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9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음부와 지옥의 은혜”(디모데전서 2:1-5) – 김도완 목사

4월 25, 2026

Series: 주일예배

딤전 2:1-5/음부와 지옥의 은혜

260426 주일설교

1. 지옥이 있는가

오늘 본문은 소망시리즈를 설교하면서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성도의 사후상태와 궁극적 소망을 낙원과 새하늘과새땅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의인이 죽으면 그의 영은 예수님이 우편강도에게 약속하셨던 낙원에 머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는 모두 부활하여 새 몸을 입고 새하늘과새땅에서 삽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신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확증한 진리입니다. 한 교우가 이 설교를 듣고 질문하시기를, 그럼 악인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지옥으로 가나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오늘 하겠습니다.

현대교회가 빠진 함정은 성도의 소망에 대해서만큼이나 악인의 심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망시리즈설교를 하면서 여러 교우들로부터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영원한 소망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어보기는 처음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시리즈로 설교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이보다 더 잘 하지 않는 설교가 지옥에 관한 설교입니다. 얼마 전 어느 교우가 질문하기를, ‘정말 지옥이 있나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교우가 당연히 있지, 지옥 없으면 나는 교회 안 다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지옥이 있는지 물을 만큼 현대교회는 지옥에 대해 잘 설교하지 않습니다. 마치 잔치집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면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이란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오늘날 시대가 심판과 지옥에 대해 듣고 싶지 않다고 해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란 우리의 감정이나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 객관적 실체를 가리킵니다. 음모론에 빠져 지구평면설을 믿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온라인에서 찾아보시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아무리 내 느낌에, 내 생각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느껴진다고 해도 둥근 지구가 평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1997년 미국의 어느 잡지가 설문조사를 해서 가장 천국에 갈 것 같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3위가 60%가 답한 다이애나 왕세자비, 2위가 78%로 마더 테레사 수녀였습니다. 87%로 10명 중 9명이 천국에 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1위는 누구였을까요? 자기자신이었습니다. 미국인의 느낌에 의하면 10명 중 9명은 천국에 갑니다. 우리의 느낌, 제한된 경험, 주워들은 잡다한 정보로 조합된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믿을 만 하지 못 한지 보여주는 예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2. 소망과 심판

구원과 천국이 실재라면 심판과 지옥도 실재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이에 대해 무엇이라 가르치십니까? 이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표를 이용해 설명하겠습니다. 비유하자면, 의인이 호텔에서 잠시 머물다 건축이 끝나면 멋진 집에 들어간다면 악인은 구치소에 갇혔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갇히는 것입니다.

의인 악인
중간상태 낙원 음부
부활
최종상태 새하늘과새땅 지옥

의인이 죽으면 낙원에 머물며 안식하다가 재림 이후 새하늘과새땅에서 부활의 새몸으로 살게 된다면 악인이 죽으면 음부에 머물며 고통받다가 재림 이후 최종적인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럼 음부는 어떤 곳이며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3. 고통의 음부

음부란 심판의 대기소입니다. 비유하자면 재판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구치소 같은 곳입니다. 음부는 한자로 어두울 음, 마을 부자를 써서 어두운 곳이란 뜻입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 하데스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곳이란 뜻입니다. 이는 구약의 히브리어 스올을 번역한 단어입니다. 스올은 텅 빈 곳, 깊은 구덩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스올, 신약의 하데스, 음부는 같은 단어입니다. 스올은 구약에 65회, 하데스는 신약에 10회 등장합니다. 가장 생생한 곳은 예수님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설명하실 때입니다.

(눅 16:23) 그가 음부(hades)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의인이 머무는 대기소 낙원이 안식과 위로의 장소라면 악이이 머누는 대기소인 음부는 고통과 격리, 두려움의 장소입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끊어진 고통을 맛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격리란 낙원과 돌이킬 수 없도록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눅 16:26입니다.

(눅 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두려움이란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 속에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히 10:27입니다.

(히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4. 영원한 지옥

지옥은 음부에 대기하던 악인의 영혼이 재림하신 주님의 심판대에서 영원한 형벌을 선고받은 뒤 가는 최종적인 심판의 장소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갇히는,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과 같습니다.

