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22-36/기독교인인 이유
250907 주일설교 사도행전7
1. 왜 그리스도인가
여러분은 왜 불교도나 무슬림이 아니라 기독교인입니까? 태어나보니 부모님이 기독교인이거나 이민 와보니 주변이 온통 교회이거나 지인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은 아닙니까? 그럼 불교도집안에서 태어나거나 불교도 친구가 있었다면 기독교인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일까요? 비교종교학자처럼 모든 종교를 비교해본 결과 기독교인이 된 이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굳이 다른 종교가 아닌 혹은 무신론자가 아닌 기독교인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을 기독교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한자로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방식인 음차로 기독이란 말에 신앙을 의미하는 교를 붙여 기독교라고 합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우리 신앙은 그리스도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문인 사도신경에서도 성부와 성령에 비해 성자 그리스도에 관한 고백이 훨신 많습니다. 같은 일신교 전통을 가진 기독교가 유대교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도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에 대한 관점입니다. 왜, 어떻게 그리스도가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된 것일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 답을 오늘 본문이 들려줍니다.
2. 주와 그리스도이신 이유
오순절성령세례 후 베드로와 사도들이 마가의다락방을 박차고 나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인들까지 모여들어 그 설교를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문맥에서 베드로는 먼저 하나님이 구약시대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하신 대로 성령세례로 마지막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주되신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요, 우리 신앙의 대상이 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36절을 보십시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신약의 언어 그리스어 주는 퀴리오스이고 구약의 언어 히브리어로는 아도나이로 주인, 구원자, 선생 등이란 뜻입니다. 그리스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야의 번역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당신의 영을 주셨다는 의미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종합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택하여 당신의 영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왕이자 주인이자 구원자로 삼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그럼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주장하였을까요? 세 가진 근거가 있습니다.
3. 예언의 성취
첫째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실 주와 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을 예수님이 성취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베드로는 두 개의 시편을 예로 듭니다. 첫째는 본문 25-28절에서 인용한 시 16편입니다. 시 16:10을 인용한 본문 27절만 봅니다.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이어서 29절에서 덧붙이기를, 다윗은 죽어 그 무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 이 시는 다윗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선지자로서 자신의 후손 중 한 사람으로 장차 올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35절에서는 시 110:1을 인용하는데 이 역시 하늘에 올라가지 못 한 다윗에 관한 노래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에 관한 예언의 성취였다는 것입니다.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사실 신약의 모든 사건은 구약예언의 성취입니다. 구약의 예언을 모르고는 신약의 사건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는 누구보다 예수님 자신이 깊이 의식하고 계신 일이어서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이를 강조하셨습니다. 그 중 한 예가 감옥에 갇힌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당신이 정말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가 맞느냐고 질문할 때 사 26:19 등을 인용하며 주신 답입니다.
(마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마 11:5) 시각장애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한센씨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물론 이렇게 반론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외국인들은, 우리를 포함하여, 구약의 예언 자체를 믿지 않는데 그 성취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4. 권능과 표적
그래서 베드로는 22절에서 또 다른 근거를 내놓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서 드러난 신적인 능력 곧 권능과 기사와 표적입니다.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바로 앞에 인용한 마태복음에서도 설명된 것처럼 예수님은 눈 먼 자를 보게 하시고 귀 먼 자를 듣게 하시고 온갖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런 신적 능력이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택하신 이가 아니면 보일 수 없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도 반론할 수 있습니다. 그 양에 있어서 예수님이 압도적이신 것은 맞으나 구약의 선지자들도 유사한 기적을 보였고 타종교에서도 이런저런 기적사건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구약의 선지자나 타종교의 지도자들과 차원이 다른 분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 회의론을 깨뜨리는 더 압도적인 근거를 베드로는 내어놓습니다.
5. 죽음을 이김
바로 죽음을 이기신 사건입니다. 24절과 32절에서 거듭 그는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자신과 열두 사도와 많은 제자들이 그 증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행 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어떤 선지자도 그 자신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 적이 없으며 어떤 종교나 사상에서도 죽음을 이긴 이는 없었습니다. 이슬람의 마호메트는 62세에 열병으로, 공자는 72세에 노환으로, 불교의 석가모니는 80세에 식중독으로 사망하고 묻혔으며 자신이 살아날 것이라 주장한 적도, 다시 살아났다는 주장을 한 제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죽음에서 일어날 것을 구약을 인용해 여러 차례 예언하셨으며 사도들과 제자들은 실제로 그 분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전파하다가 순교하였고 기록에 남겼으며 심지어 그 분의 반대자인 바울과 같은 이들조차 부활하신 그 분을 만났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긴 이 분이야말로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죄의 대가인 죽음을 이기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주실 수 있는 유일한 주와 그리스도시라는 것이 베드로의 선언입니다.
6. 성령을 부어주심
이 뿐 아니라 33절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계셔서 구원하고 계신다는 증거로 성령을 부어주셨음을 선언합니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놀란 이유는 갈릴리 토박이들이 어떻게 율법에 정통한 랍비들이나 할 법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렇게 유창하게 선포하며 그것도 배운 적도 없는 세계 각지의 언어로 선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일은 신적인 능력인 성령세례로만 가능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이를 약속하고 부어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증거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세례로 인해 교회가 탄생하여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했고 지금도 복음전파와 구원의 역사는 쉬지 않고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천 년 후 지구 반대편에 이 아메리카대륙 북동부에서 유대인과 피도 섞이지 않은 우리 한인들이 이 은혜의 복음을 듣고 믿고 전파하며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이 사실 역시 복음의 주인되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베드로의 이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깨닫고 믿고 순종하는 이는 다윗이 누린 이 기쁨을 누립니다. 25절 이하를 다시 보십시오.
(행 2:25) …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행 2: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믿고 섬기는 은혜를 누린 이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부자가 되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지위를 얻으면 기쁨과 찬송하며 살 수 있습니까? 성공을 하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수 있습니까? 어떤 복이 생명의 길을 가며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이 놀라운 기쁨의 소식 복음을 선포하며 베드로는 명령합니다.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부르는 이는 죄사함을 얻고 죽음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예수님처럼 영혼이 음부에 떨어지지 않고 육체도 썩지 않을 것입니다. 허무와 두려움과 절망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참되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주요, 그리스도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