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생양 매커니즘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책을 통해 인간사회가 폭력과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매커니즘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희생양 매커니즘이라고 불렀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은 위기의 책임을 지우고 분노를 쏟아놓을 희생양을 찾아내어 희생시킴으로써 일시적이나마 갈등을 해소시키고 평화와 결속을 되찾는다는 것입니다. 서기 64년경 네로황제가 로마대화재 후 시민들의 분노를 쏟아놓을 대상으로 기독교인을 희생시킨 것이나 20세기 초 일본의 관동대지진 후 민중의 분노가 정부로 향하는 것을 막으려고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6천 여명의 조선인을 살해한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희생양 매커니즘은 거의 모든 문명에서 발견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마코스 풍습,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아스루 풍습, 고대 로마의 데보티어서약, 마야와 아스텍문명의 인신공양, 고대근동 암몬과 모압의 인신제사 등 셀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이 원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어떻게 대부분의 문명권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재앙을 피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일까요?
2. 고통을 대신 당하심
지난 주에 이어 이사야 53장을 계속 살펴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멸시받는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죄인을 위해 희생양이 되시는 메시야가 소개됩니다. 그는 대신 질고를 지셨습니다. 4절입니다.
(사 53:4) 그는 우리의 질고(חֳלִי)를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
질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홀리는 육체의 질병과 마음의 연약함, 그로인한 고통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모든 질병과 연약함과 그로 인한 고통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으시고 그 고난에 참여하시고 고통의 짐을 당신이 나누어 지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모습을 마태복음 8장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 8:16) 날이 저물었을 때 사람들이 귀신들린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다 고쳐 주셨다. (마 8:17)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
본문 4절의 예언이 이렇게 성취되었습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가 겪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당신이 몸소 겪으셨습니다. 막 14장입니다.
(막 14:34) 제자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너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어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라도 자신이 겪는 괴로움은 아무도 모른다고 탄식할 수 없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이해못하는 괴로움도 주님은 이해하십니다. 그 괴로움에 동참하십니다. 위로하십니다. 괴로움을 이기도록 치유하십니다.
병상에 누운 이는 주님이 그 질고를 함께 지시고 치유해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슬픔을 당하여 괴로운 이는 주님도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당하셨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승리로 인해 모든 질고와 슬픔을 멸하시고 참된 위로와 소망의 나라를 상속해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3. 죄값을 대신 치르심
5절은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사 53:5)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으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어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시고 날카로운 채찍질에 온 몸이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흉악한 죄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이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벧전 2:24) 그리스도께서 몸소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를 위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매맞고 상처를 입으심으로 여러분이 낫게 된 것입니다.
죄를 지고 대신 죽는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들이 있습니다. 그의 죽음과 우리의 삶이 무슨 상관이 있나? 2천 년 전에 중근동에서 죽은,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이의 죽음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 답은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이 원리를 여러 제도와 사건 안에 담아 두셨습니다. 곧 희생의 제물입니다.
로마서 6장은 죄의 대가는 오직 죽음이라고 합니다.
(롬 6:23) 죄의 댓가는 죽음입니다…
히브리서 역시 피흘림이 없이는 죄를 씻을 길이 없다고 하십니다.
(히 9:22) 율법에 의하면 거의 모든 것이 다 피로써 깨끗하게 되며 피흘림이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의 피를 흘려 죽는 것으로 갚는 길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운명에 처한 죄인을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4. 대신 죽는 희생양
율법에는 죄인이 죽지 않고 용서받을 길이 있습니다. 바로 희생제물을 바치는 방법입니다. 레위기 1장은 죄인이 희생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을 때 그의 죄가 흠 없고 티 없는 제물에게로 넘어간다고 선언하십니다.
(레 1:4) 제물을 바치는 자가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 내가 그것을 그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희생의 제물로 받을 것이다.
그 제물을 피흘려 죽이는 순간 그 제물에게 전가된 죄값이 치러집니다. 죄를 제물에게 전가한 죄인은 용서받고 깨끗하다 선언을 받고 돌아갑니다. 개인의 죄를 이런 희생제물로 사함을 받는다면 민족의 죄는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역시 희생제물로 선택된 염소를 희생시켜 사함을 받게 하였습니다.
(레 16:21) (대제사장이) 그 머리에 두 손을 얹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지운 다음 …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야 한다. (레 16:22) 그 염소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에 이르거든 그 염소를 놓아 주어라.
이 원리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출애굽입니다. 애굽의 교만을 죽음의 천사로 심판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린 양을 희생제물로 삼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출 12:13) 그 (어린 양의) 피는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의 표시가 될 것이다. 내가 피를 보면 너희를 넘어가겠다. 내가 이집트를 벌할 때에 너희에게는 아무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이 유월절의 기원이 되었고 이 때 잡은 어린 양으로 온 가족이 만찬을 벌인 유월절 만찬이 예수님이 성만찬을 제정하신 자리였습니다.
5.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히브리서는 죄인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죽은 제물, 민족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은 제물, 이 유월절에 이스라엘을 위해 죽은 어린 양이 모두 인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은 희생제물의 모형이라고 합니다. 그 제물이 누구입니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외친 선포입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어깨 위에 모두 지우시고 십자가에 제단에서 피흘리고 죽게 하심으로 모두 사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이 용서받았습니다.
이 진리가 강조합니다. 죄사함의 기적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음이 좋으셔서 옛다, 너는 용서해 주마 라고 선심을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로 획득하는 자격은 더더욱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사랑으로 죄인을 긍휼이 여기셔서 우리가 죄를 깨닫기도 전부터 계획하시고 율법과 역사 곳곳에 그 원리를 심어놓으시고 마침내 때가 이르자 아들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셔서 죄값을 모두 치르시고 이루신 은혜의 기적입니다.
대부분의 문명에 기록된 희생양 매커니즘은 하나님의 이 구원역사의 가르침을 희미한 기억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구약의 모든 희생제사가 십자가사건을 예고한 그림자라고 가르친 것처럼, 여러 문명은 이 원리를 너무 오래 전에 들어 가물가물한 기억처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제도가 그림자일 뿐 참된 죄용서를 주지 못 하듯이 여러 문명이 가진 기억도 그릇된 방식의 희생양만 만들어낼 뿐 참된 평화와 구원을 이루지 못 합니다. 모든 기억이 가리키는 곳은 바로 십자가 위의 이 사건입니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희생이 죄를 사하고 평화를 이루고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용서를 받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어린 양 예수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비로운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그 분께 모두 전가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십자가 희생이 우리의 죄를 남김없이 씻어서 용서받은 수 없던 우리를 깨끗한 의인으로 바꾸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겸손한 간구와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오는 이를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무한한 자비의 초청에 응답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 앞에 나오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