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2 “구원의 식탁”(고전 11:23-26) – 김도완 목사

7월 20, 2026

Series: 주일예배

  1. 예수님의식탁 

여러분은 먹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드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드시는 장면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셨습니다. 세리 삭개오의 집에서 식사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빵과 생선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밤에도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부활 후에도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생선을 구워 나누어 드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을 바리새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눅 7:34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다’비난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절대로 같이 먹지 않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것이 이토록 그들을 분노케 했을까요? 예수님의 식탁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1. 마귀의질서가 지배한 식탁

1세기 당시 유대인에게 식탁은 단지 음식섭취의 자리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식사는 사회적 지위와 종교적 등급을 나누는 의식이었습니다. 모든 식탁은 사회적 계급을 반영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자유인과 노예, 경건한 바리새인들과 세리나 죄인 그리고 부자와 빈자는 절대로 같은 식탁에 앉지 않았습니다. 식탁을 통해 유대인은 이방인을 멸시하고 자유인은 노예를 아래 두며 경건한 이는 죄인을 경멸했으며 부자는 빈자는 깔보았습니다. 식탁 안에서도 서열이 분명해서 주인과 손님석이 구별되었고 상석과 하석이 철저히 구별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근거로 이런 질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가르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죄인이라 부르며 배제하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살인자, 사기꾼, 도둑이 아닙니다. 그들은 첫째, 신체적 약자들이었습니다. 병이 있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는 자신이나 부모의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들로 여겼습니다. 둘째, 평범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양치기, 농부, 어부는 직업 특성상 안식일 규정이나 정결한 음식규정, 손씻기나 이방인 접촉금지 등의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하여 죄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셋째,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정함을 씻기 위한 노동하지 않는 7일의 격리규정, 정결예식의 제물구입비용, 성전세 납부 등을 감당할 없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죄인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인의 거의 99%차지하는 이들이었습니다. 

 

  1. 하나님나라를선포한 식탁

그럼 예수님이 너무나 자주, 맹렬한 비난을 받으시면서도 죄인들과 함께 식탁을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놓은 이런 질서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선언하심이었습니다. 계급도, 지위도, 인종도, 성별도, 그로인한 배제가 없는 평등과 화해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집약된 의식이 바로 성만찬입니다. 

초대교회가 가진 성만찬은 우리가 하는 예배의식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집에서 가진 공동식사였습니다. 잠시 우리는 성찬식을 합니다. 사실 성경적인 성만찬은 예배 하는 의식이라기보다 예배 친교실에서 나누는 친교의 식사와 가깝습니다. 우리는 예배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예배 친교의 식사를 통해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계급과 배제와 멸시의 사회질서를 거슬러서 사는 것입니다. 질서는 불의하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세기 당시 서민 누구도 부정한 자나 죄인이 되고 싶어서 되는 이가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인두세와 토지세에 더해 관세와 통행세를 그들에게 부과했습니다. 것만으로도 가혹한 세금은 토착유지출신의 세리들에 의해 부풀려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두개인들이 거두는 성전세, 의무화된 십일조와 구제금 등을 포함하면 서민들의 세금부담은 수확의 60%웃돌았습니다. 가혹한 세금을 착취당하고 나면 겨우 생존할 만큼의 식량만 남았습니다. 흉년이라도 들면 세금을 내지 했습니다. 로마군인들에게 끌려가 갇히지 않으려면 부유한 이들에게 고리대금을 빌려야 했습니다. 대부분 이를 갚지 하여 토지를 빼앗겼습니다. 그러면 일용직 노동자나 소작농으로 추락했습니다. 만성적 영양실조상태로 살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걸인이 되거나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가련한 소작농, 노동자들이나 예수님이 고치신 수많은 병자, 귀신들린 자는 이런 당시 비참한 서민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나라가임한 식탁

당시 헤롯당이나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의 식탁은 이런 가련한 대중을 정죄하고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착취당하고 멸시받는 죄인들을 가까이 하심으로, 불의한 질서를 거스르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참여하는 주님의 제자들은 이런 질서를 거슬러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을 드러내는 방식이 바로 성찬식입니다. 

초대교회 성찬식은 나눔을 실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부유한 이들이 준비한 식사를 모두가 함께 나눔으로 압제와 착취의 질서에 이상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습니다. 성찬식은 평등을 추구했습니다. 부자나 빈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배운 이나 배운 이나,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같은 식탁에 앉았습니다. 성찬식은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압제하던 로마인도, 그들을 향해 칼을 갈던 혁명당도 같은 식탁에 앉아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찬식은 예배 의식에 끝나지 않습니다. 친교실의 식탁의 자리까지 이어집니다. 식탁은 사랑과 공의, 화해와 치유, 평화와 평등의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초청하고 함께 식사하셨듯 우리가 타인을 초청하고 불편한 이마저 환대할 나라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나라에 참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