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0:1-18/살아계신 주
260405 부활주일
1. 기독교의 핵심사건
할렐루야! 오늘은 복된 부활주일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과 소망이 여러분 모두의 마음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을 공유하면서도 유대교인이 아닌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이유는 우리 믿음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르침 위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한자인 기독교라는 이름은 영어 크리스챠니티 즉 그리스도교를 음차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라 하여 기독교라 부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자체로도 탁월하지만 인간의 모든 가르침 중 가장 뛰어나거나 합리적인 수준이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을 걸고 믿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많은 증거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이 사건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이 부활이 진실이 아니라면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믿고 전하는 모든 것이 헛소리가 됩니다. 반대로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면 이는 예수님이 전하신 모든 메시지가 진리임을 증명하는 증거이며 주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과 죽음, 영생과 심판을 가르는 갈림길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부활의 메시지 앞에 중립적이거나 무관할 수가 없습니다.
2. 부활의 역사성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입니다. 물론 고대 이집트의 신 오리시스나 메소포타미아의 신 탐무즈, 가나안의 신 바알 등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은 이런 고대신화의 영향을 받은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의 부활 이야기를 꾸며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실제인물이 아닌 상상속 신이며 그 신의 죽음이나 부활을 목격한 이도 없으며 그 부활 역시 매년 돌아오는 계절을 의인화한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심과 부활은 신화 속 이야기와 완전히 다릅니다. 먼저 예수님은 실존인물이었으며 그 분의 죽음 역시 성경 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이 기록한 일반역사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 로마역사가 타키투스, 소아시아의 로마총독 플리니우스 등이 남긴 기록에 예수님의 죽음이 언급됩니다. 이 중 요세푸스의 기록만 살펴봅니다.
“빌라도가 유력자들의 고발로 그에게 십자가 형벌을 내렸으나, 처음에 그를 사랑했던 자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이 일과 그에 관한 수만 가지 놀라운 일들을 이미 예언했었다.” (유대 고대사 18:3)
그럼 예수님의 부활은 어떠합니까? 최대 500여 명에 이르는 제자들이 부활을 목격했다고 증언하며 전도를 시작했으며 이 증언을 기록으로 남겨 신약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증언을 고수하다가 하나같이 혹독한 박해를 당하고 순교까지 당하면서도 증언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들불처럼 번지는 기독교운동에 위협을 느낀 유대교나 로마정부는 이를 박해하면서도 예수님을 묻었다는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내놓음으로 단번에 기독교운동을 무너뜨리지 못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었던 것입니다. 부활을 부정하면서도 빈무덤을 설명하는 방법은 제자들이 그 시신을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신도난설은 죽음을 무릎쓰는 제자들의 일관된 태도에 의해서 금방 무너졌습니다. 그들이 무슨 이익이 있다고 시신을 훔쳐놓고 부활했다고 주장한단 말입니까? 더 혹독한 박해와 순교를 당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는 바보들이 있습니까?
프랑스의 천재수학자이자 과학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그의 명저 팡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들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순교 앞에서 부활에 대한 거짓말을 고백했더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사기로 드러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순교하면서까지 부활의 확실성을 선포했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진실성의 가장 큰 증거이다.’
논리학과 과학철학에서 유명한 오컴의 면도날이론에 의하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설을 세우는 것이 진실에서 멀어지는 길입니다.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개의 가설 중 설명이 더 간단한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는 이론입니다. 화형장과 짐승밥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제자들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이론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부정하고자 비논리적인 이런 저런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진실을 알려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버리지 않으려는 오만일 뿐입니다.
3. 위대한 소망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은 정직한 마음으로 사도들의 증언과 교회역사를 살펴보고 기독교인이 된 수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어렵지않게 증명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으로만 아니라 합리적인 태도로도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마리아게 하신 말씀의 답이 들어 있습니다.
(요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예수님의 아버지가 우리 모두의 아버지, 예수님의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 되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분 안에 영생과 부활의 새몸과 새하늘과새땅의 선물을 약속받은 자녀가 되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로 인해 이 부활의 아침만큼 우리에게 놀라운 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처음 본 그 날보다도, 우리가 세상에서 얻은 어떤 행복과 성공보다도, 우리가 남은 생애에서 누릴 어떤 즐거움보다도 크고 놀라운 선물을 약속받은 날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부활의 주님을 처음 목격한 마리아처럼 감당키 힘든 기쁨으로 세상으로 달려나가 외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소망으로 모든 절망과 시련을 거뜬히 이기시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