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1 새로운개혁교회 신년감사예배 “여호와의 일하심을 보라”(출애굽기 14:10-13) – 김도완 목사

1월 1, 2026

Series: 신년예배

Book: 출애굽기

출 14:10-13/여호와의 일하심을 보라

260101 신년감사예배

1. 불안이 아닌 평안의 

여러분, 요즘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무엇 때문에 불안하십니까? 현대인은 불안이라는 전염병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현대인이 하루에 느끼는 불안의 양이 100년 전 사람들이 평생 느끼던 양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삶이 훨씬 풍요롭고 안전해졌는데 왜 더 큰 불안에 시달리는 것일까요? 그 이유 중 하나로 일부 학자들은 현대인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은 노력주의의 신화를 꼽습니다. 삶의 성공과 사회적 지위는 개인의 노력에 달려다는 믿음입니다. 그 결과 치열한 경쟁에서 선두에 선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실패가 자기탓이라는 자기비난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낙오자가 되지나 않을까 불안합니다. 성공하지 못 하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반면 전근대사회는 불안을 유발하는 경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귀족으로 태어나면 아무리 게을러도 좀 덜 부유한 귀족일 뿐입니다. 종으로 태어나면 아무리 부지런해도 좀 덜 가난한 종일 뿐입니다. 모두가 삶을 하늘이 부여한 숙명으로 받아들였기에 고단하고 괴로울 때는 있어도 불안할 일이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덜 불안하기 위해 우리는 삶은 모두 자기 운명일 뿐이라는 숙명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크게 노력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불안하고 지칠지라도 노력하고 경쟁하는 삶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요? 성경은 제 3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 길은 노력하되 불안하지 않으며 숙명이 아닌 은혜를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시 127편입니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이 시의 세계관은 건축자와 파수꾼의 수고가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면서도 그 수고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숙명론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살도록 초청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불안이나 교만이 아닌 감사와 겸손의 길로 이끕니다.

2. 은혜가 지탱하는 세계

정직하게 우리 삶을 돌아보면 우리의 생명과 복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두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일단 우리 중 누구도 이 생명을 얻기로 계획하고 세상에 나온 이가 없습니다. 생명 자체가 거주 주신 은혜입니다. 생명과 복지를 지탱하는데 필수인 하늘의 태양과 내리는 비와 풍요로운 대지와 무한한 공기를 누가 돈주고 샀습니까? 무슨 권리로 누립니까? 모두 거저 주신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마 5:45)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어떤 이들은 믿음은 비합리적인 일이며 신이 있다면 기적을 일으켜주면 믿겠노라고 도발합니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비합리적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 삶이 온통 기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생명 자체가 기적입니다. 매일 우리가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데 우리를 위해 저 태양과 자연과 공기와 대지와 빗줄기가 우리를 위해 준비되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현대우주론과 물리학의 가장 신비한 문제중 하나가 Fine-Tuning Theory 즉 미세조정이론입니다. 이 우주를 이 모습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물리적 상수가 약 20개가 있는데 우주상수, 우주물질밀도, 중력과 전자기력의 강도비율, 핵융합효율 등입니다. 이 20개 상수의 수치 중 단 하나가 0.00001만 크거나 작아도 전체우주는 빅뱅 즉시 다시 붕괴되거나 별이 생성되지 못 하고 암흑 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무에서 유로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하는 그 순간 이 많은 상수들이 정확히 우주생성에 필요한 수치로 딱 맞게 조정이 되었을까요? 이것도 우연입니까? 철광석이 가득한 산 아래 큰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렸더니 폭발하며 솟아오른 철덩어리가 이리저리 맞춰지더니 나사에서나 만들법한 우주왕복선이 툭 튀어나왔다는 말을 믿으라는 말입니까? 인간이 만든 어떤 정교한 우주선도 우주의 정교함에 비하면 실제 우주선 앞의 레고블럭 수준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우기는 무신론자들도 이것마저 그렇게 우기기는 어려우니 생각해 낸 것이 다중우주가설입니다. 무수히 많은 빅뱅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그 중에 하나 정도는 이렇게 스무 개가 넘는 상수가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로 조합되던 중 현재의 우주가 튀어나올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가정된 다중우주를 우리가 관측할 방법도, 증명할 방법도 없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기 위해 허구를 창조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도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우주의 정교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잠 3: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잠 3:20)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즉 우리는 은혜의 기적으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운 지혜와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놀랍도록 미세조정해 두셨음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망하게 하려고 조정하셨을까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를 생명과 행복으로 이끄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죄와 무지가 당신의 뜻을 계속 거스를지라도 그 분의 강한 구원의 의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집념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런 세계를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자기 힘을 믿고 사는 이가 아니니 불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숙명론을 믿고 사는 이가 아니니 무기력할 이유도 없습니다. 은혜의 기적을 믿고 의지하여 담대히 전진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늘 그렇게 믿음으로 전진하라고 도전받습니다.

3.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의미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가로막힌 터에 뒤에서 추격해오는 바로의 군대로 인해 패닉에 빠진 모습입니다.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다 못 해 모세를 원망하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그들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절규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믿음없는 백성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은혜의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살 길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이 홍해 앞까지 온 것도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을 택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바로와 그 군대를 뿌리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생명과 행복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들은 낙망할 이유도, 절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분이 가리키시는 곳을 향해 두려움 없이 전진하면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 길이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는 길이라도 말입니다. 이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하는 기적의 은혜입니다.

4.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 교회를 보십시오. 지난 해 3월 두 개 교회가 통합하여 새로운개혁교회로 탄생했습니다. 두 교회가 걸어온 길을 보면 기적의 하나님이 바로를 물리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푼 여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새로운교회를 보십시오. 24년 1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시듯 2백 여 성도를 불러내어 기적같이 교회를 개척케 하셨습니다. 불과 1년 만에 홍해를 가르고 다시 하나가 되게 하시듯 개혁장로교회와 통합이라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멋진 건물까지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우리가 계획했나요? 우리가 꿈이라도 꾸었나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개혁장로교회를 보십시오. 1989년에 창립하여 36년의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교회가 한인교회교세위축의 쓰나미에 휩쓸려 교회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교회건물을 매각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새로운교회와 만나게 하셔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하셨습니다. 통합이 쉬운 일입니까! 노회나 총회에서 만난 목회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김목사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그런 은혜를 주시느냐고 합니다. 김목사를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입니까! 평생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교인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입니까! 인간의 계획으로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요, 기적입니다.

우리 삶도 이처럼 기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도는 기적과 은혜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 하고 감사하지 못 했을 뿐 기적의 은혜 없이 살아온 이가 세상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기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 자체가 가장 큰 기적입니다. 죄인을 위해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최고의 기적입니다. 죽음을 멸하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우리를 진정으로 평안하고 담대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능력을 줍니다. 마침내 하나님나라가 완성될 소망을 바라보게 만들고 그 나라와 의를 위해 살도록 능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모세의 음성처럼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는 오는 2026년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바다를 가르시는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출 14:13) …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신분과 재정과 건강과 자녀와 죄악의 온갖 문제가 애굽의 군대처럼 뒤를 쫓고 홍해처럼 앞을 가로막을 때 잠잠히 여호와를 바라보심으로 여러분을 위해 홍해를 가르고 군대를 수장시키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의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