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2:22-24, 31-37/아름다운 말의 비밀
250302 주일설교
1. 아름다운 말의 바람
최근에 한 교우께서 저에게 상담을 요청하시면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는 말을 예쁘게 못 해요. 제 마음은 안 그런데 사람들이 제 말에 자꾸 상처를 받는대요. 어쩌면 좋지요?” 전부터 지혜롭고 아름답게 말하는 법에 대해 설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교우의 고민을 들으면서 성령님께서 제게 도전을 주시는 것 같아서 상담을 마치며 시리즈설교약속을 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시간입니다.
말을 지혜롭고 아름답게 하고 싶은 바람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기도제목일 것입니다. 저의 대학시절 일기를 보면 그런 날이 참 많았습니다. ‘오늘도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내 입술을 다스릴 수 있을까?’ 여러분도 이 교우와 제가 가졌던 바람을 가져본 적 있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오늘부터 틈나는 대로 전하는 이 시리즈설교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2. 상처를 주는 이유
말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이유는 왜일까요? 두 가지 이유인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독사의 비유가 이해를 도와 줍니다. 예수님이 한 시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이를 고쳐주시자 무리는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당연히 크게 상처받으시고 화가 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그들의 말의 모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하셨습니다. 본문이 길어져서 읽지 않고 건너뛴 25-30절의 내용입니다. 이어서 그들의 말이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당할 것인지와 그들이 왜 그런 악한 말을 하는지를 꾸짖으십니다. 여기서 그들이 악한 말을 하는 이유를 34절이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
예수님은 참으로 적절하게도 독사의 비유를 드십니다. 독사에게 물리면 고통스럽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무는 이빨 때문이고 둘째는 그 이빨에서 나오는 독 때문입니다. 이빨이 말투라면 독은 의도입니다. 말이 아픈 이유는 말투 때문이기도 하고 그 말투의 의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독이 없는 뱀에게도 물리면 아프지요.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무례한 말투는 당연히 아픕니다. 종종 사람들이 ‘나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어.’라고 자신을 정당화하지만 나쁜 의도가 없어도 나쁜 말투나 표현을 쓰면 아픕니다. 여기서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는데요, 사람은 자신의 말은 의도로 평가하고 타인의 말은 결과로 평가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무례한 말을 했어도 나쁜 의도가 아니었으면 괜찮다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타인의 말은 그 말투나 표현이 무례하면 그 의도까지 나쁘다고 비난합니다. 인간은 이중성입니다.
3. 이빨과 독
아무튼 말투와 의도가 모두 아프게 합니다만, 더 큰 위험한 것은 의도입니다. 독사도 결정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해를 끼치는 것은 이빨이 아닌 독이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은 시간이 넉넉치 않으니 말투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말의 의도에 대해서만 다루겠습니다. 예수님도 본문 34절에서 그 의도가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독사의 자식들은 독을 품고 있는데 즉 악한 의도가 마음에 가득한데 어떻게 입에서는 선한 말과 표현이 나올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한 독 즉 악한 의도는 입의 말투와 표현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35절에서 더욱 선명하게 설명하십니다.
(마 12:35) 선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선으로 선한 말을 하고 악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악으로 악한 말을 한다.
마음에 선이 쌓여 있으면 선한 말을 합니다. 마음이 악이 쌓여 있으면 악한 말을 합니다. 마음에 독이 있으면 물어서 독을 쏘아 죽이고 마음에 약이 있으면 그 약을 발라 치료하고 살립니다. 33절도 보십시오.
