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4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사명을 기다리다”(누가복음 1:26-38) – 김도완 목사

12월 14, 2025

Series: 주일예배

Book: 누가복음

눅 1:26-38/은혜와 행복의 이유

251214 대강절 3주

1. 무엇이 은혜인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하실 때 여러분이 떠올린 그 큰은혜란 어떤 것입니까?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감동과 용기가 일어나거나 찬양과 기도시간에 위로와 소망을 얻거나 교우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친절을 경험할 것 등이 아닙니까? 혹은 여러분의 소원이 담긴 기도가 응답되어 병이 낫고 사업이 성공하고 큰 집으로 옮길 때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반면 목사가 힘든 봉사나 희생을 요구할 때는 은혜보단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까? 교회를 섬기다가 오해받고 상처받으면 시험에 들었다고 낙심하고 화가 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란 대개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상황이 크게 잘 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보여주시는 은혜와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성경적 은혜란 그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란 어떤 것이며, 왜 베푸실까요? 우리는 어떤 은혜를 구해야 하며 받아야 합니까? 여기 놀라운 은혜를 받은 한 소녀에게서 그 답을 들어봅니다.

2. 은혜를 입은 소녀

그녀는 약 12-14세 사이의 소녀입니다. 딱 미들스쿨에 다니는 여자아이입니다. 랍비문헌에 따르면, 1세기 유대사회에서 여자는 12살이 되면 정혼 즉 약혼을 했고 13살에서 17살 사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 가브리엘은 큰은혜를 받았다고 28절과 30절에서 거듭 선언합니다.

(눅 1:28) 천사가 그 집에 들어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처녀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

(눅 1:30) … ‘마리아야, 무서워하지 말아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뒷문맥을 보면 그녀가 방문한 친척 엘리사벳은 이렇게 그녀를 축복하기까지 합니다.

(눅 1: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그녀가 받은 은혜가 무엇이기에 그녀는 모든 여자 중 가장 행복하다고 축복받았습니까? 31절입니다.

(눅 1:31) ‘이제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라.’

이 소식이 그녀에게 어떻게 들렸을까요? 위로와 소망의 소식이었을까요? 놀람과 충격과 공포였을까요? 그녀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처녀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

이 반응은 좀 당황하는 수준이 아니라 충격과 공포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약혼은 법적 결혼과 같게 여겼습니다. 정혼한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요? 사람들에게 자신이 천사의 고지로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지 누가 믿었을까요? 누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최악의 경우는 정혼한 요셉이 분노하여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고소하면 율법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신 22:23)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신 22: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

운이 좋아 요셉이 자비를 베풀어 이혼증서를 써주고 조용히 파혼하면, 약혼과 결혼은 동일하게 여겼기에 이혼증서를 써야만 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실제로 요셉은 이렇게 하려고 했습니다만, 마리아는 목숨을 건졌겠지만 남은 평생 간음하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자로 낙인찍여 영구적 수치와 사회적 배척을 당하는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궁지로 몰아넣는 소식이 어떻게 은혜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이 소식의 어느 지점에서 그녀의 마음이 위로를 얻고 소망을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어째서 이런 소식이 그녀에게 은혜라는 말입니까?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 직업과 재산을 모두 잃고 심지어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지경에 내몰리는 것을 저주와 재앙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3. 사명을 받은 소녀

그 이유는 그녀를 찾아온 천사 가브리엘의 말 속에 드러납니다. 다시 28절입니다.

