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5 “그래서 어떻게 거듭나는가”(벧전 1:23-25) – 김도완 목사

7월 5, 2026

Series: 주일예배

벧전 1:23-25/그래서 어떻게 거듭나는가

260705 주일설교 믿음6

1. 거듭남의 

오늘은 거듭남에 대한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그간 거듭남이 세례와 성령의 역사로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이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오신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일어나는 사건임도 확인했습니다. 이 거듭남은 사람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는 것으로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나면 이런 질문이 생기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총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나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됩니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 빗물을 모아 활용하려면 저수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답을 베드로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들려줍니다.

2. 거듭남의 씨앗

거듭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가르치는 본문입니다. 23절은 거듭남이 썩을 씨로 시작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벧전 1:23) 여러분이 거듭난 것은 썩을 씨로 된 것이 아니라 …

썩을 씨로 비유된 것은 인간의 신분이나 노력, 수양 등을 가리킵니다. 좋은 혈통이나 가문, 선하게 살려는 노력, 자기수양 등은 결코 영원한 생명을 낳지 못 합니다. 와, 저 사람 대단하다. 정말 착해.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한데…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도토리키재가와 다를 바 없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면 1층 집이나 2층 집이나 다 다닥다닥 땅에 붙어있어 보입니다. 하늘에서 완전하신 하나님이 보신다면 인간의 선함이나 악함은 모두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24절은 그래서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벧전 1:24)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들의 꽃과 같아서 그 풀이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인간의 모든 노력은 풀과 들꽃 같아서 한 때 잠깐 푸르고 예쁜 듯 하지만 금방 더운 바람에 시들고야 맙니다. 시련과 유혹이 올 때 인간의 노력은 무너지고 엄정한 심판 앞에서 인간의 수양은 얼마나 부실한지가 낳낳이 드러나고야 맙니다.  신앙생활에서의 인간적 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믿어야지, 잘 섬겨야지, 좋은 기독교인이 되어야지… 우리가 하는 결심과 노력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참 생명의 열매를 맺지 못 합니다. 곧 바닥이 드러납니다. 기대대로 되지 않거나 시련과 유혹이 오면 얕은 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럼 거듭남을 일으키는 씨앗은 무엇입니까? 다시 23절과 25절을 봅니다.

(벧전 1:23) 여러분이 거듭난 것은 …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이며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벧전 1:25) ‘주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한다.’ 이 말씀이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기쁜 소식입니다.

썩지 않을 씨 곧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 곧 거듭남을 열매로 맺습니다.

3. 강력한 생명력

말씀의 씨앗은 영생의 열매를 맺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원리를 예수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비유 두 개만 보겠습니다. 첫째는 막 4장을 보면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입니다.

(막 4:26) 예수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다. (막 4:27)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농부도 모르는 사이에, 뿌려진 씨는 움이 돋고 자라서 (막 4:28) 열매를 맺게 되는데 처음에는 싹이 나고 다음에는 이삭이 나와 마침내 여문 알곡이 달린다. (막 4:29) 곡식이 다 익어 추수 때가 되면 농부는 낫으로 그것을 거둬들인다.’

씨앗을 자라서 열매맺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씨앗 안에 있습니다. 생명력이 그 안에 있습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생명의 열매를 맺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심으면 생명이 맺힙니다. 이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입니다.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 말씀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말씀입니다.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만이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을 낳습니다. 씨앗은 땅에 심으면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밭에 떨어지면 자라납니다. 그래서 마침내 영생의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국교회선교초기사건이 있습니다. 1870년대 의주의 상인이었던 이응찬은 압록강을 건너던 중 풍랑에 배가 침몰해 전재산을 잃고 낙심한 채 만주 우장의 한 여관에 들렀습니다. 그 여관주인은 존 로스 선교사가 건내준 성경책을 찢어 여관방에 벽지로 붙여두었습니다. 벽지의 글을 잃던 이응찬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주인에게 이 글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의 성경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존 로스 선교사를 찾아가 성경을 배우고 마침내 1876년 세례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두 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눅 24:32)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 말씀을 설명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속에서 뜨겁지 않더냐?’ 하고 서로 말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4. 좋은 마음밭

그럼 우리는 그저 말씀이 열매맺도록 기다리면 됩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있다고 예수님은 마 13장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십니다. 어느 농부가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데 씨앗이 길가밭과 돌짝밭과 가시밭 그리고 좋은밭에 떨어집니다. 다른 밭에 떨어진 씨앗은 모두 죽어버리거나 열매를 맺지 못 하는데 오직 좋은밭에 떨어진 씨앗만 30배, 60배 그리고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밭은 고집스러운 마음, 시련과 유혹에 넘어지는 마음이며 좋은 밭은 말씀을 깨닫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3:23)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은 100배, 60배, 또는 30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 거듭나는 사람의 예가 성경에 많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넬료와 그 가족입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계시를 받아 베드로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기로 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행 10:33) …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선생님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들으려고 모두 하나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5. 말씀이 일으키는 반응

베드로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마음가짐입니다. 이런 좋은 마음밭에 능력있는 말씀이 떨어지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요? 거듭남의 역사를 일으키는 성령께서 말씀을 받는 좋은 마음밭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행 1:8을 보면 성령은 권능을 주시는 분입니다.

(행 1:8) 그러나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Dunamis)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 두나미스는 폭탄인 다이나마이트의 어원입니다.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린 곳은 이전과 결코 같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권능으로 일하시는 마음에는 전과 다른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는 감정적 반응입니다. 앞서 예로 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처럼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어떤 이들은 이유를 알지 못 하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평안과 위로를 느낍니다. 또한 구원의 은혜로 인한 기쁨과 감격이 솟구쳐 나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 오는 깊은 슬픔과 찔림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시작되면서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시작됩니다.

둘째는 지적 반응입니다. 이해되지 않던 성경이 이해되고 믿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일으키는 죄사함이 이해됩니다. 삶의 목적과 가치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세상의 재물과 영광보다 하나님나라가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죄와 은혜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셋째는 의지적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죄가 추하고 더럽게 느껴져서 멀리 하고자 하는 결단이 생깁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고자 하는 헌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 생기고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이 생깁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를 갈급함같이 영혼에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교제하고자 하는 바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6. 거듭남을 사모하는 마음

이제 니고데모와 부자 청년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하는 니고데모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는 부자 청년 그리고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는 여러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베드로 사도는 2장으로 넘어가 이렇게 답합니다.

(벧전 2:2)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한 말씀의 모유를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은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합니까? 엄마에게 직진합니다. 세상 제져두고 모유를 갈구합니다. 안 되면 울며 갈망합니다. 그런 마음을 시편은 또 이렇게 묘사합니다.

(시 42:1) 하나님이시여,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은 거듭남의 삶, 영생의 선물을 모두에게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색하셔서 우리가 거듭남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선물을 사모하십니까? 그렇다면 생명의 씨앗 말씀을 배고픈 아기처럼 사모하십니까? 성경을 굶주린 사람처럼 읽고 듣고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갈망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은 반드시 거듭남의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밭이 되어 말씀을 갈망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