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7-8/바람이 전한 말
260607 주일설교 믿음2
1. 거듭남의 증거
지난 주 설교는 ‘거듭난 성도인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거듭남의 진짜 의미는 위로부터 남이었고 그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생명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곧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통해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제 답하지 않았던 지난 주 시작질문에 대해 답함으로써 오늘 설교를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거듭난 성도임을 어떻게 아십니까? 혹은 흔히 던지는 질문, 오늘 죽어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본문 7-8절에서 그 답을 주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리둥절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3:7) 너는 위로부터(다시) 나야 한다는 내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으로 구원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여기던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하며,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요 3: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이와 같다.’
성령세례로 태어난 사람은 마치 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거듭난 성도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해주는 표현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불어오는 곳도, 불어가는 곳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듣거나 바람에 쓰러지는 갈대를 보면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2. 성령의 열매
마찬가지로 성령님을 볼 수도 없고, 성령님이 그 사람 안에 들어오셨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측정기나 계량기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신 사람의 모습에는 바람이 일으키는 소리나 쓰러지는 갈대같은 증거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증거와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 열매로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복음서에서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성령을 모신 이의 삶의 열매를 드러내 보입니다. 갈 5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 열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갈 5:22) 그러나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과 (갈 5:23)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런 것을 막을 율법은 없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의 삶에서는 이런 증거나 나타납니다. 은혜를 깨닫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이들이 공통되게 하는 고백입니다. 관심이 없던 주변사람들이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럽고 심지어 원수마저도 불쌍히 여기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낙심만 가득하던 삶이 감사합니다. 밤하늘의 별빛도 감사하고 매일의 일상이 감사합니다. 희락입니다. 고난 중에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안합니다. 견딜 수 없던 시련도 거뜬히 견딜 힘이 생깁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날 때 그는 성령으로 났다고 알 수 있습니다. 이 열매가 맺히느냐, 않느냐로 우리는 자신이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3. 완벽함과 방향성
그럼 어느 정도의 열매를 맺어야 거듭난 사람임을 알 수 있을까요? 적어도 이 정도의 변화의 열매를 보여야 진짜 거듭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이 있는 것입니까? 그런 기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완벽함이 아닌 방향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성체가 된 황소와 사람아기를 비교해 봅시다. 농사에 도움이 되기는 황소와 아기를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황소는 엄청난 힘과 속도로 밭을 갈 수 있습니다. 아기는 제대로 밭을 갈려면 대략 20년을 기다려야 하고 그래도 황소만큼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황소는 늙으면 소고기가 될 운명이고 아기는 자라나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힘이 부족해도 아기는 자녀고 아무리 힘이 세도 황소는 가축일 뿐입니다.
십자가 옆 우편강도는 열매를 맺을 기회와 시간이 없어서 거의 맺지 못 했겠지만 아무튼 예수님의 무한한 자비로 성령으로 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훈련으로 예배와 기도와 선행을 엄청나게 많이 했겠지만 불신앙으로 성령으로 나지 못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방탕하게 살다가 이제 막 은혜로 거듭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열매를 아주 조금 밖에 맺지 못 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성령으로 나지 않았지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이는 마치 성령의 열매처럼 보이는 선하고 교양있고 품위있는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열매가 보이지 않는 듯 해도 전자는 성령으로 난 사람이고, 선한 열매가 많이 보여도 후자는 성령과 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 보이는 것만으로 거듭남의 여부를 오차없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4. 판단하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의 거듭남 여부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은 삶을 보니 거듭난 사람 같아, 저 사람은 거듭나지 못 한 사람이 틀림없어… 이런 판단은 잘못 판단할 위험이 매우 큽니다. 이를 잘 가르쳐주는 비유가 마 13장의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해 비유하시기를, 어떤 이가 밭에 씨를 뿌렸는데 밤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 즉 잡초를 뿌리고 갔습니다.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데 가라지가 섞인 것을 본 종들이 주인에게 뽑을까요 하고 묻자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걱정된다고 종들을 말렸습니다. 실제 가라지는 밀과 흡사하게 생겨서 농부들도 열매를 다 맺기 전까지는 농부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추수할 때 주인은 가라지는 모아 불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넣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교회 내에 거듭난 사람처럼 보이지만 거듭나지 않은 이들이 섞여 있다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마 24장에서는 예수님이 당신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거듭난 이와 아닌 이를 구별해 내는 시도를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잘 못 판단하여 알곡을 가라지처럼 골라내고 가라지를 알곡으로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편강도처럼 형편없어 보이는데 거듭난 성도일 수도 있고 바리새인처럼 경건해 보이는데 가라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공정하신 재판장 하나님께서 모두 판단하여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하나님나라에 들이실 것입니다.
성도는 형제, 자매를 판단하지 말고 사랑과 인내로 대해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들이라도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도록 기도와 말씀과 인내로 섬겨야 합니다.
5. 성령을 기다리라
지금까지의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이 성령세례를 경험하지 못 했다고 생각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을 모신 경험도, 그 열매도 자신의 삶에 맺히는 것 같지 않다면 말입니다. 성령으로 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 방법은 성령을 보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먼저 성령님은 우리가 부리는 힘이나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 분은 인격이십니다. 인격체의 특징은 자유의지입니다. 다시 8절로 돌아가서 바람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뉴마는 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요 3:8) ‘바람(πνεῦμα)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이와 같다.’
다시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영이신 하나님 곧 성령님은 자유로운 바람처럼 당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 당신의 은혜로운 의지에 달린 일이다. 사람이 계획하고 요구하고 움직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놀라운 소식이 있는데, 성령으로 나는 것은 우리 자신보다 더욱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 주기를 원하시고 성령을 주시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모시기를 기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 이것입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고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 죄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6. 성령으로 태어나라
성령으로 나지 않았다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니고,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아무리 착한 성품으로 살았다 해도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도 왜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예배하고 봉사하는데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기는 커녕 불평과 불만이 쌓이는 것은 왜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사람이 알아주지 않고 마음에 안 들면 섭섭하고 화가 나고 시험에 드는 것은 왜입니까? 그리스도의 하나된 몸이라 고백하면서도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왜입니까? 성령으로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육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거듭 남은 위로부터 남, 하나님께로부터 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은 하나님과 닮은 존재로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이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의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감입니다. 성화는 하나님나라와 영생을 상속하기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새로운개혁교회 모든 성도는 성령으로 나서 이런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