(눅 1:28) 천사가 그 집에 들어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처녀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

은혜를 선언한 후 한 말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는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당신이 택한 일꾼에게 사명을 주실 때 쓰는 전형적인 관용어구입니다. 기드온을 불러 민족구원의 사명을 주실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삿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인류구원의 사명을 부여받으신 예수님의 다른 이름 임마누엘 역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였습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녀가 은혜를 받고 행복한 이유는 그녀가 받은 놀라운 사명 때문입니다. 그녀가 이 소식으로 인해 귀부인이 되어 대저택에서 살며 남편에게 사랑받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고 자녀들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의 삶의 처지는 별로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으며, 어쩌면 눈치 빠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평생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고난은 그녀의 마음에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겪을 고통을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할례를 받으러 갔을 때 예언자 시므온이 이렇게 예고 했습니다.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

그녀는 실제 칼로 가슴을 저미는 고통과 슬픔을 십자가 아래에서 겪었습니다.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이 소식으로 인해 위험과 비난과 슬픔과 고통을 겪었는데도 천사가 은혜를 입었으며 행복하다 하는 이유는 그녀가 받은 놀라운 사명 때문입니다.

4. 왕을 잉태하는 사명

그 사명은 죄와 악으로 신음하는 세상에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나라를 영원히 세울 왕을 성령의 능력을 받아 잉태하여 이 세상에 보내는 일입니다. 35절입니다.

(눅 1:35) … ‘성령님이 네 위에 내려오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거룩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한 여인의 태에 잉태되어야만 하셨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길고긴 인류역사 중 한 시대를 택하셔서 많고 많은 민족 중 한 민족을 택하시고 그 시대 수많은 유대여자들 중 한 소녀를 택하시되 귀족이거나 부유하거나 잘 교육받은 바리새인의 딸을 택하지 않고 가난한 목수와 정혼한 그 역시 가난한 집안의 소녀였을 아이를 택하셨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능력으로 온 우주보다 크신 창조주를 자신의 작디작은 작은 태안에 모시는 영광과 감격을 누린 것입니다. 그녀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나라를 잉태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창조의 기적을 잉태한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그녀보다 놀라운 이를 잉태한 여자가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영광입니까!

미국항공사는 군인을 특별히 예우하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큰 희생을 하고 특별무공훈장을 탄 참전용사라도 태우는 날에는 비행기 안이 축제분위기가 됩니다. 기내방송으로 존경을 표하고 전승객이 박수로 그를 환호하며 감사를 표합니다. 좌석을 퍼스트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일이 흔하고 종종 자리가 없으면 특별마일리지를 기존승객에게 제공하여 자리를 양보케 해서 모시기도 한답니다. 기장은 영예로운 운행이라고 감사를 표하고 승무원들은 비행 내내 특별서비스를 제공하고 탈 때와 내릴 때 전 승무원이 도열하여 예를 표하기도 한답니다.

하물며 온 세상의 왕이자 주가 되실 이를 모신 소녀의 삶은 얼마나 특별하며 영광스러운 것일까요! 그녀의 품에 안길 아기의 운명에 대해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눅 1:32)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그에게 주실 것이니 (눅 1:33) 그가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5. 영원한 생명과 상을 받는 은혜

카톨릭에서 그녀를 인간 이상의 존재로 대하는 방식은 분명 비성경적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성도들 중 그 어떤 이와 비교해서도 상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류 역사상 어떤 여인도 그녀보다 칭송받지 못 했을 것이며, 어떤 성도도 하나님 앞에서 그녀보다 큰 상을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녀가 하나님나라에서 받을 영원한 생명과 영광스러운 상은 이 땅에서 받은 오해와 괴로움과 슬픔과 고통이 골목에 넘어져 무릎이 벗겨져 울던 꼬마시절의 사소한 에피소드처럼 여겨질 만큼 크고 놀라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받은 사명의 크기 만큼이나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녀의 상과 은혜와 행복의 크기는 그녀가 받은 사명과 믿음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가진 은혜와 행복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줍니다. 예배의 은혜는 우울하던 기분과 고단한 삶의 처지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감당할 삶의 목적과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행복은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입니다. 은혜와 행복은 지금 좀 더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과 상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오해를 바로잡아야만 우리를 찾아오셔서 사명을 주심으로 참된 은혜와 행복의 나라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마리아가 누린 이 영광을 우리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모두가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듯이 우리도 성령의 능력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를 전도하여 잉태하고 천국의 자녀로 출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명을 이루는 길은 우리도 그녀처럼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눅 1:38) 그때 마리아가 ‘저는 주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