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기점이 된 아합왕
오늘 본문 왕상 21장은 북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의 통치기간에 벌어진 일을 다룹니다. 아합왕은 이스라엘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그를 다루는 분량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에 등장하는 통치자는 남왕국의 5명, 북왕국의 8명으로 총 13명입니다. 열왕기상은 총 22장인데 그 중 3분의 1에 달하는 총 7개장이 아합왕의 생애를 다룹니다. 13명의 왕 중 한 명이 왕상 전체분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만 봐도 이 책이 아합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합의 중요성은 그가 왕국의 운명에 끼친 유익이 아니라 해악 때문입니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모르는 이가 없는 것이 그들의 악명 때문이듯 아합 역시 하나님나라를 세워야할 이스라엘왕국의 사명을 붕괴시킨 그의 악한 통치로 인해 열왕기상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는 북왕국이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도록 만든, 분기점이 된 왕이락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분기점이 된 사건이 오늘 본문의 '나봇의포도원탈취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고대 이스라엘왕국의 운명 뿐 아니라 21세기에 하나님나라를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도전을 줍니다.
2.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나라
먼저 본문은 이 사건의 발단 부분입니다. 아합이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는 이야기의 하일라이트는 다음 설교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이 짧은, 사건의 서론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나라 곧 하나님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가 주로 왕의 거처였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북부의 이스르엘평원에도 겨울궁전이 있었습니다. 이 궁전에 머무르던 아합왕은 근처의 나봇의 포도원을 사려고 시도하는데, 나봇은 이를 하나님의 명령을 근거로 거절합니다.
(왕상 21:3) 그러나 나봇은 아합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포도원은 내가 조상들에게서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유산을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넘기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언제 어떻게 명령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후 가나안에 들여보내시며 여호수아를 앞세워 제비를 뽑아 땅을 모든 지파, 모든 가문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모세의 율법을 통해 명령하셨습니다.
(레 25:23) '땅을 완전히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내 땅에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나봇의 거절을 들은 아합왕이 보인 반응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왕상 21:4) 아합은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 시무룩한 채 궁으로 돌아가서 자기 침대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합이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원하는 땅을 얻지못해 화가 났습니다. 거절당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자신의 무력함에 기운도 빠졌습니다. 한마디로 삐졌습니다.
3. 법치와 평등의 나라
이 짧은 장면 하나에 엄청나게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선물하고자 하셨던 세상, 하나님의나라가 어떤 곳이어야 마땅한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나라는 법치주의국가였습니다. 아합왕의 요구는 고대세계의 유일한 생산수단인 토지를 매매하지 못 하게 하신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의 명령 곧 율법을 근거로 왕의 요구를 거절하여 자신의 생산수단 토지를 지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나라는 모든 백성이 평등한 나라였습니다. 아합은 일국의 왕이었지만 평범한 국민 나봇의 거절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돌아와 음식을 거절하고 끙끙댑니다. 일개 백성 한 명이라도 하나님의 법에 의해 자신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받는 나라,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는 권력이나 무력이 아니라 율법이 다스리는 나라였고 그 법 앞에 모든 백성이 심지어 왕까지도 평등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이 나라는 고대의 모든 왕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대서구선진국까지도 완전히 구현하지 못 한 법치와 평등의 이상이 실현된 나라였습니다. 고대의 어떤 왕국도 이런 이상을 실현은커녕 꿈을 꾸어보지도 못 했습니다. 왕과 귀족과 평민과 노예의 엄격하고 불평등한 신분제도 위에 세워진 고대의 모든 왕국에는 평등이란 개념이 아예 없었습니다. 국가통치기구로 법이 존재하기는 했습니다만, 이 법은 어디까지나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다스리는 도구요, 피지배계층의 행동을 제어하는 통치수단이었습니다.