지옥은 땅 지, 감옥 옥을 써서 땅 아래 감옥이란 뜻입니다. 신약성경에 지옥에 대한 묘사는 약 65회 등장합니다. 그 중  12회는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 게헨나가 등장하는데, 예루살렘 남쪽의 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게 힌놈’을 음역한 것입니다. 왜 이 골짜기가 지옥을 가키리는 단어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구약시대 왕정기에 이 곳은 몰록신에게 아기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가증한 우상숭배가 행해지던 곳이었습니다. 요시야왕은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 이 곳의 신상을 모두 파괴하고 다시는 우상숭배의 장소로 쓰이지 못 하도록 쓰레기소각장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성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와 짐승의 사체, 연고없는 범죄자의 주검 등 온갖 폐기물이 모두 이 곳에 버려져 끊임없이 소각의 불꽃이 타오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불이 꺼지지 않는 소각장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지옥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신 것입니다.

이 곳의 첫 번째 특징은 고통의 장소라는 점입니다.

(막 9:48) 지옥(Gehenna)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불은 고통에 대한 가장 생생한 이미지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 곧 감형 없는 무기징역의 장소라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중단이나 되돌이킴이 없습니다.

(마 25:41) 그런 다음 그는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세 번째 특징은 완전한 격리의 장소라는 점입니다.

(마 8: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바깥 어두운 곳은 하나님의 통치의 밖 즉 새하늘과새땅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곳이라는 뜻입니다. 톰 라이트 같은 현대신학자는 불을 고통의 상징으로 보고 지옥을 인간성을 잃은 존재가 폐기되는 우주의 쓰레기하치장 같은 곳이라고 보지만 하나님의 선과 은혜의 부재로 인해 극악의 고통을 동반하는 상태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은 잔인하신가

이런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 하겠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선한 사람을 지옥에 보낼 수 있는가? 선하다는 정의를 잘 할 필요가 있겠지만,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십니다. 지옥에 가는 이들은 악한 이들입니다. 지옥의 존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정하는 증거가 되지 못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왜입니까?

먼저 지옥은 사람을 위해 만든 준비된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여 반란을 일으킨 천사 사탄마귀와 그 무리를 위한 곳입니다.

(마 25:41) 그런 다음 그는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이는 마치 도시가 깨끗하게 유지되려면 쓰레기하치장과 하수도시설이 필요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온갖 쓰레기와 화장실 오물을 버리지 않고 집안에, 거리곳곳에 쌓아놓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현대세계의 극적인 수명연장의 가장 큰 이유를 학자들은 보건위생의 발전이라고 꼽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참으로 생명과 복지로 충만한 곳이 되려면 그 나라를 파괴하려는 마귀와 그 무리를 심판하고 폐기할 곳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 곳이 지옥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 무리에 가담한 결과 같은 곳에 이르는 것입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의 손을 잡고 같이 깊은 물로 빨려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심판과 지옥은 공의의 완성입니다. 이를 부정하려면 우리를 해치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세상의 법도 부정해야 합니다. 신의 심판도 없는데 모순덩어리인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심판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사람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은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과연 바른 생각입니까?

6. 자비로우신 하나님

둘째 하나님의 바람과 계획은 어떻게든 사람을 긍휼이 여기셔서 그를 이 멸망에서 건져내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밝힙니다.

(딤전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단 한 영혼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왜 지옥에 떨어지는 이들이 생길까요? 그들이 끝까지 스스로 생명과 은혜의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분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C.S.루이스는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지옥의 문은 안에서 잠겨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평생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역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스스로의 뜻대로 살겠다고 선택한 결과 하나님 없는 우주의 폐기물 처리장에 도달하는데 그 곳이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요, 우주 안에 충만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없는 곳은 빛도, 생명도, 쉼도, 기쁨도 없습니다. 그 분의 세상 바깥, 그 분의 은혜의 빛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곳, 쉼도, 안식도, 기쁨도, 생명도 없기에 오직 울며 이를 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길의 고통조차 작은 것으로 보일 만큼의 절망과 외로움과 슬픔만이 가득한 상태가 곧 지옥이라고 묘사된 곳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 지옥으로 끌고가는 고집과 교만을 내려놓고 생명과 기쁨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 초청의 메신저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 분이 보내신 초청장이 바로 우리 손에 들린 성경입니다. 이 초청장을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달하라고 우리를 전도와 선교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우리가 전하는 이 진리가 바로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옥의 불꽃보다 더 뜨겁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은 지옥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지옥의 공허함이 이기지 못 합니다. 지옥은 우리를 깊은 구덩이로 끌고 가지만 십자가는 우리를 높은 하늘로 끌어 올리십니다. 그러므로 음부와 지옥의 메시지는 우리를 두려움과 절망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생명의 풍성함을 보게 만듭니다. 지옥이 이기지 못 하는 하나님나라의 영광에 사로잡혀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