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19:9-10/자비의 나라
260913 주일설교 사랑1
1.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13주 동안 소망의 설교를 잘 들으신 이는 부활의 몸으로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라고 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의는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완성될 나라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가 아직 이 몸을 입고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그 하나님의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시작되는 나라입니다. 어떻게 시작될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질서가 실천되고 다스리는 순간 시작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바로 오늘 읽은 이 말씀이 순종되고 실천되는 곳에서 시작되는 나라를 가리킵니다.
2. 약자를 위한 나라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나라는 약자를 위한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착 후 농경사회로 전환한 이스라엘이 추수할 때에 지킬 규정을 설명합니다.
(레 19:9) 너희는 추수할 때 곡식을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지 말고 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아라. (레 19:10) 그리고 포도를 딸 때도 다 따지 말고 땅에 떨어진 포도는 줍지 말아라. 너희는 이 모든 것을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 두어야 한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밀을 추수할 때나 포도를 수확할 때 깔끔하게 수확물을 남김없이 거두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밭모퉁이의 곡식이나 나무가지 끝에 달린 포도는 수확하지 말고 남겨두고 땅에 떨어진 이삭이나 포도도 주워서 수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입니까? 자신의 땅이 없는 가난한 자들이나 나그네들이 추수가 끝난 밭이나 포도원에 와서 이를 가져다 먹을 것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이렇게 하면 수확물이 줄어들 겁니다. 밭이나 포도원의 규모가 큰 부자들일수록 줄어드는 수확물의 양도 늘어날 겁니다. 이렇게 해서 언제 더 큰 부자가 됩니까? 이는 오늘날 현대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완전히 반대됩니다. 할 수 있는 한 최단기간에 최고의 수익을 올려 이른 시간에 부자가 되어 은퇴하여 편안한 삶을 누리려면 수입에서 조금의 손실이라도 줄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것이기에
첫째, 이 모든 수확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수확물인데 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나누어야 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수확물의 주인에게 일부를 스스로 포기하라고 명령하십니까? 사실은 그 수확물의 주인이 밭주인이 아니라 주님 당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 가나안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여호수아를 통해 제비를 뽑아 가문별로 나누어 주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명확히 알리시기를, 그들이 나누어받은 땅의 주인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에게 은혜로 나누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 25:23) 그리고 너희는 토지를 임대할 경우에 아주 팔아 넘기는 조건으로 팔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토지가 너희 것이 아니라 내 것이며 너희는 다만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소작인으로 나와 함께 있는 나그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가문별로 나누어 받은 토지는 임대만 할 뿐 완전히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의 토지소유주는 진짜 땅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임대료도 내지않고 거저 받아 사용하는 임대인들입니다. 땅문서 디드에 우리 이름이 적혀 있어도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는 자연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압니다. 공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빗물과 강물은 누구의 것입니까? 햇살은 누구의 것입니까? 인간 중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이유는 창조주께서 모두에게 거저 주신 것이기 때문 아닙니까? 땅이 이것과 다릅니까? 이 땅이 여기 존재하기 위해 우리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줄을 긋도 여기는 내 땅, 저기는 니 땅이라고 하며 서로 한 뼘이라도 더 갖기 위해 싸우고 다투고 소송하고 전쟁하고 폭격하고 죽이고 빼앗습니다.
4. 거저 받은 것이기에
땅이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라는 선언은 이 땅을 점유하고 사용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을 때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임을 겸손히 인정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밭주인에게 당당하고 당연하게도 수확물을 모두 혼자 가지려 하지 말고 빈자와 약자를 위해 남겨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에게 너그럽게 나누어주라는 정중한 요구이기 전에 우리가 거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거저 나누어 주라는 당당한 명령입니다.
(마 10:8)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참성도는 선을 베풀 때에 자신이 너그러운 사람인양 자부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 것을 가지고 나누어 주어야 너그러운 사람이지, 하나님 것을 거저 받아 누리면서 그것을 다시 나누는 것이라면 나눌 여유가 있음을 감사할 뿐이요,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너그러우심만 자랑해야 합니다. 아이고, 이것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그러우세요. 저도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벧전 4:11) …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분에게 영광과 능력이 길이길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베풀고 봉사하고 불만이 생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섬겼는데 사람들이 안 알아주네, 내가 이렇게 도와주었는데 사람이 안 변하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섬겼는데 하나님이 영광받으셔야지, 왜 나를 알아주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나누었는데 그 사람이 왜 내 마음에 들게 바뀌어야 합니까? 그를 바꾸는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닙니다.
