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3:19-21/왜 새로운 교회인가
240901 주일설교
1. 새로운 교회인 이유
예전에 어느 구역일꾼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구역모임에서 한 교우가 왜 우리교회 이름이 새로운교회냐고 묻는데 제대로 답을 하지 못 했습니다. 뭐라고 답을 하면 좋을까요?’ 그 때 간단히 답을 드렸습니다만, 다른 교우들께서도 아셔야 하겠기에 오늘 자세히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새롭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산뜻하고 상쾌하고 희망찬 느낌을 주기에 참 좋은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느낌때문에만 지은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에 미국동부 한인사회에 필요한 교회, 하나님이 이 지역에 세우기 원하시는 교회가 기성교회와 같지 않은 교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기성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라면 우리가 개척할 교회의 이름을 전통교회, 옛날교회라고 지었을 것입니다. 그럼 새로운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전통교회와 달리 새롭다는 것입니까? 오늘은 시간관계상 두 가지 의미만 살펴 보겠습니다.
2. 새롭게 개혁하는 교회
첫째 새로운교회는 새롭게 개혁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해외한인장로교단은 이름처럼 장로교파에 속해 있습니다. 이 장로교회를 신학적으로는 개혁교회 reformed church라 부릅니다. 개신교를 탄생시킨 16세기 종교개혁가 중 칼빈의 신학사상을 받아들여 탄생한 교회를 유럽에서는 개혁교회 reformed church 라 부르고 영국, 스코틀랜드 그리고 미국에서는 장로교회 presbyterian church 라고 부릅니다. 이 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고수한 신앙을 개혁주의라고도 부릅니다. 이 사상에 개혁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로마카톨릭이 빠진 탐욕과 부패의 구조와 관행을 개혁하여 초대교회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카톨릭에 개혁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개혁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카톨릭과 결별했으니 더 이상 개혁할 일이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개혁의 대상이 바로 개혁교회 자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개혁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도 역시 카톨릭을 이루고 있던 그 죄인인 인간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의 부패에 진절머리가 나서 개혁교회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신도 모르게 카톨릭이 저지르던 부패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비슷한 일이 개혁교회 안에서도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히틀러의 만행을 반대하다 옥에서 순교한 독일신학자 칼 바르트는 ‘reformed church should be reformed,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reformed church should be reformed’
그리고 이 주장은 개혁교회만의 숙제가 아니란 것을 위대한 신학자였던 4세기 교부 어거스틴이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로 일깨워 주었습니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개신교의 많은 교파분열에는 이처럼 기성교회가 가진 모순과 부패를 극복하려는 개혁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우리 새로운교회의 탄생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거대한 교파의 개혁노력이 교파분열로 이어진 것처럼 개교회의 개혁노력 역시 교회분열로 이어진 것이 실제 2천 년 교회의 역사입니다.
3. 새로운 개척의 역사
제가 몇 차례 들려드린 캘리포니아해변의 구조센터의 역사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요? 19세기 어느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암초에 걸려 난파된 배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구조하고자 구조센터가 세워졌습니다. 이 센터를 통해 생명을 건지는 이들이 늘어나자 도네이션도 늘어 센터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자 센터를 식당으로 만들어 수익을 올려 구조활동을 더 활발히 하자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새 구조센터는 식당을 운영하느라 구조활동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말았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조센터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 식당을 나와서 작은 구조센터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그 구조센터 역시 성장하자 까페로 변했고 비슷한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구조센터의 역사가 곧 교회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성장하면 복음을 전하는 초심을 잊어버리고 교권다툼, 직분자랑, 친목단체로의 전락 등의 세속적인 욕망에 오염됩니다. 참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요, 도저히 개혁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모든 시대의 교회가 항상 직면하는 위기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바울이 가장 큰 애정을 쏟아 개척하고 디모데가 헌신하여 세운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이 이러합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초심을 잃고 변했으니 회개하고 개혁하여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교회를 통해 복음의 성화를 옮기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교회는 주님이 복음의 촛대를 옮기심으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새로운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한 교회입니다. 새로운교회는 교회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 위에 선 교회입니다. 새로운교회는 교회가 할 일이 부질없는 다툼과 시기와 자랑과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고 형제, 자매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모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믿는 성도들이 부름받아 세운 교회입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새로운 옷입은 교회
둘째 새로운교회는 새로운 시대의 옷을 입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모든 민족, 모든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각 민족과 세대의 옷을 새롭게 갈아입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선교적 전략이었습니다.
(고전 9: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 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 9:22) …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그는 전도대상자의 문화, 관습, 전통을 따라 그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보임으로써 복음수용을 방해하는 낯섬 곧 어색함의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곧 새로운 문화의 옷을 입는 노력입니다. 개신교는 태생부터 이 선교전략을 DNA로 새기고 시작되었습니다.
