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2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외로운 인생의 소망'(마태복음 1:18-25) – 김도완 목사

12월 21, 2024

Series: 주일예배

Book: 마태복음

마 1:18-25/외로운 인생의 소망

241222 주일설교

1. 외로운 인생

여러분, 마지막으로 시를 읽어보신 게 언제였나요? 시 한 편 읽지 못 하도록 바쁘게 살아가시는 여러분을 위해 한 편을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서 발췌했습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되시나요? 내 이야기 같다, 정말 외롭다 하시는 분 손 들어 보시겠어요? 사실 고아나 독거노인만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인간 삶의 조건인 듯 묘사합니다. 기독교인인 그는 심지어 하느님도 가끔은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하여 유한한 인간은 더더욱 외로움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 노래합니다.

2. 더불어 사는 인생

그러나 외롭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더불어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은 애초에 혼자 살도록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부부와 가족, 사회 그리고 공동체로 더불어 살게 하셨습니다.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는 인간이 다른 종의 동물과 경쟁하여 이기고 오늘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이루어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이유는 사회를 이루는 능력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개인으로 인간은 사자나 코끼리를 이길 수 없지만 사회를 이루면 그 종을 멸종시킬 정도로 뛰어납니다.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실내에서 환한 빛이 비추는 공간에서 지구반대편에서 전송되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며 전자악기의 소리와 마이크를 이용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몇몇 천재가 발명한 기술을 모두가 공유하며 다른 이가 만든 발전기와 건물과 온갖 기술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사회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신학은 인간의 존재방식을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서도 가르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3위, 3 person이 1체 1 essence를 공유하는 이 존재방식을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님이 사랑안에서 하나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제자들도 사랑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3. 분열시키는 죄악

하나님이 인간을 공동체로 살도록 창조하셨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외롭습니까? 그 이유는 죄와 악이 인간관계를 갈갈이 찢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아담과 하와가 서로 탓하며 연합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창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과 여자에게 탓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 아내와의 연합을 잃어버렸습니다.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죄와 악은 또한 형제의 연합을 깨뜨렸습니다. 가인은 시기심에 동생 아벨을 죽이고 자신에게 부여된 연합의 특권과 의무를 모두 내팽개쳤습니다.

(창 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모든 죄와 악은 연합을 깨뜨립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지독한 외로움의 감옥에 갇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은 외롭고 고립된 이들을 버려두지 않고 위로를 주십니다. 시 10편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 10:14) 이 서러움, 이 억울함을 당신은 보셨습니다. 손수 그들을 붙들어주시니 당신은 외로운 자들이 의지할 분이시며 고아들의 도움이십니다.(공동번역)

이런 사랑의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외로움의 감옥에서 해방시키고자 하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성탄의 계절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겪을 외로움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4. 외로움을 대신 겪으신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거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나 동시에 당신의 마음을 둘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외면당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많은 무리에게 외면당하셨습니다.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거절감과 외로움에 고통당하셨기에 가까이 있던 열두 제자들에게 가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두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이 체포당하시자 모두 당신을 배신하고 도망쳤습니다.

(막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성부 하나님에게서마저 외면을 당하셨습니다.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죄와 악이 없는 분이 왜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처절한 외로움을 겪으셔야 했습니까? 우리의 연약함 곧 외로움과 서러움을 당신이 대신 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5. 연합시키시는 예수님

대신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참된 연합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연합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탄의 계절에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주님의 별명을 통해 분명히 밝힙니다.

(마 1:23) “…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더 이상 죄와 악으로 우리 죄인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외롭게 살아가지 않도록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십자가로 모든 죄를 씻고 악을 멸하셔서 이제 깨끗한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십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마 28:20)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거룩한 신랑이 되신 예수님은 외롭고 쓸쓸했던 우리를 거룩한 신부로 삼아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연합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 연합의 약속을 이루시려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요 16:7) “… 가면 내가 성령을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 성령님으로 인해 신랑 그리스도와 결혼하여 연합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 결혼생활은 어떠합니까?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삼위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죄와 악으로 점점 더 큰 외로움에 고통받는 이 시대에 진정한 소망이 됩니다.

6. 연합의 기적을 이루는 교회 

우리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그 어느 교회보다 이 시대에 소망의 빛을 비출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합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두 교회가 연합하는 기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개혁장로교회와 새로운교회가 연합하여 새로운개혁교회로서 첫 예배를 드리는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할렐루야!

C.S.루이스가 친구인 카톨릭신자에게 농담을 했답니다. ‘이보게, 성경 어디에 마리아가 신성한 존재라는 가르침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 그가 이렇게 놀리더랍니다. ‘그럼 성경 어디에 그리스도의 몸이 그토록 갈갈이 나뉘었다고 가르치던가?’ 개신교회가 다양한 교파,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황을 꼬집은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교파, 교단 그리고 교회의 분열로 늘 비난받아 왔습니다. 개신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선교적 도전에 직면하여 보여주어야 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 중 하나가 연합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 관점, 처지, 출신을 넘어서서 진정한 연합을 보여주는 것은 말없이 하는 선교의 가장 큰 외침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된 새로운개혁교회가 이 소망을 세상에 보여주는 비결은 사랑의 접착체로 서로를 하나로 붙이는 것입니다. 개혁장로교회도, 새로운교회도 모두 가인의 돌맹이에 맞아 찢긴 상처를 품은 아벨입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약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깨진 여러분의 마음과 찢긴 가정과 부서진 관계를 치유하는 약도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외로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쁨으로 가득 채울 능력도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는 성령님의 사랑입니다.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님 안에서 하나되는 기적을 세상에 보여주는 새로운개혁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상처와 외로움으로 깨진 여러분의 가정과 관계와 마음에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