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4:29-37/짐승이 되는 이유
250112 주일설교
1. 구하라법과 인면수심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슈 중 ‘구하라법’이 있습니다. 2019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여성아이돌그룹 카라의 멤버였던 구하라씨가 남긴 유산이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를 돌보아 온 오빠가 이 유산의 상속자였는데, 난데없이 9살 때 그녀를 버리고 떠나 연락 한 번 없던 생모가 20년 만에 장례식장에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한국의 민법상 친부모가 제 1상속자이기에 그녀가 결국 유산의 40%를 가져갔습니다. 이 일로 계기로 제 2, 제 3의 구하라엄마가 적지않다는 사실이 조명되며 법개정 여론이 일어 6년 만인 작년 8월 소위 구하라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법의 내용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직계존속은 상속자격을 박탈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제정의 배경에는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자신이 버린 자녀의 유산을 요구하느냐’는 여론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고사성어로 ‘인면수심’이라 하는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짐승의 그것으로, 언행이 염치없고 흉악하다는 뜻입니다. 왜 사람이 짐승처럼 생각하고 행동할까요? 원래 인간이 죄인이니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이 짐승처럼 변하는 것인지 알면 우리 스스로 조심할 수도 있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도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느부갓네살왕입니다.
2. 짐승이 되는 이유
그는 기원전 6세기경 신바벨론제국의 2대왕으로 근동의 패권국 앗수르와 애굽을 차례로 물리치고 애굽강에서부터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제국의 전성기를 연 인물입니다. 당대 최고의 셀럽으로 오늘날의 일론 머스크의 명성, 제프 베이조스의 부 그리고 미대통령의 권력을 한 손에 쥔 인물입니다. 그런 뛰어난 인물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권력을 잃을 뿐 아니라 이성을 잃고 무려 7년 동안 들에서 짐승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33절입니다.
(단 4: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으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왜 그는 짐승처럼 지내야 했습니까? 그가 한 이 말 때문이었습니다.
(단 4:29)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 때 (단 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짧은 두 구절 안에서 그는 다섯 번이나 ‘내가’란 표현을 세 번, ‘나의’란 표현을 두 번 씁니다. 그의 말은 이 거대한 제국 바벨론의 영광은 자신이 만든 것이며 당연히 자신의 것이란 뜻입니다. 그는 화려한 바벨론왕궁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졌습니다. 내가 이루었고 내 것이다! 이것만큼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오만과 자아도취에서 인생은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31절은 이런 인생이 받는 심판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줍니다.
(단 4: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단 4: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오만과 자아도취에 빠진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영광과 존엄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이 심판의 시작입니다. 그 결과 인간의 마음 곧 이성과 양심을 잃고 짐승같은 언행으로 살아갑니다.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사리분별을 못 합니다. 흉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배웠고 높은 지위에 있다는 이들이 짐승같은 짓을 부끄러움 없이 하는 일을 봅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에 ‘내가 했노라’는 말이 붙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이건 모두 내 것이야, 내 것을 지켜야 해’ 하는 생각이 가득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이 키웠습니까? 여러분의 재산은 여러분의 것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이 일구어 여기까지 왔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 때가 바로 오만과 자아도취의 술에 취해 이성을 잃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도 그 영혼과 생각이 짐승의 그것처럼 추하고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짐승의 행동이 나옵니다.
3. 하늘을 우러러 보라
이런 짐승같은 삶이 사람의 생각을 되찾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34절이 그 답을 줍니다.
(단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은 그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였고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저서야 그의 총명이 돌아왔습니다. 즉 짐승의 생각이 사라지고 사람의 마음, 이성과 양심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총명 곧 지혜란 무엇입니까?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예배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이 짐승같은 우리 죄인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지, 거지같은 우리 인생에 얼마나 풍요로운 분이신지, 고아같은 우리 사람에게 얼마나 따뜻한 아버지이신지 깨닫는 마음입니다. 이 때 비로소 우리는 짐승의 마음을 버리고 사람의 마음을 회복합니다.
이 땅에 가득한 짐승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눈을 땅에 고정시키고 땅만 바라봅니다. 땅에서 떨어진 동전 하나라도 주워 배를 채울까 전전긍긍하는 거지처럼 땅만 바라봅니다. 세상만물의 주인을 아버지로 둔 자녀처럼 당당히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지 못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인생에게 당당하게, 사람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생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땅의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과 그 나라와 의와 생명과 진리를 구해야 합니까?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더 이상 우리는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의 시민권을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시민권을 얻었으면 미국의 풍요로운 삶을 누려야 합니다. 맨날 한국이 좋았어, 한국에선 내가 얼마나 잘 나갔냐면… 하고 있으면 더 불행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이 되었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영생을 얻기까지 의를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
끔찍한 범죄와 살인을 목격한 사람은 그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습니다. 행복한 가정과 성실한 사람과 승리하는 인생을 보면 행복과 소망과 용기를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땅의 욕심과 허영만 바라보면 염려와 다툼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풍요롭고 자비롭고 의로우신 분을 바라보면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얻습니다. 땅의 염려를 모두 버리고 하나님나라의 복을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4. 열두 달의 유예기간
오늘 우리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했다는 오만과 자신의 것이라는 허영이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벌써 짐승의 그것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겐 기회가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에게도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은 ‘열두 달이 지난 후에’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단 4:29)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 때 …
무엇으로부터 열두 달입니까? 전문맥을 보면 그가 흉흉한 꿈을 꾸었고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해 주며 느부갓네살에게 짐승과 같이 변하는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예고하고 미리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고 경고한 때로부터 열두 달이 지났다는 말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꿈해석을 마친 후 다니엘이 주는 권면입니다.
(단 4: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즉 하나님은 꿈과 다니엘을 통해 느부갓네살이 짐승과 같이 변하지 않을 수 있도록 미리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 경고로부터 느부갓네살은 열두 달 무려 일 년의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깨닫고 돌이키지 못 하고 결국 짐승과 같이 되어 7년을 들판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고난에서 잘 빠져나오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고난을 잘 예방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길은 경고를 귀기울여 듣고 돌이켜 그 고난을 피하는 사람입니다. 의사가 우리를 미워해서 경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경고를 귀기울이지 않으면 얼마나 고생을 할 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귀기울여 듣고 생활을 고치고 식단을 바꾸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이들이 주장하듯,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경고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돌이키지 않으면 얼마나 비참하게 추락할지 잘 아시기에 경고하십니다.
지금 우리 인생은 열두 달의 유예기간과 같습니다. 열두 달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제가 렌트사는 집 일년 계약서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혹 내가 했노라, 내 것이니라 하는 말이 아직도 우리 생각과 입술에 붙어 있지 않습니까? 모두 버려야 합니다. 모두 선하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모두 풍요로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 세입자로 왔습니다. 집문서를 쥐고 있으니 여러분의 것 같습니까? 열두 달이 금방 지나가듯 100년도 금방 지나갑니다. 그런데 소유권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 집을 자녀가 계속 살지, 남에게 넘어갈지 여러분이 어떻게 장담합십니까! 우리도, 자녀도 잠깐 하나님의 땅에 렌트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약끝, 하시면 인생렌트 끝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양식을 얻어먹고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누리고 삽니다. 그렇다면 내 것, 내 것 하고 내 능력, 내 자랑, 내 성공이라 착각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착각입니까? 더 늦기 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지혜를 얻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입술에서 지혜를 회복한 느부갓네살의 찬양이 우러러 나오기를 축복합니다.
(단 4: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