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13:15/삶을 예배로 만드는 말
250720 주일설교
1. 행복을 주는 말
잘 알려진 식물학대실험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똑같은 조건의 화분 두 개를 두고 한 달 동안 한 쪽에는 계속 칭찬과 축복, 사랑의 말을 해주고 다른 쪽에는 욕설과 저주, 비난을 퍼부었더니 전자는 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란 반면 후자는 시들시들 죽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굳이 이런 실험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의 영향력을 실감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욕과 저주를 들은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칭찬과 축복을 들으면 일주일 내내 마음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당연히 세상에 사랑과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우리 성도는 입에 칭찬과 축복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눅 10: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샬롬)을 빌어 주어라.
반면 실수로라도 세상에 저주를 퍼뜨리는 욕과 정죄를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기도를 늘 드려야 합니다.
(시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돈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해야 합니까? 하지만 말로 하는 것은 얼마나 쉽습니까? 종종 큰 돈보다 진정성 있는 말이 더 오랫동안 행복을 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 이웃에게 행복을 전하는 가장 쉽고 빠르고 오래 가는 방법은 진정한 사랑과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2. 삶이 예배가 되도록
오늘 설교는 지난 3월에 했던 ‘말에 관한 시리즈설교’의 네 번째 시간입니다. 당시 3주 동안 아름다운 말, 절제하는 말, 의로운 말의 비밀에 대해 각각 설교했습니다. 기억나시죠? 물론 기억나지 않을 겁니다. 지난 주 설교도 가물가물한데 반 년 전 설교를 어떻게 기억합니까? 어쩌면 좋을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기억이 원망스러운 여러분을 위해! 오늘 말에 관한 네 번째 설교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고 실천하면 앞서 들으신 세 번의 설교의 교훈까지 모두 자동으로 적용되는 기적을 일어납니다. (얼마나 자비롭고 세심한 목사인지요, 저는!) 그 방법은 ‘항상 찬양의 말을 하라’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의 전반부를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봅시다.
(히 13:15)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언제나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립시다…
찬양의 제사를 드리라, 곧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권유입니다. 이 예배를 항상 드리라고 합니다. 그럼 주일예배뿐 아니라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때도 찬양을 하라는 말인가요? 그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모든 말이 찬양이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삶 전체가 곧 예배가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찬양하는 시간이 예배인데, 일상의 모든 말이 찬양이 되면 모든 일상이 예배가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는 로마서 12장 말씀의 실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3. 감사의 마음으로
일상의 모든 말이 찬양이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15절의 후반부가 그 답을 줍니다.
(히 13:15) …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
입술에 가득한 찬양의 말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감사가 마음에 가득할 때 맺히는 열매입니다. 이 원리를 예수님이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결국 입술에 찬양이 가득하려면 마음에 감사가 가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못 한 일이 더 많은데 어떻게 감사합니까? 이 답도 역시 본문의 전반부를 다시 보면 얻을 수 있습니다.
(히 13:15)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언제나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립시다…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깊이 묵상할 때 감사의 마음이 비로소 생깁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생애,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풍성한 열매는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100불짜리 파킹티켓을 떼면 무척 속이 상합니다. 그런데 100만 불짜리 로또를 맞아서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고 칩시다. 하나도 화나지 않을 겁니다. 100불 떼고 경찰에게 팁을 100불 더 줄지도 모릅니다. 100만 불을 거저 받았는데 그깟 푼돈이 대수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생명을 오늘부터 영원히 하나님나라에 초청하신 은혜입니다. 1,000억 불인들 그 은혜의 가치에 비길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어떻게 그 은혜가 주시는 기쁨과 감사를 빼앗을 수 있을까요!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예수님의 이 은혜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요, 감사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길입니다. 교회를 다닌다해도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감사가 생기지 않고 입술에 찬양의 열매가 맺힐 리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이런 감사와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4. 진심으로 찬양하면
그럼 일상의 모든 말이 찬양이 된다는 것이 할렐루야를 입에 달고 사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의 뜻은 우리가 모두 알듯이 ‘하나님을 찬양합시다.’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에 할렐루야를 고백하면 놀라운 영적 복을 자신과 듣는 이에게 모두 전할 수 있습니다. 삶의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님이야 교회에서 늘 할렐루야 하기 쉽지만 집이나 직장에서 말끝마다 할렐루야라고 하면 이 인간이 뭘 잘못 먹었나, 광신자인가 하는 눈초리로 이상하게 쳐다볼 겁니다. 맞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굳이 할렐루야를 써야만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에서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고 말을 하면 됩니다.
칭찬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쭐해 집니다. 그 마음이 생기는 순간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어리석은 죄인이 죄짓지 않고 바른 결정하게 해주신 주님, 베풀 것이 있도록 복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하고 진심으로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입술에 겸손의 열매가 맺힐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고,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제가 칭찬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교훈입니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억울하게 비난받거나 괴롭힘을 당할 때 화가 나고 같이 비난하고 싶어집니다. 그 순간 역시 ‘이 고난을 통해 저의 믿음을 정금처럼 변화되게 만들어주실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악한 이를 불쌍히 여기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아이고, 제가 부족했나 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당신에게 은혜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롬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낯 간지러워 입으로 말하기 어려우면 마음으로만 축복해도 됩니다. 그 사람이 축복을 받을 만한 이가 아니야! 그래도 좋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눅 10:6) 만일 평안히 축복을 받을만한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가 빈 평안이 그에게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안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조금이라도 친절과 배려를 받아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제가 뭐라고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게 해주십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 입에 아름다운 말의 열매가 맺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너그러우십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이 나옵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5. 삶을 예배로 만드는 말
사무엘상 25장을 보면 어리석은 나발의 막말로 인해 다윗이 화가 나서 부하들을 이끌고 그를 죽이러 나섰을 때 이를 들은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이 달려와서 다윗에게 엎드려 간청하기를, 하나님께 심판받을 어리석은 이 때문에 주의 종께서 손에 피를 묻히지 말라고 합니다. 그녀의 겸손하고 지혜로운 말을 들은 다윗이 이렇게 답합니다.
(삼상 25: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삼상 25: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아비가일의 말은 화가 난 다윗을 진정시키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말이 곧 찬양과 같았고 또 다른 이의 찬양을 불러일으켰던 것입습니다. 우리도 모든 순간에 우리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굳이 할렐루야를 붙이지 않아도 찬양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높이도록 만듭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우리 마음이 은혜와 위로와 기쁨을 얻듯이 우리 입술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행복을 주는 찬양의 말이 울펴퍼집니다. “저 사람과 대화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하고 위로가 되고 즐거워. 왜 그럴까?” 그 사람의 마음에서 감사와 찬양이 울려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란 단어가 한 마디도 안 들어가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이 됩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울려퍼지는 것은 아름다운 선율의 찬양입니까, 시끄럽고 괴로운 소음입니까? 모든 성도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모니가 울려퍼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