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8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사사기 43:1-5) – 김도완 목사

7월 2, 2026

Series: 주일예배

Book: 사사기

1. 구원이 취소될  있는가

오늘 설교는 거듭남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A/S시간입니다. 최근에 한 교우께서 거듭남에 대한 시리즈설교를 듣고 질문하시기를, ‘거듭남 곧 구원이 취소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왜 이런 질문이 생기는지부터 생각해 봅시다. 이유 중 하나는, 한 때 신실했던 교인이 신앙생활을 그만 둔 것을 볼 때 ‘저 사람의 구원은 여전히 유효한가?’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나의 구원이 혹시 취소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처음 은혜를 맛보았을 때는 너무나 뜨거웠는데 지금 내 믿음은 뜨뜨미지근해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하는 죄책감과 함께 ‘이러다가 내 구원이 취소되어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구원이 취소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왜 생깁니까? 구원의 근거를 자신의 행위에 두는 것입니다. 자신이 뜨겁게 믿을 때는 구원이 확실한 것 같다가 믿음이 약해질 때는 구원이 불안해집니다. 구원이 무엇에 달린 것입니까? 신자의 행위에 달린 것입니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에베소서를 보십시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의 강도나 선한 행위여부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이라도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도 말씀하십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애초에 구원하시기를 죄인이었을 때 하셨는데 구원받은 이후에는 믿음이 떨어지거나 행위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구원을 취소하신단 말입니까! 그럼 애초에 의인의 기대치에 충족하는 이만 구원하시면 되지요. 구원은 인간의 어떤 자격이나 선한 행위에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믿음도 우리의 자격이 아닙니다. 믿음을 대가로 드리고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거저 베푸시는 은혜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믿음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자격이나 공이 될 수 없습니다.

(시 3:8)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복음이 다른 종교의 구원관과 달리 기쁜 소식인 이유입니다. 만약 구원이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달렸다면 불안하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애초부터 구원얻을 자격도 없고 수시로 그 자격을 잃어버릴테니 말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인 이유입니다.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성경은  경고하는가

그런데도 구원이 취소될 수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듭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성경에 등장하는 경고 때문이고 둘째는 현실에서 믿음을 떠난 사람들의 예 때문입니다. 먼저 성경의 경고를 봅시다.

(고후 13:5)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이런 구절을 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런 경고를 근거로 감리교나 카톨릭에서는 구원을 유지하는 인간의 순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장로교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을 강조하는 반면 이 교파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전체의 맥락을 볼 때 이런 경고는 구원의 상실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충성되지 못 함에 대한 꾸지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속썩이는 자녀를 꾸짖는 것과 같습니다. ‘네 이놈, 그렇게 사고만 치려거든 차라리 집을 나가버려.’ 이 꾸지람은 자녀를 호적에 파서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선언입니까? 제발 그만 정신 차리고 돌아오라는 호소요, 계속 그러다가는 하지 않아도 될 큰 고생을 한다는 경고가 아닙니까! 방금 본 고후 13:5의 바로 다름 구절에서 바울이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살피고 시험해 보면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결코 잃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고후 13:6) 그러나 나는 우리가 실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이 없어 떠난 이들

구원이 취소될 수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드는 두 번째 이유는 현실에서 믿음을 떠난 사람의 예 때문입니다. 한 때 뜨거운 믿음을 가진 듯 보였는데 후에 신앙을 떠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은 취소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여전히 구원을 받습니까? 이들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애초부터 거듭나지 않은 이였는데 믿는 것처럼 보이기만 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경의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로 부름받아 누가 봐도 구원받은 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을 파는 악인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요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그는 거듭났다가 예수님을 팔아 구원을 잃은 것이 아니라 원래 거듭 나지 못 한 이였던 것입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데 믿음이 없을 수가 있는가?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이 교회에 다니는 이들을 향해 하신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당신을 향해 주여, 주여 하는 이들 중에 거듭나지 않은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

이에 대해 갈라디아서는 스스로 속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갈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믿음이 흔들려 방황한 이들

교회를 떠난 이들이 처음부터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반면 거듭난 사람임에도 방황하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사시기의 사사 삼손이 그 예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 신약의 표현으로는 택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실인인 것을 알아서 머리칼을 자르지 않으려 했고 블래셋과 전쟁 중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부르짖는 신앙인의 모습을 분명 보였습니다. 반면 사실 짧은 신앙인의 모습보다 훨씬 긴 인생의 대부분을 쾌락을 쫓으며 인간적 분노를 풀며 살았고 그 결과 겪지 않아도 될 고난과 수치를 당하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은혜를 구한 그의 인생의 마지막 간구에 하나님이 응답하심으로 그가 구원받은 백성임을 보여줍니다.

우편강도와 함께 삼손은 자신들이 초래한 방탕으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은 인간의 공이나 노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러므로 한 때 믿음에 거했다가 신앙을 떠난 이들의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면 결코 취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종종 잠시 신앙생활을 했다가 교회를 떠난 이들, 병상에서 겨우 신앙고백을 하는 이들의 장례요청을 받습니다. 전체 삶을 놓고 보면 훌륭한 신앙인으로 살았다고 결코 볼 수 없으나 그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믿고 집례를 합니다. 그들의 짧은 고백이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끝도 인간의 시야가 측정할 수 없는데 하물며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의 끝을 인간이 판단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교회를 떠난 이들이 유다처럼 원래 거듭나지 못 해 떠난 것인지, 삼손처럼 거듭났으나 방탕하여 떠난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우리는 못 하기에 교회를 떠난 이들은 모두 전자라고 믿고 돌아오기를 호소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은 모두 후자라고 믿고 그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는데 우리도 사랑하는 이들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생명도, 구원도 모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전적인 주권입니다.

5. 영원히 보호하시는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선함이 아니라 당신의 전적인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고 구원하셨습니다.

(사 43:1) 이스라엘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별명입니다. 야곱은 아브라함, 이삭, 요셉 등 족장들 중 가장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 후손의 이름을 다른 이가 아닌 야곱의 별명으로 불러 이스라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이의 구원이 주는 메시지 역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구원하신 자녀를 떠나지 않으시고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벧전 1: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도록 예비된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당신의 자녀를 빼앗을 이가 세상에 없습니다.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며 성령님을 통해 친히 당신이 이루실 사건입니다. 이를 신학에서는 ‘성도의 견인’이라고 부릅니다. 구원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시는 한 성도의 구원은 변치 않습니다. 그 분이 변할 지 않을 지 들어보십시오.

(사 49:15) 여호와께서 대답하신다. ‘어떻게 여자가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으며 자기가 낳은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잊을 수 있을는지 몰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사 49:16)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으니 네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엄마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자녀를 잊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받았고 그 사랑으로 우리는 인도받아 그 사랑으로 마침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한없는 사랑에서 구원의 길을 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