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새로운교회 주일예배 “슬픈 여인의 진짜 남편”(창세기 29:31-35) – 김도완 목사

10월 12, 2024

Series: 주일예배

Book: 창세기

 29:31-35/슬픈 여인의 진짜 남편

241013 주일설교

1. 불공평한 인생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자랑하는 조다난 하이트의 ‘불안세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그 전 세대에 비해 그리고 이 시기에도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더 높은 우울증, 불안증, 이상행동 그리고 자살충동 등을 보인다는 지적을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이 시기부터 시작된 스마트폰의 세계적 보급입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이전에는 알지 못 했던 소위 셀럽, 인플루언서들의 삶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삶과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대개 명문가, 재벌가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와 화려한 명품옷과 가방을 들고, 요트와 자가용비행기로 개인섬에서 휴가를 즐기는 이들인데 비해 자신은 외모도, 실력도, 환경도 보잘것없다고 느끼기에 아이들은 열등감과 비교의식, 불만과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한 이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은 아이들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주변에 더 부유하고 주목받고 성공한 이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다가 급기야 자신은 그 수준에 이르지 못 하리라는 생각에 우울해지신 적이 없으셨는지요? 예수 잘 믿는 것보다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에 믿음이 흔들려 본 적은 없으셨는지요? 지금이라도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 본 적은 없으셨는지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세상성공보다 더 행복한 삶이 맞냐고 물으신다면 오늘 본문은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2. 남편에게 외면받은 여자

여기 평생을 열등감과 피해의식, 그로인한 집착으로 고통받은 여자가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레아입니다. 그녀는 태생부터 불행했습니다. 야곱이 둘째로 태어난 것이 한이라면 래아는 너무나 아름다운 동생을 둔 조금도 아름답지 못 한 언니라는 것이 고통의 씨앗이었습니다. 17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 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직역하면 레아는 시력이 나쁘다는데 댓구로 동생 라헬이 시력이 좋다고 하지 않고 곱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면 단순이 시력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레아가 사팔뜨기와 같은 눈의 결함 때문에 보기에 아름답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왜 아버지 라반은 동생 라헬의 결혼식에 레아를 끼워넣은 것일까요? 라헬과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남자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오는 반면 단 한 명의 남자도 레아를 원하지 않았기에 이런 방식이 아니면 그녀를 비싸게 팔 기회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동생에게 끼워팔기를 당해야 하는 레아의 비참함은 결혼생활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지 않았던 딸은 남편 역시 원하지 않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야곱은 거의 그녀를 아내로 여기지도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레아는 비참하고 외롭고 공허했습니다. 그녀는 절박하게 남편의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라헬과의 경쟁과 질투와 시기로 괴로웠습니다. 외모로는 동생과 경쟁할 수 없었던 그녀는 아들을 낳는 것으로 남편의 사랑을 얻어내려 하였습니다.

3. 그녀를 사랑한 진짜 남편 

그러나 일생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 했던 가련한 레아를 사랑해 주신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를 불쌍히 여겨 출산을 하지 못 한 라헬과 달리 아들을 여섯이나 주셨습니다. 31절입니다.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오늘 본문은 그 중 네 명의 아들이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레아는 자녀를 얻은 기쁨보다는 남편의 마음을 얻는데 집착했습니다. 32절입니다.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러나 야곱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둘째를 낳았을 때도 여전히 그녀는 외로웠습니다. 33절입니다.

(창 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남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출산에 매달렸습니다. 34절입니다.

(창 29: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그러나 아들 셋을 낳아도 야곱의 마음은 레아에게 조금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자녀의 은혜가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를 모르고 아들을 주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녀에게 주시고자 했던 진짜 사랑은 남편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사랑이었습니다. 레아는 야곱의 라헬을 향한 집착과 라반의 탐욕과 속임수로 만들어진 이 역기능 가정의 불행 속에서 유일하게 영적 성장을 경험한 이였습니다. 야곱도, 라헬도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데 오직 레아만이 자신의 삶에 여호와께서 일하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셋째 아들을 낳을 때까지 레아의 관심은 오로지 아들을 통해 남편의 사랑을 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여호와께서 주셨음을 인정하면서도 감사도, 찬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남편이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면 감사가 나왔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넷째 유다를 낳았을 때 그녀의 시선이 비로소 남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듯 보입니다. 35절입니다.

