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4:1-7/그릇을 준비하라
240915 주일설교
1. 자유를 향한 갈망
전세계 영화평점사이트 1위를 휩쓰는 영화가 무엇일까요? 1994년에 개봉한, 스티븐 킹 원작의 쇼생크탈출입니다. 아내와 그 애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힌 은행 부지점장 앤디가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는 1973년 영화 빠삐용을 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쇼생크탈출과 달리 빠삐용은 주인공 빠삐용이 바다에 뛰어든 뒤 과연 탈출에 성공했는지, 실패하고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영화사에 남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쇼생크탈출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자유를 향한 갈망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속도시’란 책으로 세계적 신학자의 명성을 얻은 하버드대의 하비 콕스 교수는 인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이야기는 바로 출애굽기라고 합니다. 애굽의 속박을 벗고 자유를 향해 광야로 나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는 온갖 압제로 신음하는 모든 시대 인류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어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의 자유를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 된 싸움은 역시 정치적 자유를 위한 싸움입니다. 독재와 권위주의와의 싸움이 그것입니다. 사회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도 역시 계속 되고 있습니다. 신분, 계층, 인종, 성별의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이 그것입니다. 동시에 경제적 자유를 위한 싸움 역시 현재진행형입니다. 빈곤, 착취, 불평등 극복을 위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자유를 향한 여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가장 간과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 자유를 향한 여정입니다.
2. 영적 자유
자신이 영적인 종노릇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엇의 종노릇하는지도 깨닫지 못 하는 인류에게 예수님은 진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의 종입니다!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사도 바울도 인류가 죄의 욕망을 좇음으로 죄의 종이 되어서 결국 심판에 이른다고 로마교인들에게 썼습니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이 죄의 종된 상태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 하면 사실상 다른 자유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독재를 물리치고 자유를 얻었는데 정작 자신의 마음에는 그 독재자 못지않은 교만과 분노를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부당한 차별과 싸워 자신의 권리를 찾았건만 정작 자신의 마음에는 더 약한 이들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노력하고 개혁해서 경제적 자유를 찾았건만 정작 자신의 마음에는 착취자들 못지않은 탐욕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게 보일지 모르나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죄악된 욕망의 종일 뿐입니다. 이 종된 상태의 증세가 걱정, 근심, 불안과 두려움, 미움과 시기, 다툼과 우울과 낙심입니다. 육체의 고단함보다 더 고통스러운 영혼의 괴로움입니다. 인간은 이 속박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요?
3.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오늘 본문 열왕기하 4장은 이스라엘의 남북왕국시대의 북왕국선지자 엘리사가 빚을 갚지 못 한 채 세상을 떠난 제자로 인해 종이 될 위기에 놓인 그의 가족을 돕는 사건입니다.
(왕하 4: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대부분 고대세계에서 빚을 갚지 못 하는 이는 가족 중 일부 혹은 전부가 종이 되어 노동으로 갚아야 했습니다. 한번 종이 되면 현실적으로 자유인으로 신분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었던 이방나라와 달리 이스라엘은 희년법으로 50년 마다 종된 자를 해방케 하였지만 그럼에도 자녀를 종으로 빼앗긴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종으로 빼앗겨야 했던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와 절규합니다. 절망에 빠진 그녀를 엘리사는 남은 기름 한 그릇을 많은 그릇에 가득 채우는 기적을 일으킴으로써 그 집의 빚을 모두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왕하 4: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그녀는 하나님의 종에게 가 부르짖음으로 죄의 종이 되는 운명을 피하고 자녀들과 함께 자유를 얻었을 뿐 아니라 더 풍요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죄의 종으로 고통받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있는 능력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은 먼저 우리 자신의 죄의 종된 영적 상태를 보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흘린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십니다.
4. 성령으로 자유케 하시다
그 때 주님은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멈추지 않고 그릇을 채우는 기름의 기적으로 그녀의 가족을 자유케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언제나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요일 2장입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성령님)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 성령님은 성도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당신의 자유케 하시는 능력이 성령님의 역사로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성령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일을 행하심으로 자유를 주십니다. 첫째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죄책을 남김없이 씻어 거룩하게 하십니다. 둘째 당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셔서 죄의 유혹과 싸워 이겨 의를 행하도록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여러분에게 보혈의 능력과 성령님의 능력이 모든 죄로부터 자유케 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5. 강하고 충만한 기름부음의 비밀
그런데 성도가 이 자유를 누리는 정도가 모두 다릅니다. 충만한 자유와 그로인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유롭긴 한데 죄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 하고 시소 타듯 기쁨과 걱정, 평안과 두려움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납니까?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 다릅니까? 하나님께서 충분한 기름부으심을 주지 않으시려 하기 때문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녀에게 부족함 없는 기름부으심을 주기를 원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는 그녀에게 최대한 많은 이웃에게서 그릇을 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최대한 많이 부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왕하 4: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왕하 4: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그럼 그녀가 받을 기름의 양은 무엇이 결정했습니까? 그녀가 받을 기름의 양을 결정한 것은 그녀가 준비한 그릇의 수입니다.
(왕하 4: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왕하 4: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녀가 엘리사의 말처럼 많이 빌렸더라면 많은 기름을 받았을 것입니다. 반면 조금만 빌렸더라면 기름은 더욱 부을 수 있었지만 담을 그릇이 없어서 많이 받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럼 그녀가 빌려온 그릇의 수는 무엇이 결정했을까요? 바로 그녀가 평소 이웃과 맺은 관계입니다. 그녀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며 살았더라면 아마 온 동네 그릇을 다 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그녀가 이웃과 다투고 미워하고 원수지고 살았더라면 그릇을 거의 빌리지 못 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넘치도록 성령님의 능력과 은혜를 더하셔서 모두가 죄로부터 자유를 얻을 뿐 아니라 풍성히 생명의 복을 누리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요 10:10)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가 그릇을 준비하지 못 하면 그 능력과 은혜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약수터에 얼마만한 통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얼마나 담아올 수 있느냐가 결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을 담을 그릇은 어떻게 준비합니까? 그것은 매일 주님과 맺는 관계를 통해 준비합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받을 때까지 기도로 기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행 1:4) “…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둘째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장작을 쌓아둔 이는 성령의 불이 임할 때 오래도록 폭발력있게 타오릅니다.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셋째는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이는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을 곧 잃어버릴 것을 당신은 잘 아십니다. 그렇기에 순종의 그릇을 준비한 이에게 더 큰 은혜와 능력을 부으십니다.
(행 5:32) …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오늘 여러분은 기도의 그릇, 말씀의 그릇 그리고 순종의 그릇을 얼마나 준비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부어주실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의 심령의 그릇에 가득 차고 흘러넘쳐서 자유의 삶, 은혜의 삶 그리고 능력의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