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6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영광을 위해 내려가다”(요한복음 18:1-11) – 김도완 목사

1월 25, 2025

Series: 주일예배

Book: 요한복음

요 18:1-11/영광을 위해 내려가다

250126 주일설교 요한복음

1. 좁은 길로 가라

기독교학교인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십계명에 대해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박해받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고 전성은 교장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다는 이 십계명은 대단히 비현실적입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으로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이렇게 살고 싶은 분, 자녀에게 이렇게 직업을 선택하라고 하실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십시오. 인간의 본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런 교훈을 왜 전성은 교장은 제자에게 가르쳤던 것일까요? 과연 이기적인 인간이 이런 가르침을 따를 수 있을까요? 그 답을 가르쳐주시고 직접 보여주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이 가르침의 첫 번째 비밀을 이렇게 들려주셨습니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사람들이 찾지 않은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요, 모두가 원하는 넓은 길은 오히려 멸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설적 진리를 예수님은 당신이 직접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예입니다.

2. 스스로 가신 좁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밤 제자들과 최후의만찬을 마치신 후 기드론골짜기를 건너 겟세마네동산으로 들어가셔서 체포되신 사건을 소개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공관복음은 이 동산에서 고뇌의 기도시간에 주목하는 반면 요한복음은 기도를 마치신 후 보이신 주도적인 모습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는 과정은 유다의 배신과 대제사장 무리의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결정하시고 주도적으로 행동하신 결과입니다. 4절이 이를 강조합니다.

(요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은 원하셨다면 얼마든지 이 무리를 제어할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6절이 보여줍니다.

(요 18: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단지 말씀만으로도 그 무리를 물리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마치 무기력한 사람처럼 그들에게 체포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사자가 개목걸이에 목을 내어주고 끌려가는 것처럼 모순적입니다. 포효 한 번과 뿌리침 한 번으로도 떨쳐버리고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겁쟁이의 손에 새끼강아지처럼 묵묵히 끌려가는 꼴입니다. 이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바입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은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십자가고난이 진정한 왕으로 등극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체포당하고 갇히고 고문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길이 어떻게 왕이 되는 길입니까?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이 역설적 진리에 대해 이미 설명하셨습니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 말씀은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수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 부활과 승천으로 높임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 들리게 하셨습니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으시고자 스스로 고난의 자리로 내려가셨다는 말입니다.

4. 사랑을 위하여

그런데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십니까? 굳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왕이 되시나요? 그냥 하늘에 계시면 수치와 고난도, 죽음도 겪지 않고 그냥 영광 중에 계시는 것 아닙니까? 왜 높은 곳에 계시는 이가 높아지기 위해 추락을 겪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 비밀이 바로 좁은 길로 가라는 가르침의 두 번째 비밀입니다. 그 비밀은 바로 사랑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3장의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왜 부활과 승천으로 들리려 십자가에서 먼저 들리려 하십니까? 그 이유를 15절에서 이어서 설명하십니다.

(요 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당신의 희생으로 인해 모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에 계시면 당신은 완전한 영광 가운데 부족함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죄와 악으로 멸망할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광활한 우주의 한귀퉁이에 떠다니는 티끌보다 작은 점 위에서 아둥다웅 다투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죽이기를, 찰나보다 짧은 순간, 소리 한 번 지를 시간보다 짧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인 아메바나 다름없는 우리를 하나님은 지으셨고 택하셨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은 온 우주를 내려다보는 높고 존귀한 보좌에서 이 티끌보다 작은 오염된 땅에 내려와 우리의 추한 죄를 대신 지고 수치와 슬픔의 십자가에 달리시기를 택하셨습니다. 그 희생으로 우리는 모든 죄를 씻음받고 악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영광을 누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기꺼이 달리신 이유입니다.

5. 역설적 진리의 비밀

모든 진리는 역설입니다. 진정으로 높아지려면 내려가야 합니다. 높아지려 하면 오히려 추락합니다. 진정으로 살려면 죽어야 합니다. 살려고 하면 오히려 죽습니다. 진정으로 얻으려면 내어주어야 합니다. 움켜쥘수록 더 빨리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갑니다. 진정으로 승리하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미워할수록 오히려 패배합니다. 진리가 역설인 이유는 보이는 것만 의지하여 살아가는 우리를 공의롭게 판단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눈을 열어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이기적인 근시안적인 우리가 눈을 열어 역설적 진리를 좇아 살아가도록 만드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역설적 진리를 살아가는 분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의 그 사랑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8절을 보면 예수님은 당신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제자들을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요 18: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 배신자들아. 조금 전까지 나를 위해 목숨도 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인간들이 비겁하게 다 나를 버리고 도망가느냐?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그들의 영과 육을 모두 지키려 하셨습니다. 9절입니다.

(요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의 사랑은 당신을 잡으러 무기를 들고 몰려온 원수들을 향해서도 가리지 않고 부어졌습니다. 제 분을 이기지 못 한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치자 예수님은 그의 귀를 치유하여 주셨다고 누가복음은 보고합니다.

(눅 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원수가 망하기를 바라고 망하는 것을 보며 ‘잘 됐다. 고소하다.’고 하는 우리와 달리 예수님은 원수마저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스스로 고난의 자리까지 내려오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 죄인과 원수를 향한 설명할 수 없는 사랑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불가능해보이는 길, 좁은 길을 갈 수 있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죄인마저 긍휼이 여기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6. 사랑과 믿음으로 가는 

전성은 교장이 한국최고의 명문대를 나와 최고대학의 학장자리를 마다하고 다 쓰러져가는 거창고등학교에 부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육기회를 얻지 못 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자신을 박해한 군사정권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낮아지는 길을 가셨기에 하나님은 이름도 없는 시골고등학교를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거창고등학교로 높여주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넓고 편하고 쉬운 길만 가려는 것 같지만 정말 그랬더라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은 진작에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믿는 작은 예수, 작은 전성은이 오늘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묵묵히 좁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방황하는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기피하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사람들 위에 서려 하지 않고 사람들 발에 치여 쓰러진 이를 일으키면서, 부귀영화보다 사명과 섬김의 삶을 구하면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선교지에서 묵묵히 좁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 길을 가게 만드는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입니다. 그 능력의 빛 앞에서 탐욕과 이기심과 분노와 미움의 독버섯은 죽고 의와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나라는 일어섭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영광의 보좌까지 높이 올리우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가시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