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4:19-28/상속자들
240602 주일설교
1. 영적 전쟁의 자리
예전에 고난을 겪고 있는 한 교우와 상담을 하던 중 제가 ‘영적 전쟁에서 쓰러지지 말고 승리하시라‘고 권면을 했더니 그 분이 깜짝 놀라며 되묻기를 ‘제가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나요? 이 고난은 저의 개인적인 문제인데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분의 말씀은, ‘영적 전쟁이란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세우면서 겪는 일이 아닌가? 개인적인 고난을 이기기 위해 애쓰는 것이 영적 전쟁이라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의미였습니다. 오해입니다. 영적 전쟁은 복음전도의 자리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어째서 일상이 영적 전쟁일 수 있습니까? 매일 매순간 우리는 의식하지 못 하지만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에는 ‘밥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와 같은 가치중립적 선택도 있지만 ‘안전운전을 할까, 음주운전을 할까‘, 이웃에게 ‘진실을 말할까, 거짓말을 할까‘와 같은 가치판단이 들어간 선택도 있습니다. 후자의 선택은 우리의 일상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나라로 만들 수도 있고 마귀가 지배하는 마귀의나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택을 하는 그 자리가 하나님나라와 마귀의나라가 벌이는 전쟁터 한 가운데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된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불같은 고난을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기려고 애쓸 때, 욕심과 부정으로 위협받는 가정을 화목하고 아름답게 지키려고 노력할 때, 거짓과 탐욕이 뒤흔드는 일터를 정직하고 성실한 곳으로 만들려 애쓸 그 때, 개인의 안위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의를 위한 싸움, 영적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그렇기에 매일 이런 영적 싸움을 대비해 무장하는 시간으로 새벽기도나 QT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이자, 성도의 원수인 마귀의 목적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요 10:10) 도둑(마귀)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즉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드는 것이지요. 반면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 분 안에 있는 생명의 힘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마귀는 우리의 영을 죽이기 위해 어떤 전술을 씁니까? 세 가지 중요한 전술이 있습니다.
2. 범죄하지 않는 입술
첫째는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비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전술을 잘 묘사한 장면이 욥기에 나옵니다.
(욥 1: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 (욥 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이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은 성도는 그 입술에서 찬양이 사라지고 원망과 비난이 시작됩니다. 욥이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2장 10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욥 2:10) “…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감당키 힘든 불같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여 입술로 죄짓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마음과 입술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믿음은 입술에 감사와 찬양의 꽃을 피웁니다. 마음에 가득한 불신은 입술에서 원망과 비난의 오물을 쏟아냅니다. 원망과 비난은 처음에는 원수를 향해 시작되지만 이웃, 형제, 자매, 가족에게로 번져가고 마침내 하나님을 향해서까지 쏟아집니다. 그러므로 원수에게라도 원망과 비난을 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하나님을 온힘을 다해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가족, 형제, 자매에게로 감사가 번져가고 마침내 원수에게까지 축복이 이어집니다. 시험과 시련을 당할 때 욥처럼, 입술로 범죄하지 말고 감사와 찬양의 꽃을 피우시기를 축복합니다.
3. 포기하지 않는 용기
마귀가 우리의 영을 죽이기 위해 쓰는 두 번째 전술은, 의를 위한 싸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전술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잘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러나 예수님의 간곡한 당부에도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 했고 고난이 닥칠 때 믿음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막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믿음을 떨어지면 가장 먼저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기도도 하기 싫고 의롭게 살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될대로 되라,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도망치고 싶습니다. 예수님도 사실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수만 있으면 십자가의 고난을 피해 도망치게 해달라고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셨고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맞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망친 제자들이 당신처럼 믿음을 되찾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그들을 찾아가 다시 사명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다시 기도를 시작했고 성령님이 임하셔서 그들의 믿음을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떨어진 믿음을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다시 기도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이 사명을 주십니다. 믿음이 떨어져 도망치고 싶었던 여러분, 이미 도망쳐서 사명의 자리를 떠난 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일으켜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4. 원수마저 축복하는 사랑
마귀가 우리의 영을 죽이기 위해 쓰는 세 번째 전술은, 우리의 마음에 미움과 분노를 일으켜 다투게 만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 마음의 시기와 다툼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정확히 지적합니다.
