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15-26/제비 뽑아 얻으니
250824 주일설교 사도행전3
1. 성령을 기다리는 교회
지난 주 본문에서 예수님의 승천 후 120명의 무리가 한 일이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성령세례를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그들은 마가의다락방에 모여 함께 힘을 모아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럼 그들이 기도와 함께 성령님을 기다리기 위해 했던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그 답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답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으로 교회를 세워가려는 우리 새로운개혁교회 모든 성도가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2. 말씀으로 치유하다
첫째, 기도와 더불어 그들이 한 일은 말씀으로 치유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15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120여 명의 형제들 중에 일어서서 설교를 합니다. 16절을 보면 그 내용은 가롯 유다가 한 일과 그 결과가 성경의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행 1:16) “형제들이여, 예수님을 잡는 사람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유다에 대하여 성령께서 오래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해 예언하신 성경 말씀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유다의 배신 뿐 아니라 그의 비참한 죽음까지 성경은 이미 예고하고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20절입니다.
(행 1:20) “시편에는 ‘그의 집이 폐허가 되어 그 곳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그의 직분을 다른 사람이 갖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설교가 왜 필요했습니까? 이 때 제자공동체는 유다의 배신에 큰 충격과 상처을 받았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한 제자, 그것도 예수님이 특별히 세우신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해 십자가에 매다는데 앞장 선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제자들이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치며 공동체가 겪은 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충격과 상처를 베드로의 이 설교가 위로하고 치유했던 것입니다. 그의 배신과 그에 대한 심판이 이미 성경에 기록된 일임을 앎으로써 이 고난이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깨닫고 그로인해 큰 위로와 소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의 배신을 공의롭게 심판하셨으며 그의 악행마저도 구원의 완성을 위해 사용하시리라는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공동체가 기도 못지않게 힘써야 할 일이 바로 이 치유와 소망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후에도 성령세례가 몇 차례 더 나오는데 모두 두 가지 사례 중 하나입니다. 첫째는 기도할 때이고 둘째는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말씀들음의 대표적인 예가 고넬료 가족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중 겪은 일입니다.
(행 10:44) 아직 베드로가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리셨다.
충격과 상처를 입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새로운개혁교회 성도들 역시 원치 않던 일로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요즘 말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봐 놀라고 염려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이 트라우마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 하면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려다가 반대편 극단으로 치우치는 불행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치유하는 길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유다의 예처럼 우리가 겪은 악행마저도 이미 하나님의 주권적 통제 아래 있으며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셔서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을 때에 진정한 치유가 시작됩니다. 요셉의 이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은 악한 이들의 괴롭힘마저 사용하셔서 오늘 새로운개혁교회를 탄생하게 만드셨고 우리가 헛된 욕망과 게으름을 버리고 하나님나라를 구하도록 참소망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선하신 섭리를 믿고 순종할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치유되고 자유를 얻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모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이 새롭게 창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리와 치유의 말씀을 힘써 사모하고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가족처럼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세례를 받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일꾼을 세우다
둘째, 기도와 더불어 무리가 한 일은 일꾼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21절에서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한 사람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행 1:21) 그러므로 … 사람 중에 하나를 뽑아 …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 정관승인을 위한 공동의회를 열었는데 정관의 직분자 선출에 관한 기록을 보고 몇몇 교우들이 제게 같은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모두 형제, 자매만 있고 장로나 집사, 권사 같은 직분은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는 오해입니다. 제가 누차 강조했던 것은, 우리 교회에도 다른 장로교회와 똑같이 모든 직분이 있지만 꼭 필요한 경우, 공식석상이나 대외적인 서류 등의 기록할 때만 제외하고 일상에서는 호칭을 형제, 자매로 통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오해와 바람이 십분 이해가 갑니다. 