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6-11, 19-20/고난, 지연된 행복
250223 주일설교
1. 고난 없는 인생은 없다
영어속담에 No house without a mouse란 말이 있습니다. ‘쥐가 없는 집은 없다’는 이 속담은 문제 없는 집이 없다는 뜻입니다. 겉보기에 다 유복해 보여도 남모르는 문제는 있기 마련입니다. 질병일 수도, 가난일 수도, 자녀일 수도 혹은 신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겪는 문제가 무엇이든 여러분 만의 것이 아닙니다. 고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전도서는 그래서 인생을 이렇게 평합니다.
(전 7:14) 일이 잘되어 갈 때는 기뻐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는 생각하라. 하나님은 행복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므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은 행복만 주시고 고난은 안 주시면 안 됩니까? 왜 행복과 고난을 번갈아 주십니까? 대부분 간과하지만 하나님이 행복을 엄청나게 많이 주셨습니다. 물론 고난도 같이 주십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분명한 것은 여러분을 괴롭히시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어떤 교우님께서 ‘하나님이 나만 콕 찝어 괴롭히시는 것 같아요. 저 좀 내버려 두라고 목사님이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시더군요. 하나님은 새디스트가 결코 아니십니다.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죄를 버리게 만들려는 사랑의 징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 인생을 도구로 쓰기를 원하셨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잘 성장시켜 하나님을 닮게 하기를 원하셨을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에게 더 큰 복을 주시고 그 복을 잘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준비시키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깊은 사랑, 오묘한 섭리가 들어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한나와 엘가나가 바로 이 진리를 경험한 부부입니다.
2. 고난끝에 만난 행복
오늘 본문은 두어 주 전 마가의다락방에서 공부한 말씀인데 주일에도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교우들이 계셨습니다. 사사시대의 끝무렵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레위지파 엘가나와 한나 부부는 불임인 한나로 인해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여럿 가진 엘가나의 다른 아내 브닌나는 한나를 조롱하고 괴롭혀서 그녀의 슬픔과 괴로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삼상 1:6) 브닌나는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그녀를 몹시 괴롭히고 업신여겼다. (삼상 1:7) … 온 가족이 예배하러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가 한나를 더욱 비웃고 조롱하며 학대하므로 한나가 울고 음식을 먹지 않을 때가 보통이었다.
짧지않은 세월을 눈물로 고통을 달랜 한나는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삼상 1:19) … 여호와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기억하셨다. (삼상 1:20) 그래서 한나는 임신하고 때가 와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녀는 그 아이 이름을 ‘사무엘’이라 짓고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하고 그 이유를 밝혔다.
마침내 사무엘을 주신 것은 행복인데, 오랫동안 눈물로 기다리게 하신 것은 고난입니다. 기왕 행복을 주실 것, 왜 고난을 통해서 주십니까? 왜 브닌나처럼 진작에 주시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브닌나처럼 여럿 주시지 않았나요? 왜 그토록 많이 울고 서러움을 겪고 괴로워한 끝에서야 아들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 한나와 엘가나를 변화시키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십니까?
3. 기도의 사람으로 만드셨다
첫째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한나와 엘가나는 기도의 사람으로 바꾸셨습니다. 엘가나의 집안은 유복했습니다. 그들은 매년 절기를 꼬박고박 지켰고 사무엘을 성전에 드릴 때 수소 세 마리를 제물로 드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집안이었으니 한나의 불임이 없었다면 그들의 기도생활이 깊고 절실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집안도 넉넉한데 소원대로 아들도 여럿 가졌다면 한나는 부족한 것이 없어 거만하고 허영이 가득한 부잣집 마나님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임은 그녀를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삼상 1:10) 한나는 마음이 괴로와 여호와께 기도하며 울고 부르짖다가
이런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한나의 마음은 겸손하고 진실해 졌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아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이의 마음이 얼마나 복된지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고난은 여러분을 진실한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진실한 기도로 우리의 마음이 겸손하고 가난해질 때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주인되시기 적합한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상처난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이 비로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은 고난도 허락하십니다.
