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19-23/하늘과 땅의 결혼
260104 주일설교
1. 두 남자의 마음가짐
여기 연애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A는 연인과 데이트만 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할 생각입니다. 연애는 달콤하지만 그녀와 평생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B는 연인과 결혼하여 평생 살 생각입니다. 마음을 다 빼앗길 만큼 사랑합니다. 이 두 남자가 연인을 대하는 태도가 같을 수 있을까요? A는 아마 데이트에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을 겁니다. B보다 연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요. 언젠가 헤어지고 남의 아내가 될 여자를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겠지요. 반면 B는 연인을 귀하게 여기고 그녀를 위해 큰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그녀를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요. 자신의 평생의 동반자요, 자녀들의 엄마가 될 여자이니까요.
이 두 남자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이 세상을 대하는 성도의 두 가지 모습을 잘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둘 중 어느 태도가 옳은 것이며 왜 그럴까요? 이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기독교인의 삶이 비성경적인 편견에 묶여있게 만드는 것도 이 오해에서 나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소망
2026년의 1월 첫 주부터 몇 주간의 설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나누겠습니다. 설교 후 궁금한 것은 주저말고 카톡이나 이메일로 문의해 주시면 성실히 답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히 알아야 하는 이유는 베드로사도의 이 권면 때문이기도 합니다.
(벧전 3:15) …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
뜻밖에 적지않은 성도들이 이 소망을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많은 교인이 생각하기를, 예수 믿어 구원받으면 ‘몸은 죽어도 구원받은 영혼이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죄많은 이 세상은 심판받아 폐기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관해 오래된 이 전통적 답변은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과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그릇된 믿음입니다. 이는 성경이 아닌 그리스의 플라톤철학이 로마제국시기에 기독교에 오랜 기간 스며들어 만들어낸 왜곡된 믿음입니다. 영국신학자 톰 라이트는 이 과정을 비유하기를, ‘성경이란 거실에 플라톤이 손님으로 들어왔다가 나중에는 주인노릇을 한 꼴’이라고 했습니다.
3. 플라톤과 성경
플라톤과 성경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플라톤은 몸을 고귀한 영혼의 저급한 감옥으로 보았고 이 몸을 벗은 영혼이 이데아 즉 본향으로 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았습니다. 반면 성경은 몸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며 죽음은 멸망당해야 할 원수이고 구원은 이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대한 관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플라톤은 물질을 저급한 것으로 보았기에 세상은 언젠가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고 성도의 영혼은 영으로 저 천국이란 이상향에서 살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세상 역시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곳이며 결국은 그리스도의 재창조를 통해 새하늘과새땅으로 회복되어 새몸으로 부활한 성도가 살아갈 곳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많은 기독교인이 성경이 아닌 플라톤적 소망을 갖고 살아감이 분명합니다. 어찌 되었건 구원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두 남자의 비유에서 보았듯이 서로 다른 세계관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과 그리스도를 섬기며 성숙해가는 과정에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정확하게, 깊이있게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4. 구원을 기다리는 피조세계
먼저 몸과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플라톤은 구원은 이 저급한 몸과 타락한 세상에서의 탈출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정확히 많은 기독교인이 가진 오해요, 통속적 종말론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과 세상을 창조하시고 복과 사명을 주셨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인간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합니다. 벌써 플라톤의 이해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해집니다. 그러므로 구원도 이 물질세계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당연히 아닙니다. 이 물질세계 전체가 인간이 구원받듯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회복 곧 재창조됨이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은 바울이 로마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롬 8:19) 모든 피조물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피조물들이 구원받은 성도를 기다립니까? 그들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으로부터 사랑과 지혜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복을 누리도록 디자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가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주인을 만나 매맞고 굶기를 밥먹는 하는 강아지처럼 피조세계는 죄로 타락한 인간으로부터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착취를 당해 온 세상이 쓰레기로 오염되고 생물은 멸종되고 자원은 고갈되고 땅은 사막화되고 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 다스림받는 구원받은 인간처럼 피조물도 인간의 선한 다스림을 받고 싶어합니다. 21절입니다.
(롬 8:21) 그래서 그것들(피조물)도 썩어질 것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영광스런 자유(구원)를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5. 회복을 기다리는 피조세계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 세상의 폐기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몸의 멸망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행 3:21)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오래 전에 거룩한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까지는 하늘에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시느냐? 만물을 새롭고 회복 혹은 재창조하실 때까지입니다. 이 만물이 바라는 구원을 다시 한 번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쓴 편지에서 설명합니다.
(골 1:20)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평화의 길을 열어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을 그분을 통해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은 인간의 죄를 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하늘과 땅의 만물이 그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화해하여 그 분의 사랑과 공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창조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도 성령과 교회를 통해 행하시는 만물의 재창조입니다.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
6. 하늘과 땅의 결혼
그럼 우리가 죽어서 갈 줄 알았던 저 천국, 저 하늘은 어떻게 됩니까? 이 땅을 회복하면 하늘에는 안 가고 이 땅에서 사는 건가요?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성경에서 하늘이란 땅 위에 있는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공간이 아니라 다른 차원을 의미합니다. 땅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리세계로서 인간에게 다스리라고 맡기신 차원이라면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영의 세상으로 세상의 통제실 혹은 관제탑과 같은 차원입니다. 그러므로 땅과 하늘은 물리적으로 분리된 다른 공간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는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땅을 떠나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맞물린 차원이 완전히 통합되어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통치가 땅에서도 완전히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의미입니다.
(마 6:10) 아버지의 나라가 속히 (이 땅에) 오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를 땅에서 하늘로 데려가 주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나라 곧 하나님나라가, 또 하늘이 이 땅에 오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게 하셨지요. 이것은 하늘과 땅의 결혼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인간의 반역으로 하늘과 땅이 이혼한 것처럼 분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늘이 땅에 접점이 생겼고 점점 하늘이 땅에 오버랩(overlap)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언젠가 그 하늘과 땅이 완전히 결합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을 거역하던 모든 권세가 굴복하고 죄와 죽음이 심판받아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뜻만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며 하늘과 땅이 결혼하는 날입니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7. 가치있는 땅의 수고
그러므로 구원은 이 세상과 몸을 탈출하여 저 세상에서 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통해 부활한 몸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회복된 세상에서 더 이상 죄와 죽음의 권세에 노예되지 않은 자유와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첫창조 때 받았던 사명 곧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을 회복된 지성과 사랑과 권위로 행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는 모든 수고는 땅의 폐기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땅의 회복과 함께 새하늘과새땅에서 연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어질 연인이 아니라 결혼할 연인을 대하는 남자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 땅, 이 세상을 버릴 것이 아니라 회복하여 돌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고전 15장에서 몸의 부활에 대해 긴 논증을 한 후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고전 15:58)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러므로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에 열심을 다하십시오. 주님을 위한 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지런히 공부하고 일하고 가정과 일터를 돌보고 이 세상을 평화와 정의와 사랑의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좀 더 배부르고 안전하게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수고가 모두 열매를 얻고 상을 받을 것이며 새하늘과새땅에서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달란트 남긴 종과 다섯 달란트 남긴 종에게 주신 칭찬과 약속을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25:21) 그래서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너는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여라.’ 하였다.
이 칭찬 듣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