한국교회에서 직분이 어느 새 영예로운 봉사의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뽐내는 계급으로 변질되어 교회에 큰 고통과 상처를 주는 일을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글 수는 없듯 직분의 부작용 때문에 직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직분이 제 자리를 되찾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직분자 곧 일꾼을 세우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첫째는, 우리 교회가 속한 장로교단의 헌법에 교회는 직분자들과 그들의 모임인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를 통해 운영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분 자체를 거부하려면 교단을 탈퇴하고 직분이 없는 브레드런 곧 형제교단 같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둘째는, 무엇보다 성경이 직분자를 세우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임명 뿐 아니라 사도행전은 집사임명의 전통을 설명하고 또한 장로임명에 대한 기록도 신약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딛 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예수님도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꾼을 세우는 것은 교회가 성령의 공동체로 쓰임받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성령님은 교회의 준비된 일꾼들을 통해 더 강력하게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준비된 일꾼일수록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권능을 가감없이 받아 행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양의 개스를 주입해도 4기통 엔진이 8기통 엔진과 같은 힘을 낼 수 없는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이가 준비된 일꾼처럼 권능을 받아 행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가 준비된 일꾼이 되어 성령님께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4. 끝까지 충성된 일꾼
셋째,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기준으로 일꾼을 세웠습니까? 이 기준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준은 충성되다고 공동체의 인정을 받은 일꾼입니다. 21절을 보면 그들의 충성됨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행 1:21) “그러므로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부터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 가시기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던 그 모든 기간 동안에 줄곧 우리와 같이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뽑아 우리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함, 이것이 충성됨의 증거입니다. 졸업생의 자질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실력을 보려면 성적을 볼 터이고, 성실함을 보려면 출석율을 볼 것입니다. 같은 성적이라면 수시로 결석을 한 이보다 개근상을 탄 졸업생이 더 성실하다 인정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잘 될 때나 고난당할 때나 항상 성실한 사람이야말로 충성된 일꾼입니다. 23절을 보면 베드로의 말을 듣고 공동체가 충성된 일꾼을 추천하였습니다.
(행 1:23) 그러자 그들이 두 사람을 추천했는데 …
오늘날 충성된 일꾼이라고 공동체가 추천하는 절차가 무엇입니까? 바로 투표입니다. 한 열 명이 모여 추천하면 대화로 되겠지만 백 명이 넘으면 대화로 누군가를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정확하게 의사를 모으는 길이 투표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친한 사람, 밥 사주는 사람, 듣기 좋은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 충성된 일꾼을 추천해야 합니다.
5. 하나님이 인정하신 일꾼
둘째 기준은 하나님이 지금 여기 필요하다고 인정하신 일꾼입니다.
(행 1:24) 그리고서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두 사람 중에 주님이 택하신 사람이 누군지 보여 주셔서 … (행 1:26) 그런 다음 제비를 뽑자 맛디아가 당첨되었다…
왜 기도하고 제비를 뽑습니까? 일꾼을 세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추천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방법일 뿐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선택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하나님의 선택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모든 일의 적합한 때를 아시며 모든 일을 이루는 최적의 방법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요셉은 이름이 셋입니다.
(행 1:23) … 하나는 바사바 또는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이었고, 다른 하나는 맛디아였다.
히브리식 이름 바사바와 요셉 그리고 로마식 이름 유스도. 이에 반해 맛디아는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이는 마치 다산 정약용이 정씨 집안 약용의 호가 다산인 것과 돌쇠의 이름이 하나인 것과 비슷합니다. 요셉이 맛디아에 비해 더 유명하고 신분이 높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이름이 하나뿐인 맛디아였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름없는 이를 택하셨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연약한 이를 들어서 강한 이를 부끄럽게 하시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맛디아의 은사가 더 교회에 필요했고 요셉의 은사를 다른 때에 쓰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공동체가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교회는 합당한 절차를 거쳐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일꾼을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음을 신앙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공동체에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새로운개혁교회가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쉬지 않는 기도와 치유하는 말씀으로 공동체가 정화되고 하나님께 충성되고 인정받는 일꾼을 세워 준비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새로운개혁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