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0 “존중의 나라”(룻 2:14-19) – 김도완 목사

9월 21, 2026

Series: 주일예배

Book: 룻기

  1. 지혜없는 선한 일

목회자로서의 첫 사역은 신대원 재학시절에 서울의 어느 교회 중등부 전도사로 섬긴 일입니다. 그 교회에서는 매년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데 뜻깊은 사역을 했는데 보면서 제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주일저녁 예배시간에 수혜학생들을 참석시켜서 앞으로 불러내어서 교인들 앞에서 전달했는데 매번 참석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생기는 겁니다. 그 교회에서는 성적이 아닌 가정형편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고 광고를 해서 온교인이 다 아는데 한창 예민한 사춘기의 학생들이 사람들 앞에서 장학금 받기를 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일에 목회자들과 장로님들만 참석해서 전달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그래도 안 오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담임목사님께서 교회에서 도와주겠다는데 왜 받으러 안 오느냐고 역정을 내시는 것입니다. 애꿎게 받으러 온 학생이 야단을 맞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전달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은혜를 잊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꼭 너희도 받은 것을 돌려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데 학생들이 기쁘거나 감사한 얼굴이 아니라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표정으로 받고는 끝나는 대로 쏜살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온 학생들도 엄마가 받으러 가라고 등떠밀어서 왔던 것입니다. 

왜 유익한 사역을 하는데 학생들은 참석하지 않으려 하고 참석한 학생들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까요? 제 생각에는 학생들의 입장과 마음을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의 학생들이 주변 사람들 시선을 얼마나 신경쓰겠습니까? 그런데 전교인이 보는 앞에서 그 장학금 받는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 여기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어요? 장학금 받으면서 은혜 갚으라고 꾸중과 훈계를 들으면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결심이 설까요, 저런 소리 듣느니 차라리 안 받고 말겠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까요?

 

  1.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오늘 설교는 지난 주에 살펴본 레 19장 명령에 이어집니다. 

 (레 19:9) 너희는 추수할 때 곡식을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지 말고 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아라.

이 명령이 빈자를 위한 것임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곡식을 왜 빈자에게 직접 나누어 주라고 하지 않으시고 밭에 남겨두라고 하셨을까요? 십일조를 드리듯이 비율을 딱 정해놓고 이 곡식은 무조건 가난한 자들을 불러 나누어 주라고 하시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요? 빈자들도 힘들게 곡식 줍는 고생을 안 하고 편하게 받아가니 더 좋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받는 이와 주는 이 모두를 위한 주님의 배려이자 지혜입니다. 

첫째, 이는 받는 이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삶을 개선해 갈 수 있도록 돕는, 배려이자 존중입니다. 곡식을 주인이 다 추수한 후 빈자들을 모아서 나누어 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받는 이들은 빚진 자가 됩니다. 곡식을 빌리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빚진 자가 됩니까? 그냥 받는 것은 빌리는 것보다 더 큰 심리적, 사회적 빚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폐를 끼친다는 심리적 빚이 생깁니다. 공동체에 부담을 지운다는 사회적 시선의 빚도 생깁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누구나 갚을 수 있도록 빌리지, 그냥 도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은 종종 받는 이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방식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도록 하여 이런 수치심을 덜 수 있습니다. 

 

  1. 당당한 삶의 선물

게다가 이 방식은 받는 자가 노동을 통해 이삭을 줍도록 함으로써 자신에게 더 당당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거저 받는 것보다 노동을 하고 기여를 하고서 정당한 대가를 받을 때 사람은 훨씬 당당하고 큰 유익을 얻습니다. 얼마 전에 한인봉사센터에서 나와서 여러 가지 정부보조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기관이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 그 임금을 정부에서 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비용이 적지않아보이기도 하고 주민을 쓰는 기관이 줘야 할 임금을 왜 정부에서 제공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민에게 차라리 그냥 임금에 해당하는 비용을 주는 것이 전체적으로 비용이 더 적게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지원금을 그냥 받는 것보다 노동하고 정당한 대가로 받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유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돈이라도 그냥 받을 때보다 땀흘려 노동한 대가로 받을 때 사람은 빚진 마음이나 수치심 대신 자존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또 지원금은 끊기는 순간 다시 빈곤의 상태가 되지만 노동은 경력과 기술을 쌓아주어 일자리를 잃어도 새로운 기회를 찾게 도와줍니다. 일터는 또 사회적 고립감과 위축감을 해소하고 공동체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도록 도와줍니다. 당연히 노동의 대가는 무노동 지원금보다 사회전체의 생산성과 경제적 활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1. 평등한 세상

둘째, 이는 베푸는 이에게도 교만해져서 진짜 상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배려입니다. 베풀 때 사람은 받는 이보다 저절로 더 우월한 위치에 놓입니다. 이는 종종 영혼에 우월감이라는 치명적인 독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 이 독에 중독되고 멸망하지 않을 영혼은 세상에 없습니다. 주님의 방법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받는 자를 수치심의 독에서 보호할 뿐 아니라 주는 자 역시 우월감의 독에서 보호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고 평등합니다. 그의 인종이나 국적, 성별이나 연령, 학력이나 심지어 빈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는 믿음은 성경이 인류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고대 동양이나 서양에서도 인간평등사상의 희미한 기원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엄격한 신분제를 전제로 하고 일부 자유시민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로서의 평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로부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정착시키실 때 하나님은 이방나라들과 달리 왕이나 특권계급이 없이 모든 백성이 자유시민으로 생산수단이 토지를 소유하고 어떤 경우에도 동족을 종으로 삼지 못 하게 하여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도록 율법에 명시하셨습니다. 레 25장입니다. 