카톨릭교회는 16세기까지 로마제국시대의 공용어 라틴어로만 미사를 드리고 라틴어 성경만을 사용했습니다. 라틴어는 로마제국 당시공용어로 중세유럽인들은 대부분 쓰지 않았기에 성경과 사제들의 라틴어는 신성하게 들렸을지는 모르나 읽지도, 알아듣지 못 하는 외국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교황청과 사제들이 성경에 없는 온갖 황당한 교리를 만들어내어 가르쳐도 교인들은 그 교리가 맞는지, 틀린지 알 길이 없었고 면죄부판매와 같은 말도안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그 시대 민중들이 읽고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성경을 각 지역언어로 번역하고 예배하고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예배순서를 만드는 노력을 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성경은 사제들만 읽었고 찬송은 찬양대만 불렀습니다. 회중은 그저 성경도 듣고 찬송도 듣고 설교도 듣기만 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야 회중이 찬송을 비로소 부르기 시작했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가능했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시간에 일어나서 마음껏 찬양하고 구역모임과 성경공부모임을 통해 성경을 공부하고 각 분야에서 봉사하는 것은 종교개혁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 하던 일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노력을 오늘날의 언어로 바꾼다면 회중의 눈높이에 맞게 복음의 옷을 입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요구됩니다. 오늘날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여서 100년 걸리던 문화적 변화를 10년에 겪고 기술적 변화는 더 빨라서 거의 1년만에 겪을 정도입니다. X세대, Y세대, 밀레니엄세대, Z세대, 묶어서 MZ세대라는 다른 세대가 끊임없이 출현합니다. 같은 말을 써도 세계관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외국어 듣는 것처럼 서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런 시대에 복음을 전하려면 새로운 세대의 옷으로 빨리빨리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세대가 떠나고 나면 교회문 닫아 술집으로 변하는 유럽교회가 겪은 일을 우리도 머지않아 겪을 것입니다.
5. 새로운 의사결정과정
새로운교회는 모든 면에서 새시대의 옷을 입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중 한 예만 들자면 교회의 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장로교회의 치리기구는 당회입니다. 이 당회가 시대의 변화를 못 쫓아간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장로교회 내부에서 나왔습니다. 현재의 제도와 관행대로 하면 대부분의 한인교회가 구성하는 당회는 60대 남성으로 채워집니다.
여기에 더해 유교적 권위주의가 그대로 스며든 한인교회의 분위기상 장로를 더 높은 계급처럼 여겨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장로가 되기 위해 보여주기식 봉사를 하고 선거운동을 해서 표를 모으려 하고 장로가 되면 더 이상 섬기지 않고 권위적인 태도로 주도권을 쥐려하여 많은 한인교회의 당회가 다툼과 교회분열의 온상이 됩니다. 이처럼 현재 당회제도는 새로운 시대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온지 오래 되었음에도 총회헌법상 제도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걸립니다.
그 결과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물어볼 데도, 의견을 낼 곳도 없는 젊은 세대가 내린 선택은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나마 일부는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회로 옮겨가지만 더 많은 이가 아예 교회 자체를 떠납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노인들만 남고 텅텅 비어있는 한인교회입니다. 한국교회와 한인교회 모두 절반 이상이 교육부와 청년부가 아예 없습니다. 우리가 여름학교를 위해 빌린 교회의 자매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많아서 좋겠어요. 우리교회는 어른들 뿐이예요.’ ‘네, 좋긴한데 주일마다 이 인원 점심해 먹이는 것도 일이예요.’ ‘아이고, 우리도 애들이 이렇게 많으면 삼시세끼라도 다 해먹이겠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교회는 정관을 통해 기존당회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총회헌법상 13년이던 당회원의 임기를 3년으로 줄이고 교인총회에서 재선출을 받을 경우 2회 더 연임하여 총 9년을 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운영은 당회가 직접 하지 않고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임토록 하였습니다.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당회원과 임명된 1년 임기의 각 세대, 부서의 대표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는 여성, 젊은 세대의 시각을 교회의사결정에 반영하는데 유리한 민주적 제도입니다. 현재 새로운교회의 9명의 운영위원회는 여성 5명, 남성 4명으로 여성이 더 많습니다. 연령으로는 60대 4명, 50대 4명, 40대 1명으로 60대 이하가 5명으로 더 많습니다. 그리고 중고등부, 이엠, 청년부, 중국동포, 봉사부, 관리부 등의 일꾼들이 포함되어 장년부 외에도 여러 부서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개혁적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교회가 새로 개척되었기 때문입니다. 테니스를 처음 배울 때 코치가 늘 하는 말이 게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른 스트록자세를 익히기 전에 게임을 하면 공을 넘기는 요령만 늘어서 나쁜 습관이 들고 그러면 실력이 늘지를 않는데 그 때는 자세를 바로잡는 것은 새로 자세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를 그렇게 꾸짖고 바로 잡으려 하셨지만 결국 교회를 세우실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성교회를 고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새로운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교회도 복음의 기초를 단단히 다지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하여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언젠가 하나님도 포기하시는 옛날교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새로운교회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영원히 하나님을 찬송하는 새로운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