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4 새로운개혁교회 주일예배 “있을 수 없는 일”(요한복음 3:9-15) – 김도완 목사

6월 19, 2026

Series: 주일예배

Book: 요한복음

요 3:9-16/있을 수 없는 일

260614 주일설교 믿음3

1. 거듭남의 비밀

오늘은 3주째 거듭남의 비밀에 대해 설교합니다. 지난 2주 동안 요한복음 3장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거듭남의 의미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거듭남이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입니다. 알듯 모를 듯한 이 신비한 출생에 대한 설명이 완전히 이해되신 분은 별로 많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율법에 정통한 유대교 최고지성 중 한 사람이었던 산헤드린공의회 회원인 바리새인 니고데모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놀라움을 드러냅니다.

(요 3:9) 그때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요 3:10)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느냐?

그에게 이런 출생은 듣도보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군중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온 유대교의 선생인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 한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 그런 출생이 있다면 무슨 힘이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가? 우리도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나는 어떻게 거듭나지?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니고데모의 무지에 대해 예수님은 탄식하셨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백성에게는 구원의 길을 설명해 왔지만 이런 신비한 출생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알지도 못 하고 받아들이지도 못 합니다. 11절입니다.

(요 3:11) 내가 사실대로 말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해도 너희는 우리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란 예수님과 사도들을 포함한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무지 때문에 하늘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2절이 답합니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나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없다.

땅의 일이란 거듭남이요, 하늘의 일이란 거듭남을 가능케 한 원인입니다. 예수님이 그 하늘의 일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곧 하늘에서 땅으로 들어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늘의 일은 무엇입니까? 14절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쳐든 것같이 나도 높이 들려야 한다.

민 21장에 등장하는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에돔땅을 우회하여 고된 길을 갈 때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심판하시자 물린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뒤늦게 회개하는 백성을 위해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 백성에게 보게하라고 명하셨고 그대로 하는 이마다 치유받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은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이 놋뱀처럼 예수님은 당신도 높이 매달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놋뱀을 매단 것과 같습니다. 15-16절입니다.

(요 3:15) 이것은 나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마저 보내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바로 이 말씀이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하심으로 일어납니다.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남의 생명은 어디서 시작됩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심으로 이 기적이 시작됩니다. 이 세상의 창조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죄로 병든 세상의 구원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주의 기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선언은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의 기원이라는 진리에 대한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유대인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인간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 피조세계를 사랑하셨습니다. 의인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인마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못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지 못 합니다. 육체의 생명마저도 이 진리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의 사랑이 만드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고 사랑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둘러쌓여 살아갑니다. 사랑은 우주를 가득 채운 공기입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세상에서 죄와 악이 만드는 고통과 절망만을 보는 사람은 진실의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고통과 절망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사랑과 구원의 사랑이 지탱하고 있습니다.

3. 생명의 통로 믿음

그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가장 놀라운 증거가 바로 이 땅에 보내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외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놋뱀이 매달리듯 십자가에 달리셔서 세상죄를 지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열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온 세상의 구원주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분과 우리를 연결하는 길을 하나님이 친히 열어주셨습니다. 그 것이 바로 믿음의 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의 무한한 공로를 아무 자격 없는 죄인인 우리가 거저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도시문명생활을 하는 우리는 마실 물과 씻을 물을 얻기 위해 물통 지고 우물에 물길러 가지 않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그냥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수도꼭지를 보았다면 놀라 나자빠졌을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요만한 쇳덩이 구멍에서 깨끗한 물이 이토록 펑펑 쏟아져 나온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그 이유는 거대한 저수지와 우리 집 사이에 보이지 않으나 땅 밑으로 상수도 시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수원 저수지에서는 정수시설에서 오염된 물을 깨끗이 걸러내어 상수도시설을 통해 집집마다 물을 공급합니다. 우리는 수도꼭지만 틀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온 물을 언제나 마시고 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십자가의 저수지와 우리의 바짝 마른 영혼을 연결하는 상수도 시설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신 예수님은 믿음의 관을 통해 우리 영혼에 성령의 생수를 공급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4. 전적인 신뢰로서의 믿음

그럼 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존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믿음의 3요소로 이해와 동의 그리고 신뢰를 꼽았습니다. 이해란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하신 일 곧 아들을 보내신 사랑과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 바른 이해를 위해 우리는 성경공부를 합니다. 동의는 이 지식이 진리임을 인정하는 단계입니다. 많은 이들이 여기까지는 오는데 아직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신뢰란 그 진리의 말씀에 삶을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이해에서 출발하여 동의를 거쳐 온전한 신뢰에 이르러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첫 번째나 두 번째 단계에 머무르고야 맙니다. 그런 믿음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비유가 있습니다.

나이아가라폭포 위로 미국쪽과 캐나다쪽에 각각 줄을 걸고 한 줄타기달인이 미국쪽에 섰습니다. 구름처럼 모여든 관중을 향해 외치기를, 여러분 제가 저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건너갔다 올 줄 믿습니까, 하니까 모두가 예, 믿습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과연 그가 능숙하게 폭포를 건너갔다오자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여러분, 제가 사람을 등에 업고도 얼마든지 이 폭포를 건너갔다 올 줄 믿습니까, 하니까 이번에도 사람들이 네, 믿습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그럼 여러분 중 누구라도 한 명이 자원해 주십시오, 제가 업고 다녀오겠습니다, 하자 갑자기 조용해 지더랍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중에 한 아이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 아이는 이 달인의 딸이었습니다. 그는 딸을 업고 폭포를 건너갔다 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달인을 믿은 이는 몇 명입니까? 오직 한 명입니다. 나머지 무리는 이해하고 인정은 했으나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에 대해 야고보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여기서 아멘 하고 손들고 찬양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인도 하고 이단들도 하고 가라지들도 다 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진 나를 위해 죽으러 가자, 내가 너를 살릴 줄 믿고 내가 부르는 곳으로 가거라 할 때 아멘, 주 예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그가 믿는 이라는 말입니다.

5. 지속되는 관계로서의 믿음

다음으로 믿음에 대해 확인할 것은 16절에서 헬라어 피스튜온(πιστεύων)은 믿다는 뜻의 피스튜오(πιστεύω)의 현재분사형입니다. 현재분사라는 시제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상태나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곧 예수님을 믿음은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일어나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전생애를 걸쳐 지속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살펴 다시 번역하면 ‘믿음 안에 머무르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 15:4은 이 믿음 안에 머묾에 대해 다른 용어로 설명합니다.

(요 15:4) 내 안에서 살아라(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서 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서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믿음이란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 상태를 올바른 관계로 설명합니다.

(롬 5:2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되었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예수님의 보혈의 희생으로 죄사함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 관계에서 나오는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예수님을 통해 죄인인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상태를 가장 잘 묘사한 비유가 바로 결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을 영적 신랑으로, 우리는 영적 신부로 비유하십니다.

이제 니고데모의 질문으로 돌아가봅니다. 죄인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사랑으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값을 치르시고 보혈을 흘려 만드시는 생명의 저수지로부터 믿음의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끝없는 생명 곧 영생을 공급해 주심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품고 그 분과 교제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믿음의 상수도관으로 이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이것이 기적이 비밀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 사랑으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십니까? 그 신뢰로 주님의 영적 신부가 되어 그 분 안에서 살아가십니까? 그렇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은 이미 여러분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원하시고 그 분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은혜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틀림없이 여러분을 당신과의 거룩한 결혼생활로 초청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듭남의 생명을 매순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