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2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영광스러운 새 몸”(고린도전서 15:47-54) – 김도완 목사

2월 22, 2026

Series: 주일예배

고전 15:47-54/빛나는 새 몸

260222 주일설교 소망6

1. 천국시민의 

영화 ‘반지의제왕’으로 유명한 J.R.R.톨킨은 친구인 c.s.루이스와 함께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수이면서 기독교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한 기독교인 작가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반지의제왕과 루이스의 판타지소설 ‘나니아연대기’는 모두 기독교세계관을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녹여내었고 두 작품 모두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루이스의 작품 중 ‘천국과지옥의이혼’이 있습니다. 이 판타지소설은 지옥의 주민들이 천국을 방문하고 겪는 이야기입니다. 지옥의 시민인 주인공이 본 천국시민의 모습입니다.

“천국시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실재적(solid)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내가 지옥에서 타고 온 버스나 유령들은 안개나 연기처럼 보였다…”

그들의 몸은 부서짐이나 낡음이나 소멸됨과 반대되는 존재로서 실재적이었습니다. 또한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들의 몸은 투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빛을 흡수해서 안에서부터 다시 내뿜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는 형언할 수 없는 활력과 기쁨이 뿜어져 나왔다. 그들은 단순히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그 몸에는 죄와 사망에서 드리우는 그림자가 전혀 없어서 빛과 활력과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 몸은 또한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한 부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거대해서 근처에 있는 나무들이 오히려 작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괴물 같은 크기가 아니라, 충만한 존재감이 만들어내는 위엄이었다.”

루이스는 부활한 천국시민의 몸에 대한 통찰을 어디서 얻었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였습니다.

2. 부활한 몸의 초월성

2주 전에 부활한 몸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현재 몸과 인격의 내적, 외적 고유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속성이요, 둘째는 현재 몸이 가진 연약함과 부패함의 약점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단절성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특징으로 초월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전 15장은 부활의 몸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고전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합니다. 이는 영의 몸입니다. 이를 한 마디로 초월적 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초월, 넘을 초, 넘을 월자를 써서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Transcend라고 합니다. 무엇을 넘어선다는 말입니까? 현재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현재 몸이 가진 한계 즉 약함,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성경에 등장하는 구체적 예를 찾아가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활의 몸이 어떠할지를 알려고 할 때 가장 참고가 되는 것은 역시 이미 부활하신 분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부활의 첫열매, 인류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3. 빛나는 

아직 부활하시기 전이지만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예수님의 모습은 변형되셨다고 했습니다.

(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부활하신 후에도 그 분의 출현은 빛과 함께 합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장면입니다.

(행 22: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정오 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이를 볼 때 부활한 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빛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그 모습이 변형되셨듯 우리도 부활할 때 몸이 변형되리라고 합니다.

(고전 15:52)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눈깜짝할 사이에 죽은 사람들이 썩지 않을 사람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며 우리는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빛으로 충만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때 빛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그 몸이 발광체라는 것 이상입니다. 빛은 영광을 의미합니다. 창조주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빛입니다.

4. 영광스러운 

(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신기한 것은 태양같은 발광체보다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광선, 빛이 먼저 창조되었습니다. 빛은 모든 피조물보다 우선할 뿐 아니라 처음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영광을 상징합니다. 빛이 없으면 우주도,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빛은 존재와 생명의 충만함과 놀라운 아름다움과 질서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지구에서 빛이 사라지면 동식물 뿐 아니라 인간까지 모든 생명이 단번에 사라집니다. 인류의 생존과 복지는 이 빛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답거나 경건한 사람을 보면 ‘얼굴에서 빛이 나’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6장의 재판받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빛은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를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요일 1:5)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에게는 어두움이 전혀 없습니다…

(요 1:9)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예수 그리스도)이 있었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나를 안내하는 등불이며 내 길을 비춰 주는 빛입니다.

(마 5:14) 너희(성도)는 세상의 빛이다…

이처럼 빛은 모든 영광스러움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몸이 이 빛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그 몸이 발광체가 되었다기보다는 현재 몸이 가진 여러 가지 조건을 초월하는 영광을 두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질 것입니다. 현재의 체력을 크게 뛰어넘는 체력을 가질 것입니다. 현재의 순발력과 지구력을 크게 초월하는 육체가 될 것입니다. 현재의 건강과 비교할 수 없는 건강을 가질 것입니다. 현재의 정교함을 초월하는 정교함을 가질 것입니다. 현재의 누리는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경험할 것입니다. 마치 같은 쉽게 부스러지는 흑연을 만들던 탄소로 완전히 다른, 견고하고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만들듯 새 육체는 현재와 비교할 수 없는 생명력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현재보다 더 강하고 아름답고 견고한 물질의 육체가 될 것입니다. 모든 점에서 현재의 수준을 초월하는, 영광스러운 육체가 될 것입니다.

5. 자유로운 

그 몸은 영광스러울 뿐 아니라 자유로운 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요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

예수님의 몸은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었습니다.

 (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렇다면 이 몸은 유령처럼 비물질적인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고 예수님이 직접 증명해 주셨습니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 (눅 24: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눅 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물질적이지만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현재보다 훨씬 자유로운 몸이라는 의미입니다. 물질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지구반대편까지 걸어가는데 1년 반이 걸렸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한 나절만에 비행기로 같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못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 유령이야? 유령이 아니라도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이동합니다. 부활한 몸이 우리와 다른 차원으로 초월한 능력을 가진 몸이라면 생각과 계획만으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 불가능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6. 마르지 않는 생명력

동시에 시간의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노화와 소멸로부터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장기가 낡거나 혈관이 약해지거나 근육이 빠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쇠하지 않고 지속되는 생명력을 누립니다. 새육체에 공급되는 생명력은 결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사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묘사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은 부활한 육체가 가진 지속력을 보여줍니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7. 부활을 기다리는 성도

현재의 약점과 한계를 모두 초월한 이런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면 어떤 사람이 그런 부활을 간절히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 소망을 품은 사도들의 기다림을 들어보십시오. 바울 사도입니다.

(고후 5:2) 우리는 이 육체의 집에서 탄식하며 하늘의 몸을 입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기다림은 곧 주님의 오심을 기다림입니다.

(빌 3:20) …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빌 3:21) 그분이 오시면 … 그 능력으로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 사도의 소망입니다.

(요일 3: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돈을 벌기를, 병이 낫기를, 성공하기를 기다리십니까? 그러나 어떤 기다림이 이 기다림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 무엇이 이 부활의 몸처럼 값진 것이 있습니까? 그 무엇이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듣고 믿은 이 소식야말로 기쁜 소식, 복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복음을 믿고 전하고 기다리어 반드시 부활의 날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