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7 “온 세상에 가득한 지혜”(시 104:24-25) – 김도완 목사

10월 1, 2026

Series: 주일예배

Book: 시편

1. 신앙과 과학

저희 첫째 평화가 미들스쿨을 다닐 때 어느 과학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그 벽에 인간의 진화과정을 그려놓았습니다. 유인원이 점점 허리를 펴다가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그림이었습니다. 평화가 그 그림을 물끄러미 보고 있길래 제가 물었습니다. “평화야,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 알지?” 평화가 대답했습니다. “응, 그런데 하나님이 진화를 통해 창조하셨을 수도 있잖아.” 자녀가 이렇게 되물었다면 여러분은 뭐라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설교 말미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최근 성경공부를 하다가 교우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으로 설교하겠습니다. 평화가 던진 질문에 그간 교회가 해온 가장 많은 대답은 이것입니다. "무슨 소리? 성경에 7일 만에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수십 억년 동안 진화를 했다는 말이야?" 이런 대답은 창조과학운동의 영향이 큽니다. 1961년 '창세기의 홍수' 출판을 계기로 미국에서 시작한 소위 창조과학운동(Creation Science Movement) 1980년대에 한국으로 건너가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창조과학운동의 목표는 창세기의 기록이 과학적 사실임을 증명하여 기독교신앙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2. 창조과학운동의 명과 암

정말 순수한 동기로 시작된 이 운동의 긍정적 측면은 성경의 권위를 세우고 기독교변증을 대중화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반면 저는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신앙과 과학을 대립되는 분야로 인식시켜서 기독교가 비이성적, 비합리적 믿음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창조과학의 이론은 주류과학계로부터 아마추어들의 유사과학이란 비판을 받았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의 논문이 주류과학계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동시에 신학계로부터는 성경을 과학논쟁에 끌어들여 본래 메시지를 오히려 가린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창조과학회의 주장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자란 자녀들은 과학책과 성경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믿음을 택하면 학교서 바보가 되고, 과학을 택하면 교회에서 불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이 자녀가 과학을 전공하면 더 난처한 입장에 처합니다. 자신의 믿음과 충돌하는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버리거나 적어도 타협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는 겁니다.

3. 성경에 대한 오해

분명히 신앙을 지키려는 순수한 시도일텐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딜레마에 처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오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오해입니다. 창조과학회는 성경을 과학책으로 오해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명백히 성경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장입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의 목적은 과학적 사실을 명시함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삶의 교훈과 책망과 교육에 있습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지혜의 책 혹은 진리의 책입니다. 무엇에 관한 지혜와 진리입니까?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에는 이렇게 명시해 두었습니다.

'이 책들(신구약 66권)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법칙이다.'(제1장2절)

4. 과학책이 아닌 진리의 책

성경은 신앙과 생활에 관한 절대적인 법칙입니다. 과학적 사실을 증명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신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장르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기록한 책이 성경이라면 물리세계에 대한 원리를 밝히려는 책이 과학책입니다. 성경과 과학책은 다른 범주에 속했습니다. 논리학에서 범주의 오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나 사물을 같은 범주에 넣고 이해하려 할 때 생기는 오류입니다. 명백히 이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신앙과 과학을 같은 범주안에 넣고 논하는 것은 마치 야구팀과 축구팀을 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시키는 것과 음악과 미술을 나란히 놓고 예술성의 우위를 따지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야구선수와 축구선수가 룰이 다른데 시합이 됩니까?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의 예술인데 우위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찰이 불가능한 영의 세계를 어떻게 관찰과 측정과 실험으로만 논할 수 있는 과학으로 판단한단 말입니까?

창조과학회는 이런 범주의 오류를 범함으로써 처음에는 신앙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같은 환상을 심어주어 기독교의 승리를 선언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에는 오히려 기독교인을 비합리적, 비과학적,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스스로 고립되게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5. 과학에 대한 오해

창조과학회의 두 번째 오해는 과학에 대한 오해입니다. 창조과학회는 과학이 무신론을 주장한다고 오해하였습니다. 이는 무신론자들도 하는 오해입니다. 그 근거는 현대과학이 제시하는 세상과 생명의 기원이 성경의 기록과 모순된다는 점이었습니다. 138억년 전에 빅뱅으로 우주가 생겼고 생명은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한 것이니 빛이 있으라 하여 6천 년 전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창세기의 선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창세기가 과학책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면 과학이론이 창세기를 부정한다는 주장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5살 아이나 손주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미션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이 이론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전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과학자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해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5살 아이에게 어떻게 이를 이해시킬까요? 어쩔 수 없이 엄청나게 복잡한 이론을 요약, 생략, 핵심정리해서 과학적 단어를 모두 일상의 단어로 바꾸어 1-2분 안에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보다 길어지면 아이는 어느 새 장난감 들고 뛰어다닐 테니까요. 그렇게 애를 쓰는 여러분을 보고 과학자가 왜 상대성이론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지 않고 무슨 동화이야기처럼 하느냐고 비난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교육에 교자도 모르는 이 구제불능의 T같은 인간아, 하지 않겠습니까?