(마 12:33)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좋은 마음에서는 좋은 말이 나옵니다. 나쁜 마음에서는 나쁜 말이 나옵니다. 그 말을 보면 그 마음에 무엇이 가득한지 알기 어렵지 않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악한 말은 그들 마음에 가득한 악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입에서 욕이나 저주나 무시나 멸시의 말이 나온다면 우리 마음에 그것이 가득한 것입니다. 말투를 고치기 앞서 이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이 마음을 그대로 둔 채 말투를 고치려 애쓰는 것은, 그런 자기계발서를 많이 봤습니다만,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 만들려는 것이나 다름없는 헛짓거리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이렇게 명하십니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4. 서랍에 숨겨진 독
여러분이 억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저는 그렇게 악한 마음을 품고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늘 좋은 의도로 하는데 상처를 받는다고 해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마음인데 아름답게 말하는 훈련을 어린 시절부터 받아본 적이 없는데가 그릇된 말투가 습관이 되어 상처를 주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개선의 노력이 효과를 빨리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 안에 있는 악을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자각도 쉽지 않고 개선도 오래 걸립니다. 물론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악을 내가 모를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혀 악한 의도가 없다고 확신하지만 그 때 우리가 들여다보는 의도는 의식의 테이블 위에 놓은 생각입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지금 이 말에 저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문제는 의식의 테이블 밑에 있는 무의식의 서랍 안에 든 생각입니다. 그 서랍에는 상대에 대한 무시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상대를 통제하고픈 권력욕이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허세가 자리잡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비난하고 마음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원망을 누군가에게라도 쏟아놓고 싶은 욕망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자신의 것을 먼저 챙기려는 욕심이 자라잡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모든 자신도 의식하지 않는 마음의 의도가 독입니다. 이 독은 반드시 상대에게 무례함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심지어 멸시감이나 정죄감으로 그 영혼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5. 독을 빼고 약을 넣기
그러면 어떻게 무의식의 서랍에서 그 독을 다 빼서 더 이상 이웃을 아프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독을 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약과 비타민을 가득 채워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독이 빠집니다. 그 치료하는 약과 비타민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의 마음은 자신을 낮추어 종과 같이 되시는 겸손함입니다. 이 겸손은 우리 마음에서 우월감과 허영과 허세, 자기자랑의 독을 뺍니다. 형제자매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미워하는 독을 뺍니다. 여러분이 오늘 만나는 이들 중에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단 낫지’하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그 마음이 독입니다. ‘저 사람은 내가 굳이 존중할 필요까지 있는가’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그 마음이 독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의 약으로 그 독을 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 겸손이 어떤 것입니까?
(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툼과 허영이 자기를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겸손한 마음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깁니다. 그 마음에서는 다툼이나 허영이 나오지 않습니다. 감사와 사랑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시민권인터뷰를 받으러 가서 그 영사 앞에서 얼마나 겸손하게 임하셨습니까! 여러분 비지니스에 수십만 불 계약을 하러온 바이어에게 얼마나 존중하며 대하셨습니까! 여러분이 죽을 암을 고쳐주신 의사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존경했습니까! 형제자매를 그렇게 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에서 온갖 좋은 열매가 가득 맺힙니다.
(갈 5:22) 그러나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과 (갈 5:23)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런 열매가 맺힙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이에게 성령님께서 일하시면서 마음에 이토록 풍성한 열매를 가득히 채워주십니다. 마음의 서랍에서 독이 빠지고 약이 가득하면 듣는 이를 아프게 하지 않고 아픈 마음을 치유합니다.
6. 치료하는 사랑의 말
오래 전에 읽은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어느 지하철에서 술취한 건장한 남자가 행패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에게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른 객차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 글을 쓴 젊은이는 오랫동안 무술을 연마하던 이였기에 자신이 이 취객을 제압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습니다. 벌떡 일어나 그를 마주하고 멈추라고 소리치자 그도 젊은이를 노려보며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차하면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그 취객을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보게, 청주를 마셨나?’ 고개를 돌려보니 머리가 하얀 노인이 그 취객에게 말을 건 것이었습니다. ‘남이야 청주를 마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나도 청주를 좋아한다네. 도대체 무슨 속상한 일이 있어 술을 그렇게 마신게야?’ 그러자 그 취객은 일순간 조용해지더니 주먹이 스를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앉아보게. 자네가 뭣 때문에 그렇게 속이 상했는지 좀 말해보게나.’ 그 노인 곁에 털썩 걸터앉은 취객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습니다. ‘아내가 죽었어요. 나는 직장도 잃었고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는 어린 아이처럼 노인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었고 그 노인은 마치 자기 아들을 달래듯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 남자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 글을 쓴 젊은이는 그를 힘으로 제압하려 했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고 글을 마쳤습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은 우리 마음에서 온갖 독을 다 빼내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가득히 맺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말은 병들고 죽어가는 영혼을 치료하고 살리는 생명수가 됩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성령의 생명수가 날마다 솟아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