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1-4/최고의 소원
250831 주일예배 사도행전4
1. 성령을 기다림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졸업을 기다리는 학생, 주말을 기다리는 직장인, 대박을 기다리는 사업 가, 새집 사기를 기다리는 주부, 은퇴를 기다리는 직업인들… 기다리는 이유는 그 대상이 주는 행복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그 기다림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던가요? 여기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이 기다림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 하신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세례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의 본론 곧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출발하는 장면입니다. 1장은 이 사건을 예배하는 서론이었습니다. 성령세례는 교회를 탄생시킨 사건이요,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을 설명 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성령세례를 바르게 이해하고 경험하지 않고는 기독교인의 신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때는 오순절입니다.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한자로 오순은 다섯 오, 열 순자를 써서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이란 뜻입니다. 그리스어로 50일 즉 펜테코스테를 번역한 말입니다. 구약에서도 같은 뜻으로 유월절 후 7주 후 에 지키는 명절이라고 칠칠절이라고도 부르고, 밀을 추수한 후 지킨다고 보리 맥자와 추수할 추자를 써서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니, 밀을 추수하는데 왜 보리 추수라는 의미의 맥추 절이란 표현을 씁니까? 이스라엘의 밀을 추수하는 봄에 한국에서는 보리를 추수합니다. 그래서 오역이 된 것 같습니다.
보리냐, 밀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추수감사축제에 성령님이 임하셨다는 점입니다. 왜 이 때입니까? 이 사건을 계기 로 본격적으로 영혼을 추수하실 계획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의 역사를 추수로 비유하셨습니다.
(눅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추수할 것은 영혼이요, 추수할 일꾼은 복음을 전파할 전도자들입니다. 여기서 성령세례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나라 곳간에 들일 영혼을 추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바라고 기다리는 이유도 그러므로 권능을 받아 증 인이 되어 복음을 전파함으로 영혼을 추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경험하지 못 했다면 그 이유도 우리가 증인이 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때 성령세례를 경험한 성도가 그 능력을 잃어버렸다면 증인이 되라는 부름에 순종하 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개혁교회 모든 성도들은 성령세례를 받아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나라를 위한 추수할 일꾼으 로 쓰임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바람과 불
2천 년 전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세례는 두 가지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첫째는 청각적인 현상인데 바람같이 임하심이고 둘째는 시각적 현상으로 불같이 임하심입니다. 2절은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마가의다락방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행 2:2)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왜 바람처럼 임하십니까? 신약성경의 언어인 그리스어 프뉴마는 호흡, 바람 그리고 영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루아 흐 역시 똑같이 호흡, 바람, 영이란 뜻을 모두 의미합니다. 즉 본문의 급하고 강한 바람은 하나님의 숨결, 호흡을 상징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을 의미합니다.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숨을 내쉬셨다는 말은 성령이 당신에게서 나오는 영이심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성 자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두 번째 특징은 불같이 임하심입니다. 3절은 성령님의 각사람 위에 불의 혀처럼 임하였다고 합니다.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바람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영을 상징한 것처럼 불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떨 기나무에 붙은 불로 나타나셨고 광야에서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고 시내산 정상에서도 불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바람소리와 불의 이미지는 성령세례가 곧 하나님이 영으로 성도들 안에 들어오셔서 동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의 동거, 이것이야말로 구원의 진정한 의미이며, 죄인을 사랑하여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 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자주 이 거룩한 동거의 소망을 노래하는지 모릅니다.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마 1:23) …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28:20)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에덴동산을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 위대한 계획, 가장 놀라운 은혜는 당신이 죄인된 인간과 동거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성령세례는 이 하나님의 소원이 드디어 실현되기 시작하는 사건입니다. 장차 완성될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과 성도는 완전한 영과 영으로 동거할 것입니다. 그 때의 동거가 결혼이라면 현재 성도가 경험하는 성령세례는 약혼과 같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육에 속하여 영이신 하나님을 모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님의 중매를 통해 그리스도와 약혼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저 약혼식을 한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날마다 약혼자이신 그리스도와 알콩달콩 행복한 사랑을 나누시기를 축복합니다.
3. 성령의 충만함
성령세례는 성도가 약혼자 신랑되시는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으로 들어가는 경험입니다. 4절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 만함을 받아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순종하였다고 합니다.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주의깊게 볼 것은 그들이 받은 것은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은 첫 인류도 아니고 그들도 성 령을 받은 날이 그 날이 처음도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예언하는 이들이었으
니 이미 많은 이들이 성령을 받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전에 성령으로 인해 고백하고 사역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베드로
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그가 한 고백이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명백히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이 일찍이 열두 제자를 전도여행으로 보내실 때 권능을 더하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약속하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할 때의 그 권능입니다.
(막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렇다면 제자들은 이미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권능도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오순절에 또 다시 성령 님을 보내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자들에게 그저 성령님이 머무시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님이 제자들의 전인격을 다스리시는 임재 곧 충만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남편이 다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합니다만, 그 사랑의 깊이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아내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으면 사랑이 식습니다. 어떤 이는 아내가 가정경제에 도움이 안 되면 사랑이 식습니다. 어떤 이는 아내와 성격이 안 맞으면 사랑이 식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아내가 나이들고 돈을 벌지 못 하고 성격이 안 맞아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합니다. 미지근한 사랑이 있고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뜨겁게 사랑하시며 동거하기를 원하시는 남편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그렇게 뜨겁게 모시고 사랑하고 동거할 수 있도록 마음의 집을 청소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120명의 무리가 모여 한 마음으로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미 이런저런 모습으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이 얼마나 충만하게 여러분을 다스리십니까? 얼마나 뜨겁게 여러분과 동거하십니까? 얼마나 강력하게 여러분을 복음의 증인으로 사용하십니까?
오순절 마가의다락방은 성령의 충만한 다스림을 바라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 모델이 됩니다. 우리가 한마음이 되어 힘써 기도하며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하고 성령님을 기다릴 때 성령님은 우리를 다스리되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충만하게 다스 리십니다. 충만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권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기다 리던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동거하는 하나님나라가 권능으로 우리 삶에 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이 충만하게 여러분을 다스리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