(약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약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시기와 다툼은 귀신 곧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시기를 불러 일으킵니다. 충동하여 다툼을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디도에게 비방과 다툼을 멀리 하고 관용과 온유함으로 이웃을 대하라고 권면합니다.
(딛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여러분 마음에 누군가를 향한 비방이 떠오른다면 입으로 말하기 전에 누가 그 생각을 넣어주었는지를 추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생각입니까, 마귀가 충동질한 시기와 정죄입니까? 비방은 100% 마귀에게서 옵니다. 비방은 반드시 다툼을 일으킵니다. 이 다툼이야말로 마귀가 가장 원하는 방법이요, 마귀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요, 하나님나라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다툼이 모여 사회적 갈등이 되고 갈등을 극복하지 못 하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에는 실제로 수많은 생명이 죽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영이 죽는 일이 수도없이 일어납니다. 시기와 비방과 다툼으로 영을 죽이는 마귀의 계략에 이용당하지 마시고 사랑과 용서와 긍휼로 영을 살리시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승리한 성도
이처럼 성도의 영혼을 삼키려는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의 공격을 성령님을 의지하여 이겨낸 성도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지요! 오늘 본문은 1차 전도여행에 나선 바울과 바나바가 튀르키에의 남부도시를 차례로 돌며 복음을 전하던 중 루스드라에서 겪은 일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거쳐온 비시디아안디옥, 이고니온에서 이미 격렬한 유대인들의 저항과 박해를 마주했습니다. 비시디아안디옥의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회당에서 쫓아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시기하여 이고니온과 루스드라까지 쫓아다니며 비방하고 박해했습니다. 가는 도시마다 동조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거짓으로 선동하여 큰무리를 만들어 마침내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잡아 투석형에 처했습니다. 무수한 돌팔매질에 맞아 기절한 바울을 그들은 죽은 줄 알고 버려두고 갔는데 기적같이 바울이 깨어났습니다.
마귀가 이 선교팀에게 한 것처럼 여러분도 집요하게 시기하고 비방하고 선동하고 박해할 것입니다. 왜입니까? 여러분의 입술로 더이상 찬양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괴로움과 두려움에 지쳐 의로운 삶이고 행복한 가정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도망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고 상처주고 실망시킨 이들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원수삼아 다투게 만들어 같이 멸망케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마귀의 계략을 아는 지혜로운 성도는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어떻게 승리하였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 순종하여 복음 전하는데 왜 이렇게 고난이 많습니까?’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이게 뭡니까? 돌까지 맞았습니다.’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것들이 인간입니까?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악하게 사람을 괴롭힙니까? 내 몇 배로 갚아줄테니 두고 보십시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였습니까? 비시디아안디옥에서 쫓겨날 때의 모습입니다.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그들은 비방당하고 쫓겨나면서도 원망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돌에 맞아 기절한 직후입니다.
(행 14: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행 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는데 깨어나서 몸을 추스리고는 다음 날 다시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박해하고 쫓아내고 돌로 쳐죽이려 했던 이들이 있는, 지나온 도시를 거꾸로 하나하나 방문합니다. 성도들을 양육하였습니다. 시련을 억울해 하고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마땅히 감당하할 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마귀의 계략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6. 승리의 비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 예수님을 의지하는 이도 대장 예수님처럼 마귀를 이깁니다.
(요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이는 마침내 영생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계 21:6) …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시험과 시련을 당할 때 마귀가 어떤 계략을 쓰는지 잘 분별해 보십시오. 그의 계략을 간파하여 넘어지지 마시고 믿음으로 이기어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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