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1-5/오시는 하나님 나라
240825 주일설교
1. 그릇된 복음이해
최근 어느 교우에게 연예인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제가 엄지척을 하면서 인사했습니다. ‘따님이 가수라면서요? 정말 멋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 표정이 묘하게 바뀌는 것입니다. ‘내 인사가 불편했나?’ 얼마 후 전화통화를 하다가 왜 그랬는지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핑돌았다는 것입니다. 예전 교회에서 딸이 가수생활을 시작한다는데 일 년 동안 교인 중 누구도 아는 척 하거나 격려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분위기가 기독교인은 거룩한 입술로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만 해야 하기에 세상노래하는 것이 마치 타락하는 것처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는 교회에서는 세상노래하는 믿음없는 아이처럼 비춰졌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정작 학교에서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엄격하게 신앙생활해서인지 아직도 교회 다니는 시대에 뒤처진 아이취급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세상노래하는 아이, 학교에서는 아직도 교회 다니는 아이로 여기서도 저기서도 환영받지 못 하던 아이가 결국 지금은 교회도 떠난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이 아이와 그 부모가 겪은 고통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아이가 세상노래를 했기 때문입니까? 자녀가 의사가 된다면 축하를 받는데 왜 가수가 된다면 축하를 받지 못 합니까? 아니면 생각없이 아직도 교회를 다녔기 때문입니까? 복음이 진리라면 왜 기독교인들은 바보멍청이들이라는 조롱을 받습니까? 사실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겪고 있는 이런 고통은 현대교회가 가진 복음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 때문입니다. 한국과 미국 복음주의권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믿고 있는 복음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그 희생의 공로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아 이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아 마지막 때에는 지옥의 심판을 면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 아마 여러분도 대부분 이 복음요약에 이의도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복음이해는 첫째 매우 좁고 둘째 심각한 오해를 품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좁고 어떤 오해를 품고 있나요? 건강하고 복된 더 나아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복음이해는 어떤 것입니까? 바로 오늘의 주제입니다.
2. 좁은 복음이해
첫째 위의 복음이해는 구원의 의미를 개인의 차원으로 좁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복음 즉 기쁜 소식은 죄인인 한 인간을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동시에 그와 비교할 수 없이 큰, 그 이상의 것입니다. 복음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조차도 넘어섭니다. 복음은 한 개인과 인류와 피조세계 전체를 구원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로마서는 이 구원의 범위에 대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롬 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롬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과 죽으심, 부활은 해가 지구의 위 모든 생명을 위한 것이듯 창조주의 손으로 지음받은 피조세계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구원도 그 일부라는 사실을 23절이 강조합니다.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
하나님의 구원은 온세상만물 곧 피조세계 전체를 아우릅니다. 그 피조세계 전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세상을 예수님은 무엇이라 표현하셨습니까?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 곧 기쁜 소식은 그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것이었고 그 나라에 들어가도록 회개와 믿음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회개와 믿음은 그가 들어갈 하나님나라의 거대한 비전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가 이 비전을 이해하지 못 한 채 개인의 죄사함, 평안한 동행, 지옥 대신 천국에 들어감 등의 개인적 차원으로만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는 마치 결혼을 ‘부유한 집안의 아들을 만나 반지하자취방에서 벗어나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이사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편협한 생각입니다. 이런 이해는 결혼에 포함된 사랑과 신뢰, 섬김과 희생, 기쁨과 행복, 자녀와 가족, 감사와 은총의 진정한 복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오히려 결혼의 기쁨을 물질적인 것으로 바꾸어 앗아가버리는 불행을 가져옵니다. 온 세상만물이 다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아래 꿇어엎드려 기쁨으로 순종할 때 사랑이 봄날아침의 비처럼 온 세상을 적시고 공의가 들판을 가득 메운 들꽃처럼 땅을 채우는 나라의 벅찬 기쁨과 행복을 감히 상상하지 못 합니다. 많은 교회가 구원을 죄사함, 마음의 평안, 이 땅에서 복받음, 지옥을 면함, 영원히 죽지 않고 복된 삶을 누림 등의 값진 은혜이지만 개인적 차원의 은혜만을 구원으로 가르쳤고 배워왔습니다. 바로 이런 좁은 이해에서 복음의 오해도 비롯되었습니다.