4. 헌신의 사람으로 만드셨다
둘째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한나와 엘가나를 헌신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한나는 기도 끝에 하나님께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겠다는 헌신의 기도를 드립니다.
(삼상 1:11) 이렇게 서약하였다. ‘전능하신 여호와여, 이 여종을 굽어살피소서. 내 고통을 보시고 나를 기억하셔서 아들 하나만 주시면 내가 그를 평생토록 여호와께 바치겠습니다…’
아들 없는 여자에게 생긴 하나밖에 없는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 아들을 하나님의 성전의 일꾼으로 평생 섬기도록 드리겠다는 기도는 그녀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어떻게 이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결단을 그녀가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불임의 결핍을 통해 그녀는 아들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핍과 고난을 겪어보지 않고 이 진리를 깨닫기 어렵습니다. 브닌나처럼 마음먹은 대로 아들을 여럿 낳았다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부만 하면 1등, 시험만 보면 합격, 비지니스만 하면 대박! 이런 사람은 세상일이 다 제 마음대로 되는 줄 알고 그렇기에 얻은 것이 자 제것인 줄 압니다. 공부하면 되는데 왜 안 해? 열심히 하면 돈 버는데 왜 못 해? 좀 똑바로 하지, 왜 자꾸 실패해? 기고만장합니다. 그러나 고난과 결핍을 겪고 간절히 기도해 보면 그 모든 것이 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제 것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학교에 보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좋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일한 직장과 고객과 거래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고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놀라운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그렇기에 주신 하나님께 기꺼이 돌려드리는 헌신이 가능합니다.
쓰러진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이 쓰러져 본 사람입니다. 그런 경험 없이 쓰러진 사람의 아픔을 모르기 때문에 돕지 못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께 기꺼이 드릴 줄 아는 헌신의 사람, 이웃을 위해 낮은 곳에 내려갈 줄 아는 헌신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5. 찬송의 사람으로 만드셨다
셋째 하나님은 한나와 엘가나를 찬송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녀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고 2장 1절에서 10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그 첫 구절입니다.
(삼상 2:1) 한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여호와께서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축복하시고 높여 주셨으므로 내가 원수들에게 뽐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구해 주셨으니 나는 정말 기쁩니다.”
10절까지 이어지는 찬송을 들어보면 그녀의 찬송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감격으로 가득합니다. 율법교육도 안 받는 유대여자의 하나님이해로서는 놀랍도록 깊습니다. 신학교도 안 다닌 여집사님의 찬송이 놀라운 하나님에 대한 통찰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통찰과 확신을 얻었을까요? 바로 그녀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게 만듭니다. 고난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은 성경을 읽고 공부해서 안 하나님과 그 깊이가 다릅니다. 성경공부는 교실에서 배우는 수영이라면 고난을 겪음은 수영장에 뛰어들어 배우는 수영입니다. 진짜 수영은 이론이 아닌 실습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고난의 대명사 욥 역시 자신이 직접 참혹한 고난을 견디고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한나와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게 되었고 자연히 찬송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모습을 알면알수록 더 뜨거운 찬송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6. 하나님 형상의 회복
기도와 헌신과 찬송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 복으로 갚으십니다. 2:21을 보면 그녀는 사무엘을 드린 후 다섯 남매를 더 얻습니다.
(삼상 2:21)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한나에게 복을 내리셔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으며 한편 사무엘도 여호와 앞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런 질문을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저는 운이 좋게도 삶에 고난이 별로 없습니다. 그럼 저는 기도나 헌신, 찬송의 사람이 되지 못 합니까?” 아닙니다. 그런 이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하나님은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녀도 기도와 헌신, 찬양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자녀를 당신과의 영광스러운 교제, 거룩한 동거에 초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이루신 일이 바로 이 하나님형상의 회복이며,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과 비교할 수 있는 복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 복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얻어낼 만한 복인데, 고난을 인내함은 그 대가 중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아이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하고 시험을 치르느라 스트레스 받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 아이가 얻게 될 기회에 비하면 극히 작은 대가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한 고난은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도 바울의 선언입니다.
(롬 8:18)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난 끝에 주님을 닮도록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시며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케 하여 당신과의 거룩한 교제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