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새로운교회 주일예배 “기독교인이 되는 이유”(마태복음 4:18-25) – 김도완 목사

7월 20, 2024

Series: 주일예배

Book: 마태복음

마 4:18-25/기독교인이 되는 이유

Matthew 4:18-25/Reasons to become a Christian

240714 주일설교

1. 선택된 이유 Reason for choosing

지난 2018년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준 기사가 언론에 실렸습니다. 아칸소주에 사는 엘리슨과 앤드류 스트로만 부부는 2015년 심각한 질병을 가진 딸 로지를 출산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로지는 3개월만에 큰 심장수술을 받았고 두개골조기유합증이란 희귀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기를 돌보느라 힘든 시간이 흘렀지만 로지는 부부의 걱정과 달리 하나씩 병과 장애를 이기고 견디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오히려 부부에게 큰 용기와 기쁨을 주었습니다. 평소 입양을 꿈꾸고 있던 부부는 로지를 양육한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입양할 아이가 당연히 로지와 같이 장애를 가진 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연히 만난 다운증후군을 앓는 4살의 남자아이 뷰를 입양하였습니다. 두 장애아의 부모가 된 부부는 힘든 양육의 시간이 오히려 인생을 더 가치있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인터뷰에 답했습니다.

이 부부가 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뷰가 똑똑하거나 잘 생겼거나 건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입양을 고려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어떤 기준도 뷰는 갖지 못 했고 오히려 입양을 기피할 만한 조건을 다 가졌습니다. 뷰가 선택된 것은 이 부부의 연약한 아이를 향한 큰 긍휼때문입니다. 뷰는 결코 자신의 입양될 만한 존재였다고 자랑하지 못 할 것입니다. 오직 자신을 선택해 준 엄마, 아빠의 큰 사랑밖에 그가 자랑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들었을 때 발견하는 진리입니다.

2.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The moment you become a Christian

지난 주일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았습니다. 자신의 죄인됨과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깨닫고 그 앞에 꿇어 엎드리는 사건입니다.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 많은 성도에게 일어나는 이 사건을 흔히 회심 혹은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이 회심과 거듭남은 성령님이 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무지한 죄인에게 일깨워 주심으로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죄인은 마귀에게 속아 자신이 왕되어 살아가던 삶으로부터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새 마음을 갖게 되기에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또 이 때는 죄와 악의 노예 되어 살아가던 과거의 죄인은 죽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받은 새사람으로 태어나기에 거듭남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회심과 거듭남이 없이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면 교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타종교인과 구분하여 기독교인이 불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인란 뜻의 참기독교인은 아닙니다. 다시한번 새로운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 회심과 거듭남의 사건이 허락되기를 축복합니다.

3.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Reason to become a Christian

그러면 이 사건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베드로의 경험으로 보거나 지난 주에 소개했던 시골의사의 경우를 보나 그들이 이런 영적 경험을 갈망한 것도 아니고 그럴 만한 무슨 자격을 갖춘 것도 아닌 듯 보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 영적 경험 곧 회심과 거듭남의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비롯한 네 명의 핵심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누가복음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 같은 사건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간략하게 소개합니다만 핵심적 요소는 모두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를 부르신 사건과 요한과 형제 야고보를 부르신 사건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먼저 주목하여 보시고 다음으로 부르시고 그들이 응답하여 주님을 좇는 식입니다.

(마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마 4: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주님의 보시고 부르심입니다. 제자들의 탐구와 연구와 결단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성령님이 그들을 각성시키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죄인됨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는 회심의 사건은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닌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원리를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최후의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공부해 보니 믿을 만 한 분임이 확인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주목하여 보시고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를 택하고 부르셨기에 그들이 회심하고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목하여 보시고 택하셔서 부르셨기에 그리스도인이 되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4. 운명적 택하심 fateful choice

주님은 그럼 도대체 언제 우리를 보셨고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장엄한 비전을 보여줍니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세 전 곧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세상창조와 함께 시간이 시작되었으니 이는 곧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즉 시간을 벗어난 영원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영원은 긴 시간이란 뜻이 아니라 시간 밖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우리를 택하심은 이 물리세상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선택 곧 물리세상의 힘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도저히 끊거나 중단시킬 수 없는 운명적 택함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택하심의 강력한 운명적 힘을 사도 바울은 또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두 구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란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해 나오고 ‘부르셨다’는 표현이 한 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택한 이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일을 경험합니까?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과의 운명적 사랑, 영원한 사랑, 어떤 세상의 힘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묶여 버렸다,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뿐 아니라 그 나라를 상속하여서 그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며 그 하나님과 영원히 연합하여 살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다는 사실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 세상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의 힘으로 택하여 하나님나라로 이끄시고야 만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이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의 택하심으로 인해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 삶에 회심의 사건, 거듭남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여러분 모두 한 분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택하신 사랑으로 놀라운 회심의 사건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시기를 축복합니다.

5. 은혜로운 택하심 gracious choice

아! 하나님이 이토록 놀라운 사랑으로 나를 택하셔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구나,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 나를 택하신 것일까?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혹시 내가 비교적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기 교회 밖에 악한 인간들보다는 낫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도 모르게 품고 있는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요, 얼마나 교만하고 무지한 생각인지를 로마서 9장은 야곱과 에서의 사건을 인용하며 이렇게 고발합니다.

(롬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 9: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롬 9: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쌍둥이인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선악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주권적 택하심을 따라 곧 하나님 마음대로 장자 에서가 아닌 동생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 곧 그 두 녀석이 누가 더 착한지, 누가 더 못 됐는지와 상관이 없다. 실제로 우직한 형 에서와 달리 야곱은 간사한 인간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당신 마음대로 그냥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아, 하나님, 기왕이면 덜 못 된 에서를 택하지 간사한 야곱을 택하셨습니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큰 월권이며 건방진 생각이며 더 나아가 신성모독인지를 꼬집습니다.

(롬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롬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긍휼은 거저주는 선물이다, 선물을 주는 사람 마음이고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는 구원받으려고 선하게 살고 기도하고 봉사 많이 한다고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일하게 완전히 선하신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택하심의 긍휼 때문에 우리가 회심과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롬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선함이나 노력이나 자질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히려 그 어떤 자격도 없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이런 완전히 주권적인 택하심, 세상 어떤 힘도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의 힘 덕분에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의 회심과 거듭남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이요, 가장 놀라운 은혜요, 가장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선하신 우리 주님께서 이런 기적을 여러분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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