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9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백성을 위해 죽으시는 왕”(요한복음 18:1-11) – 김도완 목사

3월 28, 2026

Book: 요한복음

요 18:1-11/백성을 위해 죽으시는 왕
032926 종려주일설교
1. 창립기념주일
오늘은 우리교회 1주년 창립기념주일입니다. 새로운개혁교회는 작년 3월 30일 새로운교회와 개혁장로교회가 통합하여 창립되어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두 교회의 만남부터 통합까지 그리고 1주년을 맞이하기까지 모든 걸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이 뉴저지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누리고 전하는 사명을 띄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명에 헌신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모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종려주일
동시에 오늘은 교회력으로 종려주일이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창립기념주일과 종려주일이 꽤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올 해는 같은 날입니까? 종려주일이 3월 말에서 4월 말까지 거의 한 달의 오차를 두고 매년 바뀌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을 정하는 방법은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결정하였습니다. 태음력과 태양력을 섞어쓰는 태음태양력을 따르는 유대력에서 유월절은 보름달이 뜨는 닛산월 15일입니다. 이 유월절 3일째에 있었던 부활의 날에 최대한 가까운 주일을 정하기 위해 만든 방법이 춘분인 3월 21일 후 첫 보름달이 뜬 뒤 첫 번째 주일이었습니다. 이 방법대로 날짜를 정하면 태양력에서는 부활주일이 3월 말에서 4월말까지 한 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이 종려주일부터 오는 토요일까지 7일간 교회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정화의 시간 곧 고난주간으로 지켰습니다. 우리도 이번 한 주간의 새벽기도회와 마가의다락방 그리고 성금요기도회를 금식하며 진행합니다. 각자 여건에 따라 적어도 한 끼 이상 금식기도회에 참여하시기를 권합니다.
3. 기드론골짜기
오늘 본문은 제자들과 최후의만찬 자리에서 성만찬을 가지신 후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드론 골짜기의 이름은 검다는 뜻의 히브리어 키드론에서 유래했습니다. 성전산 바로 동쪽으로 흐르는 이 골짜기로는 성전에서 잡는 희생제물의 피를 버리는 배수로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유월절같은 명절에는 수십 만 마리의 양이 도살되었다고 하니 엄청난 양의 희생제물의 피가 이 골짜기로 흘러들어 물을 검게 물들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기 위해 스스로 희생제물의 피가 흐르는 돌아올 수 없는 골짜기를 건너가신 것입니다.
4.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유다가 데리고온 로마군인과 성전경비병을 보고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세상의 진정한 왕으로 오셨기에 그 위엄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하자 그들 앞으로 나서시며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히셨고 그들은 그 위엄에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땅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하셨습니다. 칼과 창도, 고난도, 무리의 위협도 세상의 왕으로 오셨고 마침내 부활하고 승천하시어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실 예수님의 위엄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 참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성도는 이런 위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위엄은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거나 화려한 명품옷을 입거나 허세를 부려서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를 구하는 갈망과 의의 길을 가는 당당함과 불의를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고귀함으로 드러납니다. 목소리를 높히지 않아도, 돈이나 권력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등불을 숨길 수 없듯이 의로운 삶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빛으로 인해 모를 수 없습니다. 이런 위엄이 드러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백성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또한 백성을 당신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왕이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은 내가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군인들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며 제자들은 가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이 백성을 희생시켜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과 달리 예수님은 당신을 희생시켜 백성을 살리시는 진정한 사랑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까지 멈추지 않으시는 사랑의 목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이 택한 양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의 고난도, 차디찬 무덤의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사랑과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을 지켜내십니다. 이 위대한 사랑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노래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에 낙심하며 무엇에 위축되겠습니까!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왕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6. 순종하신 겸손한 
예수님은 이 고난의 길을 가신 또 하나의 이유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격분한 성격급한 베드로는 품에 숨겨다니던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쳐서 잘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종의 귀를 고쳐주시며 오히려 베드로를 말리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고난의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심을 믿었습니다. 수치의 길이라도 영광으로 인도함을 믿었습니다. 죽음의 길이라고 생명으로 인도함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멸망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랬기에 두려움 없이 순종하여 고난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면서도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순종하심으로써 진정한 겸손과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도 불의한 세상에서 의의 길을 가려는 참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믿도록 도전받습니다. 과연 이 의의 길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 될 것인가? 과연 이 순종의 길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 될 것인가? 과연 이 고난의 길이 진정한 영광의 길이 될 것인가?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고난을 기쁘게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겸손한 성도는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습니다. 겸손한 성도는 예수님처럼 순종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마침내 부활의 영광을 맛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믿고 순종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