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만족하신 메시야”(사 53:10-12) – 김도완 목사

8월 10, 2026

Series: 주일예배

Book: 이사야

  1. 조명효과

코넬대 사회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 교수가 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에게 옛날 팝스타 얼굴이 커다랗게 그려지고 디자인도 촌스러워서 또래 학생들이 볼 때 전혀 ‘쿨’하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강의를 듣도록 한 후 학생들 중 몇 퍼센트나 그의 촌스러운 옷차림을 알아차렸을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참가자는 절반 가까운 학생이 알아차렸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학생들에게 묻자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만이 그의 옷차림을 알아차렸다고 답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확인된 사실은 첫째, 사람은 타인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면서 타인은 자신에게 관심이 많아서 늘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spotlight effect 즉 조명효과라고 이름붙였습니다. 마치 무대의 스팟라이트가 자신만 비추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건강한 삶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 착각 때문에 적지않은 이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을 어리석게 선택합니다. 또 자신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과도하게 염려하느라 불필요한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저의 자녀들이나 교우들이 이런 염려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이 스팟라이트이팩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1. 만족하시나

이사야서 53장을 4주째 살펴보며 마지막 단락을 읽었습니다. 3주 동안 살펴본 메시야의 모습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것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조롱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길 만한 것이었습니다. 멸시당함, 질고를 짊어짐 그리고 한 마디 대꾸도 못 하는 침묵. 어느 면으로 봐도 모든 이가 기다리던 메시야의 모습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로 그 분을 조롱하고 멸시하였습니다.

(사 53:4) …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이런 염려 때문에 몸이 아프거나 경제적 어려움, 자녀의 문제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 못 하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가난하고 몸이 아픈데다 사회적 지탄까지 받는데 아무 말도 못 하는 처지라면 스스로를 성공했다 여기십니까, 실패했다 여기십니까? 아마 비참하게 실패한 인생이라고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자책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도 자책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실제는 어떻게 하셨나요? 11절입니다.

(사 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당신은 실망하거나 자책하는 대신 만족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왜 고난을 당하고도 조롱과 비난을 당하며 분노와 슬픔이 아닌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까?

 

  1. 실패가아니기에

첫 번째 이유는 당신의 고난은 실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패란 원하는 대로 되지 못 했을 때의 결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었으면 성공이라고 하지요. 예수님의 고난은 원치 않았던 결과입니까, 아니면 원했던 결과입니까? 10절은 이 모든 일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

누구의 계획입니까? 성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획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신 것은 아닌가요? 12절입니다.

(사 53:12) …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님 당신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스스로 이 고난의 길을 갔고 그랬기에 당신을 못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성부와 성자가 한마음으로 이 고난을 당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랬기에 모든 일이 성부와 성자의 뜻대로 된 것입니다. 그럼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지요. 그러니까 실망이나 자책 대신 만족하셨던 것입니다.

 

  1. 엄청난유익 때문에

두 번째 이유는 당신의 고난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 때문입니다. 고난이 고생하는 것으로 끝나면 속된 말로 ‘개고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면 값진 희생이라고 부릅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여러분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십니까? 밤잠 제대로 못 자고 아침 저녁으로 라이드하고 사춘기에는 미친 년이랑 씨름하고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듭니까? 그걸 왜 개고생이라 하지 않고 값진 희생이라고 부릅니까? 한 생명을 이 세상에 제대로 된 성인으로 또 신실한 신앙인으로 길러내는 수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희생을 빚지고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그럼 예수님의 고난은  왜 개고생이 아니고 값진 희생입니까? 11절입니다.

(사 53:11) …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며 진리로 가르치셔서 무지한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과 그 사랑과 구원과 그 나라를 보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지심으로 죄와 죽음으로 우리를 영원히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희생해 물에 빠진 사람이나 불타는 건물에 갇힌 사람을 하나라도 건져내면 영웅이라고 부르고 칭송합니다. 자신을 희생해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과 6.25 참전용사는 구국의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하물며 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영원히 건져낸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은 무엇이라 기리며 칭송해야 할까요? 구세주라는 극존칭을 제외하고 어떤 찬양의 말인들 충분하다 하겠습니까! 그렇기에 주님은 당신의 고난으로 인해 실망하거나 낙심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만족하심이 당연합니다.

 

  1. 막대한보상 때문에

세 번째 이유는 희생과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보상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투자 대비 수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보상을 돌려받으셨습니다. 10절입니다.

(사 53:10) …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후손을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 분이 희생제물이 되신 결과 하나님은 후손을 보게하셨습니다. 여기서 후손이란 육체의 자녀라는 말이 아니라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 온 세상에 가득한 교회를 말합니다. 목적없이 죄 속에서 살며 결국 멸망할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요,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또 그의 날은 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부활로 당신을 일으켜 영원한 나라의 통치자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상주심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고자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결코 당신의 고난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슬퍼하거나 실망하실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 얼마나 조롱하고 비난하느냐로 자책하거나 낙담하지 않으셨습니다.

 

  1. 실패가아닌 값진 희생

주님의 희생으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이들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5절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은 실패가 아닙니다. 주님의 고난은 역사상 가장 큰 성공입니다. 가장 값진 희생입니다. 가장 위대한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당신의 고난을 부끄러워 하시거나 슬퍼하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당신 영혼의 수고를 보고 만족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당신의 고난은 칭송받아 마땅하고 그렇기에 우리가 모여 2천 년째 그 분을 주일마다 경배하고 매일매일 찬양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높임받고 온 세상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선포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부름받은 곳도 바로 이와 같은 값진 희생의 삶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베드로를 부르셨을 때 그가 초청받은 삶이 바로 이것이고, 오늘 우리를 향한 부르심 역시 바로 이 삶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는 명령이 그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구하며 십자가를 지는 삶에는 부득이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결코 개고생이 아니라 값진 희생입니다. 그 고난에는 성도를 세우고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엄청난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에는 영원한 생명과 놀라운 영광이라는 막대한 보상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다가 뜻대로 안 되어 고난을 당한다면 그것은 개고생입니다. 그것은 실패입니다. 요행이 성공해서 비교적 잘 먹고 잘 살았다 해도 그것은 결코 성공이 아닙니다.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고 너무나 유효기간이 짧은 행복은 진정한 성공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인생에 찾아온 고난은 오히려 값진 희생이요, 놀라운 성공입니다.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건강이 상할 수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올 수도 있고 오해받고 비난받고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참되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약속하는 고난이기에 진정한 성공입니다. 이 소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기쁨으로 이 길을 갑니다. 오늘 여러분의 고난은 개고생입니까, 값진 희생입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고난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