3. 세상에 대한 오해
둘째 앞서 요약한 복음이해는 피조세계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왔습니다. 지난 주에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이들이 구원은 죄많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 이해에서 교회 밖 세상은 죄와 악으로 가득차 기독교인이 근접하면 안 되는,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고 방사능 물질이 섞여 있는 진흙탕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기독교인은 세상에 대한 마음을 접고 오직 신앙생활과 교회에 스스로를 가두고 거기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세상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한 결과입니다. 성경이 정죄하는 좁은 의미의 세상은 우리가 보고 살아가는 교회 밖의 물리적 세상, 넓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넓은 의미의 세상, 물리적 세상은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셨고 다스리고 계시고 새롭게 창조하셔서 마침내 완전히 구원하실 세상입니다. 이 세상을 묘사하는 성경의 표현을 들어보십시오.
(창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시 145:10)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딤전 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이 피조세계는 이토록 아름답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이 사랑하셨으며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멸시하고 터부시하는 것은 불경죄에 다름아니며 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을 정도의 무지한 짓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좁은 의미의 세상, 죄악된 세상이 있습니다. 그 세상은 하나님이 왕되는 것을 싫어한 사탄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대신 스스로 왕되기를 결심하고 사람들에게 왕되게 해주겠다고 속여 자신의 반란군에 가담시켰습니다. 그 반역한 사탄과 그에 속아 죄와 악의 노예가 된 사람과 그들이 뭉쳐서 만든 세력과 사상과 세계관이 이 전체물리세계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공중권세잡은 자의 세상이라고 부릅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피조세계와 그 안에서 반역하여 사탄의 세력에게 점령된 타락한 세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 정치, 사회, 경제, 의료, 법률, 문화, 연예, 종교계는 모두 선한 피조세계 안에 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탄의 나라가 침투해 있습니다. 성도는 오히려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들어가 사탄의 가르침을 대항하여 싸우며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구해야 합니다.
(마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4. 천국에 대한 오해
마지막으로 천국에 대한 오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천국 곧 하늘나라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이 땅을 떠난 저 위에 있는 나라로서 죽어서 가는 낙원에 가깝습니다. 이 오해야말로 가장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전에도 설명드린 바와 같이 하늘나라는 하나님나라를 대신하여 유대인이 사용한 단어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언급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3계명을 어기지 않으려고 아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하늘을 썼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하늘나라와 하나님나라는 같은 뜻이며 정확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 위의 어떤 공간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나라입니다. 즉 공간적인 나라가 아니라 개념적인 나라입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은 미국의 영토 안에 있지만 한국의 법이 적용되기에 한국땅입니다. 미국땅의 흙과 한국땅의 흙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아닙니다. 그 위에서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그러면 어디에서 건설될 것이며 완성될 것입니까? 저기 죽어서 가는 하늘의 어느 공간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이 피조세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서 임하고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명하셨습니다.
(마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땅의 모든 만물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롬 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 땅은 폐기할 땅, 불타 없어질 땅이 아닙니다. 폐기되고 멸망받을 것은 전체 피조세계가 아니라 이 세계를 파괴하려는 하나님께 반역한 무리들과 그 권세입니다.
(고전 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
(고전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오히려 피조세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인해 시작된 재창조로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을 것입니다.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
그리하여 마침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새하늘과새땅이 내려올 땅입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 새하늘과새땅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성도들의 상태에 대해 예수님은 우편 강도에게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고 부자와나사로비유에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쉰다’고 하셨고,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는 예수님의 재림 때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기까지 성도들이 머무는 잠정적인 상태입니다. 최종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성도의 궁극적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 땅에 임할 새하늘과새땅에서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몸을 입고 왕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다스림을 받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바르게 이해할 때 비로소 복음은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과 완성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불의를 대항해 싸울 힘을 얻게 하는, 말그대로 기쁜 소식이 됩니다. 앞선 연예계에 진출한 교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한국교회 안에 남은, 직업의 귀천을 구분하는 유교주의의 잔재를 왜곡된 복음이해로 포장한 무지가 만들어낸 불행입니다.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면 무지와 편견과 구속에서 해방됩니다. 이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고 날마다 기쁜 소식으로 인해 하나님나라를 누리고 세우고 전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