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5:31-34/은혜로운 심판
260308 주일설교 소망10
1. 재림의 소망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보면, 그가 회심하기 전에 기도하기를, ‘주여, 제게 순결과 절제를 주옵소서. 다만 지금 당장은 마옵소서.’라고 했답니다. 아마 현대기독교인은 이렇게 기도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다만 이번 휴가 전에는 마옵소서.’, ‘어서 오시오시되 새 차를 살 때까지는 마옵소서.’ ‘신상 구두가 도착할 때까지는 마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이 땅의 안락함과 풍요에 젖어서 재림을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습니까? 기독교인의 소망에서 주님의 재림은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이 천사들로부터 올라가신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시리라는 약속을 받은 이래 그들의 삶은 재림을 기다리는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기독교인의 신앙에서 재림이 과연 그만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모여앉아 주식이 얼마나 오를까, 물가가 언제 내릴까는 궁금해 하지만 주님의 재림이 언제일까 염려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시간이 허락하는데까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재림의 시기
먼저 재림의 시기가 언제인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마 24:36) 그러나 내가 오는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과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 사건은 마치 도둑이 오듯 갑자기 닥칠 일입니다.
(마 24:37) 내가 올 때에는 세상이 노아의 시대와 같을 것이다… (마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 버릴 때까지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올 때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는 풍요와 안락에 젖어 기도와 순종을 잊고 살아가는 영적 잠을 경계하시는 말씀입니다.
3. 재림의 모습
다음으로 재림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그것은 일부 지역이나 사람에게만 목격되는 국부적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마주할 전지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마 24:26) 사람들이 너희에게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해도 너희는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해도 믿지 말아라. (마 24:27) 번개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쩍이듯 나도 그렇게 올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그 모습이 승전하고 돌아오는 왕의 행렬과 같이 영광스럽다고 하십니다.
(살전 4:16) 그것은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어떤 대통령이나 권력자나 재벌이나 부자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왕이자, 주인이 되셔서 다스리는 참세상이 올 것입니다.
4. 양과 염소를 가르는 첫째 심판
세상의 왕으로 오신 분은 세 가지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첫째는 모든 인류를 의인과 악인으로 가르는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마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참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한 의인입니다. 염소는 믿지 않으며 자신이 주인되어 산 악인입니다. 그들은 그 선택에 합당한 심판을 받습니다.
(마 25:46) ‘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모든 이들이 부활하나 그 운명은 다를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5.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을 가르는 둘째 심판
둘째는 믿는 자들 안에서 참신자와 거짓신자를 가르는 심판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로 끝납니다. 충성된 종은 큰상을 받습니다. 반면 주인이 늦게 온다고 게으르게 산 종은 심판을 받습니다.
(마 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 24: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동료를 때리는 것은 공동체에 상처를 주는 악한 행위를 말합니다. 술친구와 먹고 마심은 거룩함을 상실하고 세속에 취해사는 불경건한 삶을 가리킵니다. 이런 이는 주님의 종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외식하는 자 즉 믿는 척한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런 이는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 24: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 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예수님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도 믿는 척하나 믿지 않는 이들이 많을 것과 그들이 받을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 (마 13:30) …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6. 사탄의 무리를 향한 셋째 심판
셋째 심판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유혹에 멸망으로 이끌고 가려던 사탄과 그 무리를 향한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이미 세상의 주인노릇하려던 사탄이 심판의 선고를 받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이 선고는 언제 집행될까요? 주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7. 성도의 부활과 영화
이 심판을 성도는 어떻게 통과하게 될까요? 성도는 심판을 행하신 재림의 주님으로 인해 이 심판에서 면제됩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즉 성도는 생명의 부활을 경험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미 묻힌 이들과 살아있는 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살전 4:16) …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무덤에 묻힌 이들은 새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 때 아직 살아있는 이들은 육체의 죽음을 겪지 않은 채 새 몸으로 변화됩니다. 영화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을 영접하여 새하늘과새땅에서 함께 왕노릇하는 생명의 부활을 경험합니다.
8. 공의의 결산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사건은 세상을 향한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결산의 때입니다. 이 결산이 있다는 사실과 이 결산이 공의로울 것이며 동시에 놀라운 은혜로 이루어질 것임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시 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이 땅에서 의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불의와 거짓, 폭력과 착취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축구시합을 하는데 심판이 파울을 불지 않습니다. 다리를 걷어차고 팔꿈치로 코를 치는데도 심판이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시합은 더 이상 공정한 시합이라 볼수도 없으려니와 정당하게 계속 시합을 하려는 선수도, 팀도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희생을 감수하며 의를 행할 사람이 더 이상 남아있지 못 할 것입니다. 불의와 거짓과 대항해 싸울 의지도 남아있지 못 할 것입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고 도덕도, 윤리도, 존엄도 더 이상 남아있지 못 할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기둥이 떠받치는 문명은 사실상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기다림이 없이는 서있을 수 없습니다.
9. 자비의 결산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이 심판을 놀라운 자비로 행하신다는 사실로 인해 엄청난 소망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화가 난 채 악인을 심판할 때마 기다리시는 진노의 신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 길을 찾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겔 33:11) …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
그래서 하나님은 멸망이 아니라 영생을 주고자 하셨고 그래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심판의 주로 오실 예수님은 먼저 구원의 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죄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이 아닌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재림의 때까지 한 영혼이라도 더 스스로 가는 멸망의 길에서 돌이켜 구원의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교회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십니다. 우리의 사명은 바로 그 구원의 길을 형제, 자매,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조지워싱턴 브릿지를 뉴저지에서 뉴욕쪽으로 넘기 직전에 포트리의 팰리세이드애비뉴로 빠지는 마지막 길이 있습니다. 뉴저지에 처음 왔을 때 이 빠지는 길을 몰라서 실수로 두어 번이나 브릿지를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라, 저기로 빠져야 하는데… 브릿지를 탔더니 12불을 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깝던지요! 이 실수는 그저 돈을 조금 손해보는 것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지 못 하여 심판의 다리를 건너는 잘못은 그 무엇으로도 돌이키지도, 물리지도 못 하는 두려원 결과를 가져옵니다.
공의의 심판대에 다다르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예수님이 피흘려 열어주신 은혜의 길로 빠질 수 있음을 전하는 사명이 바로 오늘 우리 교회의 전도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참성도임을 보여주는 충성됨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다리 건너편에 공의의 심판대가 있음을 모르고 가는 이들에게 은혜의 길을 보여주기 위해 부지런히 전도하는 이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