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양심적인 사람의 구원”(롬 3:20-22) – 김도완 목사

8월 16, 2026

Series: 주일예배

Book: 로마서

롬 3:20-22/양심적인 사람의 구원

260816 주일설교 믿음11

  1. 양심적인사람의 구원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이가 누구일까요? 에브라함 링컨 대통령입니다. 그에게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을 붙여준 일화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일리노이주 뉴세일럼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할 어느 저녁 날의 장부를 정리하다가 단골고객이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액수인 6센트의 거스름돈을 받아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료는 말하길, ‘고객이 받으러 오겠지’ 라며 말렸지만 그는 어두운 밤길에 폭우를 뚫고 6마일이나 걸어가 고객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돈을 돌려주고 돌아왔습니다. 링컨은 말하길, ‘돈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 도둑질이나 다름 없다네, 양심에 씻을 없는 흠이 생길 것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입니까! 

가족이나 이웃에 이렇게 양심적인 사람이 있으면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끝까지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링컨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만.) 이렇게 양심적인데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지 않겠나? 이런 사람이 구원받지 한다면 하나님이 불공정하신 것이 아닌가?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수는 없을까? 비기독교인으로부터도 종종 도전받는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1. 율법의한계

믿음에 관해 오늘로 11주째 설교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에 관해 가장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인데 로마서에서도 전체 메시지를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본문이 오늘 읽은 3장입니다. 본문은 당시 유대인들이 믿었던 구원의 길인 율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설명을 이해하면 양심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주에 걸쳐 살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고 최종적인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1세기 당시에는 특히 할례, 안식일 준수, 정결례 그리고 음식규정 등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율법준수가 구원의 길일 없다고 선언합니다. 

(롬 3:20)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입니까? 아무도 완전하게 율법을 지킬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킨다는 것은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삶으로 완전이 이룬다는 뜻입니다. 문자적인 율법조항대로 지킬 있는 이도 없지만, 설사 그런 이가 있다 해도 모든 행위가 완전히 사랑의 동기로만 이루어지는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이룬 이는 오직 분이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었다’선언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1. 율법의기능

그러면 하나님은 구원받는 아무 쓸모도 없는 율법을 주셨습니까? 분명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입니다. 먼저 은혜를 알기 율법의 쓸모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함입니다. 20후반부입니다.  

(롬 3:20) … 율법은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뿐입니다.

율법은 지키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어기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어깁니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어깁니다. 지키려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강상류로 헤엄쳐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하류로 떠내려 가지만 상류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힘들게 팔을 저어야 하고 그래도 겨우 제자리거나 조금 나갔다가 결국은 힘이 빠져 강물에 밀려 하류로 흘러갑니다. 수영을 해본 사람은 자신의 힘이 강을 거슬러 올라갈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율법을 지키려고 애써본 이는 자신이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본성상 자기사랑의 중력에 이끌려 살아감으로 결국 죄와 악을 양산하는 공장이나 다름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음으로 은혜를 후의 율법의 쓸모는 사랑의 삶을 실천할 있도록 하는 가이드입니다. 이는 율법을 주신 시점을 보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집트에 노예된 ‘아브라함의 자손을 율법을 주고 지키면 구원해 주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아무 조건도 없이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백성이 은혜에 응답하여 살아가는 방식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방식을 가르치시기 위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의 기능은 은혜를 입기 전에는 자신의 죄성을 깨닫게 함이고 은혜를 입은 후에는 사랑의 삶을 살도록 인도함입니다. 바울의 설명처럼 율법을 지킨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1. 양심과의인

양심도 이와 같습니다. 링컨의 정직함이 이처럼 존경받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이렇게 살지 하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따라 살려고 애쓰면 쓸수록 자신이 그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은 깨닫습니다. 이처럼 양심은 율법처럼 인간의 죄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로마서 2전반부에서 바울이 이미 양심이 율법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설명해 두었습니다. 

(롬 2:14) 율법 없는 이방인들이 본능적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실천하면 그들에게 율법이 없어도 그들 자신(양심)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롬 2:15) 그들의 행동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그들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그들의 양심도 이것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이 서로 고발하며 변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따라 산다는 것도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처럼 구원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양심적인데 어떻게 구원하지 않을 있나? 불공평한 아닌가?’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양심적이라는 사람도 대부분의 비양심적인 사람과 비교할 낫다는 것이지, 그가 양심에 점의 부끄럼도 없이 완전하게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목사님이 사람들 마음에 들어가 봤나? 어떻게 불완전하다 선언할 있나?’ 당연히 제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선언한 바를 인용한 것입니다. 

(롬 3:10) 기록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바울은 어떻게 아나?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전 7:20) 선만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시 14:3)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1. 인간의한계

그러므로 유대인의 율법으로도, 이방인의 양심으로도 나아가 적용하면 인간의 어떤 윤리적, 종교적, 모범적 삶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심판받을 운명을 벗을 길이 없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 관리의 예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였습니다. 청년 관리는 그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재능도 없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그가 보이는 겸손한 태도와 영적인 질문은 그가 진리를 찾는 구도자라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눅 18:18) 유대인 지도자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런 이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는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얻는다’가르치심이 아니라, 그가 사랑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좋은 집안에서 어린 시절부터 율법준수교육을 받았기에 자신이 율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좋은 교육, 교양있는 가정환경, 양심적인 마음가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 자신의 죄성을 가리는 좋은 포장지에 눈이 가리어 죄인됨을 깨닫지 함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의 삶을 살지 하게 만드는 그의 본성 탐욕을 바로 지적하셨습니다. 그의 많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의 예는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양심적으로 살아도 인간의 죄성을 완전히 극복하고 완전한 의로움의 기준을 충족할 있는 이가 없다는 진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떠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8:26)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있겠습니까?’하고 묻자 (눅 18:27) 예수님이 ‘사람의 힘으로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 하나님이하시는 구원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열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이 말씀하십니다. 

(롬 3:21) 그러나 지금은 율법과 관계없이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에 의해서 증거된 것입니다.

인간의 무기력함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는 길입니다. 율법도 사실은 길을 가리키고 있었고 선지자들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셨고 율법과 선지자 구약의 모든 말씀도 길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열어주시는 차별이 없는 구원의 길입니다. 22절입니다.  

(롬 3:2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차별 없이 하나님께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자신의 죄인됨과 철저한 무기력함을 인정하고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닫힌 눈을 열어 길을 보게 주십니다. 자신의 선함을 믿는 이에게는 열리지 않는 길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과신하는 이에게도 결코 열리지 않는 길입니다. 자신의 신앙경력을 자랑하는 이에게도 결코 열리지 않는 길입니다. 오직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선하신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에게만 열리는 길입니다. 오늘 모든 성도들이 바라보아야 유일한 길, 예수님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길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