(레 25:39)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빚을 갚지 못 하여)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레 25:40) 직원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만 너를 섬기게 하라. (레 25:41) 희년이 되면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토지로 돌아가 (자유인으로 살)게 하라

 

  1. 우월감 없는 마음

심지어 왕도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그 권력이 제한받음으로 우상을 섬기는 주변의 이방나라처럼 무제한의 권력으로 백성을 압제하거나 착취하지 못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누구도 사람 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아래에도 사람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 유일하신 왕으로 섬기는 평등사회였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이런 평등의 가치를 진정으로 믿고 실천하고 실현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우월감은 열등감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해를 끼치는 독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베푸는 이에게 이런 독에 중독되지 못 하도록 지켜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마 6장에서 베풀 때에 이런 독에 중독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3)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 6:4)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래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만약 베풀기를 드러내려고 하면 오히려 상을 잃어버리고 우월감에 독에 중독되어 베풀지 않느니만 못 한 상황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대면하지 않도록 한 이 방식은 주는 이에게 진짜 상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한 배려이며 은혜입니다. 

 

  1. 무시하지 않는 사랑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상을 보여줍니다. 보아스는 레 19장의 명령을 사려깊음과 겸손함으로 순종하여 상을 받는 사람입니다. 부유한 지주였던 보아스는 자신의 먼친척인 나오미가 완전히 파산하여 모압 땅에서 돌아왔고 그 며느리인 모압여인 룻이 따라와 거지가 된 시어머니를 모시러 자신의 추수하는 밭에 곡식을 주우러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일꾼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룻을 초청하여 배불리 음식을 먹도록 배려하고 그녀가 다시 곡식을 주우러 가는 것을 보고 일꾼들에게 시키기를, 보릿단에서 이삭을 빼서 티나지 않게 넉넉히 땅에 떨어지도록 하고 동시에 그녀가 밭에서 주울 때에 야단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녀를 도우면서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신학교 시절 사경회에 청량리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해먹이는 밥퍼사역으로 유명해지신 최일도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습니다. 밥퍼사역이 알려져서 많은 교회에서 봉사자들이 와서 참여하는데 그 중에는 꼭 노숙자들과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밥을 퍼주면서부터 잔소리를 합니다. ‘이 밥 교회서 주는 거예요, 맛있게 드시고 꼭 예수 믿으세요. 많이 드시고 힘 내셔서 일하러 가셔요. 사지 멀쩡한데 왜 여기서 밥을 얻어먹고 계세요? 술 좀 끊으세요. 다음에도 술드시면 밥 안 드려요.’ 그러면 잔소리 듣고 있던 노숙자 중에는 버럭 역정을 내는 이들이 반드시 생깁니다. ‘에이, 더러워서 밥 못 얻어먹겠네. 밥 한 끼 주고 온갖 생색에 잔소리는… 지가 내 마누라야, 뭐야?’ 그럼 또 지지 않습니다. ‘아이고, 내가 못 할 말 했나? 저러니까 빌어먹고 다니지. 저런 인간은 평생 길에서 굴러먹다 죽을 팔자야.’ 그래서 최목사님은 봉사자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신답니다. ‘제발,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봉사만 해주세요. 우리가 광고 안 해도 예수쟁인 것 다 압니다. 술 먹지 말라, 일 해라 잔소리 안 해도 지겹게 들어요. 그저 축복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시고 잔소리, 비난, 정죄하지 마세요.’ 

 

  1. 존중하는 겸손

보아스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녀가 어리고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났을 때 그녀를 이렇게 칭찬하고 축복했습니다. 

(룻 2:11) ‘나는 그대가 남편을 잃은 이후로 시어머니에게 한 일을 모두 들었네. 그리고 그대가 어떻게 부모가 있는 고향을 마다하고 이 곳 낯선 땅에까지 와서 살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네. (룻 2:1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대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원하며 그분의 보호를 받고자 온 그대에게 풍성한 상을 주시기 원하네.’

이 한심한 여자야, 왜 이렇게 궁상맞게 남의 밭에 곡식이나 줍고 있나, 가망없는 노인네하고 살겠다니 어디 판단력이 모자란 것 아닌가, 아이고, 불쌍한 인생아… 이런 처지에 놓인 이를 이렇게 무시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그는 그 상황에서도 그녀의 선함과 신실함에 주목하고 칭찬하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티나지 않게 도와줍니다. 이 얼마나 사려깊고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신약성경은 보아스처럼 모든 이를 존중하고 존경하라고 명합니다. 

(롬 12:10)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

(빌 2:3) …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겸손한 이에게 상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보아스는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상을 룻기의 마지막장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룻 4:18) …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보아스의 후손이 위대한 다윗왕조를 이루고 그 후손에게 온 세상의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복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의 복을 문자 그대로 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