는 진정 아름다운 자입니다. 돈과 젊음과 미모는 아침안개처럼 부질없이 사라지고 말지만 섬김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빛이 납니다. 사랑의 섬김으로 인해 진정 아름다운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3.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기에
둘째, 그녀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기에 진정 아름답습니다. 이는 그녀의 주변인물들이 증인입니다. 그녀가 병들어 죽자 이미 시체를 씻어 방에 누였는데 제자들이 급하게 베드로가 근처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지체말고 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행 9: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아니,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제자들은 왜 급하게 베드로를 부릅니까? 그들은 베드로가 와서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요? 그럼 욥바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마다 베드로나 요한이나 사도들을 수소문해서 불러온 것일까요? 의문은 바로 다음 구절에서 풀립니다.
(행 9: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모든 과부가 다비다가 죽은 방을 떠나지 않고 울며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베드로가 도착하자 그녀가 생전에 자신들에게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다 보여주면 간청했습니다. 제 생각에 제자들이 베드로를 부르기로 한 것은 이 과부들의 간청과 고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둔감한 남자제자들이 그랬을지 모릅니다. “자매님들, 다들 진정하세요. 살아있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베드로를 모셔온 들 어쩌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이 과부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잖아요. 베드로님이 오시면 다비다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우리는 이렇게 다비다님을 보낼 수 없다고요. 제발 좀 사람을 보내보자고요.”
베드로인들 욥바로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미 죽었는데 날더러 어쩌라는 거지? 사도니까 기도하여 살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럼 초대교회에서는 아무도 안 죽고 지금까지 2천 년간 무병장수하게요? 죽을 때마다 베드로가 기도만 하면 사니까? 말도 안 되지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도착해서 다비다를 위해 울며불며 간청하는 여자들을 볼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토록 사랑받는 자매라면, 이토록 아름다운 인생을 산 자매라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기적을 보게 해 주실지도 모르겠다. 담대히 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들이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었던 다비다의 인생은 진정 아름다웠습니다. 돈이 많은 인생, 예쁘고 인기많고 성취를 많이 한 어떤 인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랑과 긍휼로 이웃을 섬김 인생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왕으로부터 재판정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두려웠던 그는 평소 둘도 없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에게 동행과 변호를 부탁했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낙심한 그는 첫째 친구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의지했던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왕궁 앞까지는 동행하겠지만 재판정에서 변호하기는 어렵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평소 아는둥 마는둥 하며 지냈던 친구에게 말을 꺼냈더니 그가 동행은 물론 재판정에서 적극적으로 그를 변호하겠노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생을 비유합니다. 왕의 재판정은 죽음과 심판대를 의미합니다. 첫째 친구는 돈인데 죽으면 다 남의 것이 되고 말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친구는 사람인데 장례식장까지는 오지만 끝나면 다 잊고 자기 삶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셋째 친구는 바로 선행입니다. 가뭄에 콩나듯하는 그 선행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끝까지 변호해줍니다.
다비다의 선행과 구제는 베드로에게 간절히 호소해서 그녀를 다시 살리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벌어질 일의 예시입니다. 그녀의 선행과 구제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제물이 되어 그녀를 영원한 삶으로 부활시킬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그녀와 같이 선행과 구제로 아름답게 부활하는 인생되기를 축복합니다.
4. 아름답게 교회를 세웠기에
그녀가 진정 아름다운 세 번째 이유는 교회를 아름답게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귀한 섬김으로 많은 과부를 전도했습니다. 그녀들의 기도와 섬김으로 욥바교회는 더 아름답게 성장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죽음에서 되살아난 후 더 많은 전도를 했습니다. 그녀의 소문으로 인해 온 욥바 사람이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었습니다.
(행 9: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초대교회의 위대한 부흥의 전면에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과 선교사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잘 알려진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무대 뒷편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선행과 구제로 아름다운 교회를 세운 다비다와 같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베드로도 쓰시고 다비다도 쓰십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면 다비다는 교회의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교회를 통해 수많은 영혼이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 진리의 복음이 세상에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늘의 복이 땅의 사람들에게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렇게 아름답게 교회를 세웠기에 다비다는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그녀가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산 그녀는 물론 더 나이가 들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는 부활할 것입니다. ‘어? 그 후 2천 년이 지났으니 오래 된 것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사람의 그것과 달라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시간이란 대단히 주관적이어서 하루살이같은 우리 인생을 기준으로 굉장히 긴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도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다. 깊이 잠든 사람은 한 시간 만에 깨어나나 열흘 만에 깨어나나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은 똑같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죽음을 잠에 비유했습니다.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아무튼 다비다는 금방 부활할 것입니다. 그 때 다비다는 놀랍게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젊은 피부에 눈이 더 커지고 코가 오똑해서 여성적 매력이 넘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병들고 부러지고 썩는 이 육체와 달리 영광스러운 몸, 조화로운 몸, 강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말입니다.
(고전 15:40) …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그 몸의 영광은 다비다가 그 어떤 이들보다 아름다운 사람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점점 더 아름다워져가는 성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고후 4:16) …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아름다움을 간절히 바라십니까?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여인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활한 다비다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태양 앞의 촛불처럼 그 가치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비다처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할하시길 축복합니다.
답장전달 |
뉴저지새로운교회 www.saerou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