(창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여전히 남편은 라헬만 바라보는데도 레아의 입에서는 찬송이 나옵니다. 그녀는 이제 아이를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얻어내서가 아니라 여호와이 주신 사랑때문에 그 분만으로도 찬송할 이유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는 여호와야말로 그녀에게 변하지 않는 참된 사랑을 주시는 진정한 남편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 54:4-5입니다.

(사 54:4) …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사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4. 레아가 받은 진짜 사랑

레아의 이런 영적 성장은 라헬과 비교됩니다. 레아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남편 야곱에게서 여호와 신앙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버지 라반의 집은 여호와가 아닌 우상을 섬기는 집안이었습니다. 이는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날 때 동생 라헬이 아버지의 신상을 숨겨서 떠나려 했던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창 31:30 이하입니다.

(창 31: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 (창 31:34) 라헬이 그 드라빔(수호신상)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헬이 아버지의 우상숭배를 따랐던 반면 레아는 남편이 전한 여호와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고난을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며 은혜를 구했고 아들을 주심이 여호와의 긍휼임을 깨달았고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남편은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라헬은 세상남편에게 사랑받았지만 레아는 하늘의 남편에게 사랑받았습니다. 라헬은 잠시 동행한 남편에게 사랑받았지만 레아는 영원히 곁을 떠나지 않는 남편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래서 레아가 받은 복은 라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라헬은 길에서 객사하여 베들레헴 근처에 홀로 묻혔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남편 야곱과 함께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묻힌 족장들의 무덤 막벨라굴에 묻혔습니다. 세상에서는 라헬이 더 큰 사랑을 받은 것처럼 보이나 믿음의 조상의 계보를 잇는 영적 어머니의 자리에는 레아가 묻힌 것입니다. 레아가 낳은 유다에게서 인류를 구원하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습니다. 땅에서 잠시 누린 라헬의 행복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을 레아는 선물받은 것입니다.

죽어서 누리는 영광이 무슨 소용이야? 살아서 복을 누려야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신앙의 세계를 아직 보지 못 하고 있습니다. 참신앙은 짧은 세상의 영광과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영광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시야입니다.

(고후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참신앙은 날로 스러져가는 세상의 영광과 날로 커져가는 영원한 소망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5. 남편없는 자의 남편

레아의 진정한 남편이 되신 하나님은 그녀를 영원한 사랑으로 품으시고 참된 행복을 선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처럼 외면당한 이, 거절당한 이, 사랑받지 못 한 이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사랑을 주십니다. 외모와 조건을 보고 환영하는 세상과 달리 아무 것도 보지않고 조건 없이 환영해 주십니다. 젊음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사랑이 아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진짜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당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레아와 같이 이 땅에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 54장입니다.

(사 53:2)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었다. (사 53: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표준새번역)

하나님의 아들이 왜 레아처럼 이렇게 외면받는 모습으로 오셔서 버림받기까지 멸시를 받으셨습니까? 레아와 같이 세상에 외면당하고 거절당하고 멸시받는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과 행복의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사 53:5) …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표준새번역)

오늘 여러분은 세상의 무엇이 부러우십니까? 부와 성공과 자랑거리가 부러운 이유는 그것이 여러분에게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을 손에 쥐면 또 다른 것이 금방 부러워집니다. 이 지구의 모든 재화를 모아도 단 한 사람의 빈영혼을 채우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만큼 우리 영혼의 결핍은 크고 거대합니다. 그 결핍을 채우는 유일한 만족과 마르지 않는 충만한 기쁨은 오직 하나님의 참사랑에서 나옵니다. 이 참사랑이 없기에 우리는 부럽고 외롭고 공허합니다.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남편, 나그네의 가족이 되시는 하나님은 멸시받는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멸시받는 자에게 참되고 영원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참사랑은 우리의 모든 궁핍함과 외로움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으로 넉넉히 채우고도 남습니다. 그 참사랑을 깨닫고 아는 이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 참사랑을 받은 이는 비로소 레아처럼 ‘그 무엇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때문에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리로다’ 고백합니다. 이런 만족과 감사의 고백이 그리스도의 참사랑으로 인해 여러분의 입술에서 터져나오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