6. 중립적인 과학

성경이 기록되던 3천 년 전 인류의 과학적 수준은 비유하자면 5살 아이 수준보다 결코 낫지 않았습니다. 기록하는 이나 읽는 이나 수천 년 후에 등장할 과학적 개념이 마법의 언어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현재까지 측정한 우주의 크기에서 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태평양 바다 전체에서 해변의 모래 한 알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작습니다. 이토록 거대하고 정교하고 오묘한 우주의 창조의 신비를 창세기 1장의 1,900자 안에 담아서, 과학의 과자도 아직 모르던 시대의 사람들이 듣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크게 요약하고 함축하고 비유하고 상징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그 기록과 현대의 과학적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이 어떻게 말이 됩니까?

과학은 중립적입니다. 보이는 것을 관찰하고 측량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할 뿐이며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오해하여 주장하지만, 과학은 신의 부재를 증명하지 못 합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지도 않습니다. 다만 과학을 연구할 때 우리는 신의 존재에 대해 높은 개연성을 발견합니다. 정직하게 자연만물을 들여다 보면 창조주의 흔적을 발견한다는 말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진리를 드러냅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성경을 통해 계시되는 특별은총과 비교하여 자연만물을 통해 계시되는 일반은총이라고 부릅니다.

(롬 1: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과학적 지식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과학을 연구하고 자연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과 아름다움을 더욱 발견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7. 잠정적 진리로서의 과학

오늘날 우주기원이론으로 가장 널리 지지받는 빅뱅이론는 1927년 벨기에 천문학자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가 발표하였습니다. 발표 직후 이 이론은 주류과학계로부터 '위장된 창세기'라며 큰 조롱과 반대에 직면했는데 르메트르가 카톨릭의 신부이기도 했고 빅뱅이론이 창세기 1장의 우주창조에 관한 묘사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는 창 1:3과 138억년 전 한 특이점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이론이 무척이나 닮지 않았습니까?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조차 BBC라디오방송에 출현하여 '도대체 우주가 그 따위 커다란 폭발 Big Bang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말이나 되냐'고 비판했는데 이 때 쓴 빅뱅이란 단어가 이 이론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허블망원경이 발명된 후 빅뱅이론을 뒷받침하는 관측자료가 축척되면서 오늘날에는 가장 설득력있는 우주기원이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얻는 교훈이 몇 있습니다. 첫째 과학은 잠정적 진리라는 것입니다. 과학은 현재 가장 설득력있다고 지지받는 이론이 더 많은 관찰과 측정, 실험에 의해 더 큰 지지를 받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인정받는 진리입니다. 과학에 절대적 진리란 없습니다. 뉴튼의 만류인력의법칙과 정상우주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와 빅뱅우주론이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절대진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를 대체한 상대성원리와 빅뱅우주론도 앞으로 더 발전될 과학에 의해 얼마든지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물리세계에 관한 이런 잠정적 진리와 영적 세계에 관한 절대적 진리를 나란히 놓고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범주의 오류이며, 오히려 성경의 절대적 진리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먹는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8. 창조주를 드러내는 과학

둘째 과학은 정직하게 접근하면 창조주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도구가 됩니다. 방금 살펴본 것처럼 우주기원에 관한 빅뱅이론이 얼마나 창세기의 묘사가 닮았습니까? 상대성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뉴튼의 정상우주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고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 전부터 존재했고 앞으로 영원할 것입니다. 이 세계관에서는 시간 밖에 계시는 창조주,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시간의 왜곡에 대한 묘사,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한결같다는 묘사가 모두 그저 신기한 묘사일 뿐입니다. 무슨 마법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상대성원리를 알고보면 이 묘사가 모두 이해가 됩니다. 시간은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고 빅뱅우주는 언제가 다시 수축하여 시간이 끝나는 시점이 올 것이라 하니 시간도 시간 밖에 계신 창조주에 의한 피조물임이 이해가 됩니다. 빨리 움직일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이 계산될 수 있다는 점도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보면 엄청난 속도로 우주여행을 하고 온 아버지보다 지구에 살던 딸이 훨씬 늙어버린 장면이 나오지요?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8분이 걸려 우리 눈에 도달하지만 빛의 입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태양을 출발하여 지구까지 오는데 전혀 시간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빛이 그러하다면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이 없는 분이라는 말이 전혀 이상힐 것이 없지 않습니까!

9. 창조주의 놀라운 솜씨

이제 평화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평화야. 하나님이 진화를 통해 창조하셨을 수도 있지. 아빠는 종 안에서의 소진화는 인정하지만 아직 종간의 진화인 대진화를 인정하기 어렵더구나. 과학이 계속 발전하면 더 많은 것을 밝혀낼거야. 그러나 어떤 방법이든 창조주께서 우주를 사랑으로 창조하셨음을 변하지 않는 진리란다."

신앙의 눈으로 보든, 정직한 관찰자의 눈으로 보든 과학은 창조주를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교하고 오묘한 창조주의 솜씨를 외치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과학이 결코 원수가 아니라 친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피조세계 안에 가득한 창조주의 영광을 발견해는 친구와 그 영광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친구입니다.

(시 104: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 104: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