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4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구원 받았는가”(사도행전 2:37-47) – 김도완 목사

9월 13, 2025

Series: 주일예배

Book: 사도행전

행 2:37-41/구원 받았는가

250914 주일설교 사도행전8

1. 구원 받았는가

여러분,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한 때 이 질문이 이단인 구원파가 늘 던지고 다녀서 기독교인을 당황시킨 적이 있습니다. 머뭇거리면 구원파는 그것이야말로 구원받지 못 한 증거이고 정통교회에는 참 구원이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에게 와서 참구원을 배우고 받으라며 유혹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그릇된 것이 틀림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기성교회에 경각심을 던져준 공로는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 하는 많은 이들이 구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거나 구원받았다고 고백하지 못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구원받았습니까?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혹시 여러분이 이 질문에 무어라 대답할지 모르시겠다면 오늘 설교를 통해 확실한 답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인 이 구원으로의 부름은 오순절성령세례 이후 사도들의 설교와 전도의 결론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의 결론부인 오늘 본문 40절에서 이렇게 도전합니다.

(행 2:40) 이 밖에도 베드로는 많은 말로 증거하며 그들에게 ‘이 타락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였다.

구원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소테리아이고 히브리어는 예수아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와 신약의 예수가 모두 발음만 약간 다르지, 그 뜻이 모두 구원으로 같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무언가로부터 안전함, 해방됨, 자유롭게 됨, 건져냄입니다. 모두가 위협하거나 구속하거나 해치려는 무언가로부터의 벗어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40절은 그 무언가가 타락한 세대라고 합니다.

2. 타락한 세대로부터

이 타락한 세대란 어떤 세대를 말합니까? 가까이는 2장에서 베드로가 질타가 예수님을 율법도 모르는 로마인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악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행 2:23) 그(예수)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멀리는 왕되신 하나님과 사랑과 공의의 율법을 거부하고 우상을 섬기며 제어되지 않는 탐욕으로 약자를 압제하고 착취하다가 멸망한 이스라엘과 그 삶의 방식을 공유한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는 유대인의 범위를 넘어서 모든 지역, 모든 민족, 모든 세대에까지 나아갑니다.

(행 2: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과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실 멀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법을 외면하고 탐욕과 정욕과 허영으로 살아가며 세상을 죄와 악의 팬데믹에 빠뜨린 모든 세대가 타락한 세대입니다. 우리를 포함하여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모든 이는 이런 세상으로부터 건져냄 곧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베드로는 그 건져냄을 받기 위한 길을 38절 전반부에서 이렇게 제시하였습니다.

3. 회개하라

(행 2:38)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모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베드로가 요구한 것은 회개와 세례입니다. 먼저 회개란 무엇입니까? 마음에 뉘우치는 것일까요? 그러나 37절을 보면 베드로의 이 말을 듣는 이들은 이미 마음에 뉘우침이 있었습니다.

(행 2: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였다.

이미 뉘우치는 이들에게 뉘우침을 요구할 이유가 없으니 회개는 뉘우침 이상의 것입니다.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바꿈, 돌이킴의 뜻이 있습니다. 생각과 태도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뉘우침이 감정이라면 회개는 의지입니다. 과거의 생각과 태도,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과 태도, 방식을 가지는 의지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자신의 왕이던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삶의 방식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살던 태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태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던 삶의 방식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뉘우침을 넘어 생각과 태도와 방식의 변화로까지 나아가야 참된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실종된 진리가 이 회개입니다. 교회는 오나 세계관과 태도와 삶의 방식은 바뀌지 않습니다. 죄를 뉘우치기는 하나 버리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시면서도 변하기를 명하셨습니다.

(요 8:11)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죄와 악을 버리고 생각과 태도와 삶이 바뀌는 참된 회개에 이르시기를 축복합니다.

4. 세례를 받으라

다음으로 베드로가 명한 것은 세례입니다. 세례란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도록 구현된 의식입니다. 그래서 세례시에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란 하나님의 백성공동체인 교회에 가족이 되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교회의 회중 앞에서 받는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범죄자가 과거를 청산하려면 범죄조직에서 나와 건강한 시민들의 일터를 찾을 것입니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끊으려면 중독자들의 모임을 떠나 좋은 치료센터를 찾을 것입니다. 병자가 완치되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떠나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거룩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치 않는 이는 참되게 회개한 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완치된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을 떠나지 않으려고 고집할 이유가 있습니까? 마약을 끊기 원한다면서 치료센터를 찾지 않고 여전히 중독자과 어울릴 이유가 있습니까? 건강한 시민이 되려는 이가 여전히 범죄조직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거룩한 공동체를 통해 성도를 성화시켜 가시기에 회개한 이를 이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그 부름에 응답하는 의식이 바로 세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명하시기를,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당신이 가르쳐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는 거룩한 삶으로 초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받으신 혹은 받으실 세례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부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참된 성도의 구원받은 삶은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 실현됩니다. 혼자가 결혼생활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혼자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5. 죄사함을 주시리라

이렇게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참되게 회개하고 세례로 교회의 가족이 된 이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베푸십니까? 38절 후반부를 보면 은혜의 선물로 죄사함과 성령님을 받습니다.

(행 2:38) “…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의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죄사함이란 우리가 타락한 세대를 떠나지 못 하게 발을 묶고 있던 죄의 족쇄를 끊어버림을 의미합니다. 은행에 큰 채무를 진 사람은 그 빚을 다 갚기 전까지 많은 경제적 자유를 구속당할 것입니다. 도망다니는 범죄자는 죄값을 치르기 전까지 발 뻗고 편히 쉬지 못 합니다. 이처럼 죄의 족쇄에 묶인 모든 인간은 죄책감과 심판의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 합니다. 영혼의 참된 자유와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모든 죄를 사하십니다. 이를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죄한 피를 흘려 죄값을 모두 치르셨습니다. 그 분의 공로가 어떤 죄인이든지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거저 죄사함을 얻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죄사함을 얻습니다. 할렐루야!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6. 성령을 주시리라

또한 선물로 성령을 받습니다. 이는 성령님이 죄사함 받은 성도의 영혼을 성전으로 삼아 머무시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을 모시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성령님은 무지한 무능한 죄인이 깨닫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도록 믿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의 기적이 일어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구원의 준비로부터 시작과 성장과 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일어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감은 정말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도, 구원을 이룰 능력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죄에서 건짐을 받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여전히 죄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가도록 보내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가 비전을 봅니다.

(행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시대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러분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삶을 돌이켜 회개하고 세례를 통해 거룩한 교회에 속하였다면 신실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사함의 자유와 하나님과 동행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자, 이제 다시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이 타락한 세대에서 구원받은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