십일조와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대상 29:14) 이 몸이 무엇이며, 이 몸이 거느린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렇듯이 기쁜 마음으로 바칠 힘을 주셨습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따름입니다.
5. 주님을 닮는 길이기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수확물을 남겨두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선택이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명하시는데 아버지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이 바로 자비로우심이라고 합니다. 눅 6장에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거저 나누어 주라고 명하신 후에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눅 6:36)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의 가장 큰 관심은 자녀들이 당신의 자비로우심을 닮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놀라운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인류를 창조하셨고 긍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창조와 구원역사는 모두 당신의 사랑의 힘으로 가능했고 거기에는 엄청난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더 벌어야 행복할 줄 알지만 진짜 행복은 더 사랑할 때에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랑을 모르는 이는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행복도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는 연인은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는 힘든 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는 천국을 누립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랑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사랑의 예고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배우고 당신을 닮아가고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완전한 사랑의 삶을 미리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이유는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천국갈 티켓을 사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이고, 그 분의 자비를 닮아가다보니 우리도 그 분처럼 눈물 흘리는 자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성품으로 조금씩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6. 더불어 사는 길이기에
세 번째 이유는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약자를 돌보는 것은 약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강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빈자를 돕는 것이 부자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빈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한 번 빈곤에 빠지면 탈출할 사다리가 다 끊어지고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져서 극복할 길이 없어지면 말입니다.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빈곤의 늪에 빠진 이들은 범죄와 마약과 무기력의 수렁에 빠집니다.
가장 강력한 범죄대책은 경찰력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경찰력을 동원해도 빈곤을 탈출할 길이 없으면 범죄는 점점 더 흉악해지고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범죄자를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될 것 같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왜입니까? 범죄자를 추적하고 체포하고 재판하고 가두고 감시하고 먹이고 입히고 교화하는 것이 모두 천문학적인 세금입니다. 2026년 미국에서 재소자 1명을 관리하는데 평균 5만 달러의 세금이 투입됩니다. 뉴저지는 8만 달러, 뉴욕은 10만달러를 넘어갑니다. 보이지 않는 비용은 계산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버지나 형이나 가족이 재소자로 투옥되어 있는 동안 그 자녀, 동생, 가족은 돌보는 이가 없어 더 심한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또다른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재소자 한 명을 가두는 동안 두 명, 세 명의 새로운 범죄자를 길러냅니다. 이로인한 비용은 계산이 불가합니다. 증가하는 범죄율은 평범한 시민이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높입니다. 그로인한 사회적 불안과 소요 등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국가경제가 입는 손해 역시 계산이 안 됩니다. 눈덩이처럼 그 피해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직간접으로 돌아갑니다. 이란전쟁의 고통을 전장의 병사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누어 겪는 것과 같습니다.
마약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들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사회적 비용, 무기력에 빠져 구직을 포기하는 이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지금 다 설명할 시간이 없지만 천문학적인 피해입니다. 여기 한 사람이 빠져나올 수 없는 빈곤의 늪에 갇히면 그와 가족, 주변인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모두가 그를 그 늪에서 건져주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의 열 배, 스무 배를 나누어 치러야 합니다. 그 비용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그 사회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어 쿠데타나 피의 혁명, 내란이나 외침으로 망합니다. 한 때 위대했던 로마제국, 한나라, 당나라, 프랑스왕정 그리고 가까이는 조선왕조도 다 이런 과정으로 몰락했습니다.
7. 주님을 닮은 성도
그러므로 우리가 약자를 돌아보는 것은 약자를 위한 것인 동시에 돌아볼 여유를 가진 강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도움 받는 이도 살지만 돕는 이는 사는 길입니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길입니다. 선하신 주님을 닮는 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은혜를 받기만 하는 이가 아니라 나누기도 하는 이가 되는 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