4. 다른 나라의 법전
예를 들어, 고대왕국 중 가장 선진화된 법으로 평가받는 고대바벨론의 함무라비법전에도 '눈에는눈, 이에는이'라는 동해보복의법칙이 있었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신분일 경우에만 적용되었습니다. 신분이 다를 경우 처벌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귀족이 평민이나 노예를 해치면 몇 세겔의 가벼운 벌금을 내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반면 평민이나 노예가 귀족을 해친 경우 손발을 자르거나 사형시키는 엄벌에 처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는 신분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사회구성에는 신분제도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율법의 적용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 일개 백성이 혼자서도 부와 권력과 군대를 가진 왕의 요구를 율법에 근거하여 거절하고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법치와 평등의 이상을 실현한 유일무이한 이상사회였습니다.
5. 자유의 나라
셋째 하나님나라는 모든 백성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나라였습니다. 이 자유를 보장하는 핵심장치는 바로 하나님의 토지제도였습니다. 이 제도는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가문별로 분배된 토지의 소유주입니다. 단 한 사람도 생산수단인 토지가 없는 이가 없는 사회로 빈곤과 소외로부터 보호받았습니다. 둘째, 이 토지의 궁극적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모든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토지를 임대받아 사용하는 임차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토지는 매매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매매금지조항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는 최고의 안전장치였습니다. 왜입니까? 토지매매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농경사회에서 풍년일 때나 자본주의사회에서 경기가 호황일 때는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농사에는 흉년이 오고 경제에는 불경기나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럴 때면 이 토지매매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옵니다.
6. 경제위기와 양극화
흉년이나 전쟁이나 전염병, 팬데믹이 오면 농작물수확량은 크게 줄어듭니다. 그럴 때 평범한 백성은 부유한 이들에게 먹을 곡식이나 농사를 위한 종자를 빌릴 수밖에 없고 이 때 담보물은 농경사회의 유일한 생산수단인 토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흉년이 길어지면 이자에 이자가 붙어 도저히 갚을 수 없게 되고 토지는 뺏기거나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수단인 토지를 잃으면 자영농에서 소작농 신분으로 전락합니다. 토지를 잃은 이가 팔 것은 신분밖에 없습니다. 또 다시 위기가 오면 종으로 전락하고야 맙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도 모든 이방나라처럼 왕과 소수의 귀족이 절대다수의 토지를 독점하고 대부분의 백성은 노예로 전락하는 양극화사회로 고착되고 이 모순을 사회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반란, 내란, 외침 등 피의 혁명으로 나라가 망합니다.
똑같은 일이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도 경제위기 때에 일어납니다. 2008세계금융위기나 팬데믹같은 위기가 찾아오면 주택가격, 토지가격이 급락하고 금리는 인상됩니다. 실직하거나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지 못 하게 된 서민들의 집은 대거 차압되어 경매로 넘어가거나 헐값으로 시장에 나옵니다. 집주인들은 길바닥에 나앉아 비싼 임대료에 허덕이는 빈곤층이 되거나 홈리스로 전락합니다. 현대판 귀족인 거대사모펀드나 월가의 대형투자자들은 헐값으로 집을 쓸어담고 경기가 회복된 후 막대한 시세차익과 임대수익을 거두었습니다. 2008금융위기를 겪는 2년 동안 미국에서만 약 8백만 가구의 주택이 강제경매 곧 차압으로 집을 잃었고, 위기 직전 69%를 웃돌던 미국의 자가소유율은 위기 후 수십 년 만에 취저치인 63%로 폭락했습니다. 이런 위기를 겪을 때마다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집니다.
7. 하나님의 나라
토지매매를 금지하는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이 이런 양극화를 피하고 모든 백성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도록 하려고 디자인되었습니다. 바로 이 경제적 자유에서 사회적 자유가 나옵니다. 경제적으로 종속되는데 사회적으로나 자유로운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법치와 평등과 자유의 세 가지 가치가 모두 실현되어 당신의 백성이 누구도 예없없이 율법에 의해 자유와 평등과 복지를 보장받으며 사는 나라를 디자인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로 산다는 것은 죽을 때 천국에 갈 것을 기대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것 이상의 삶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구하며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첫째는 우리 주변의 나봇을 돌아보고 그들의 곁에 서는 일입니다. 아합과 같은 거대한 권력, 부패한 구조에 맞서 자신의 생명과 안전과 권리와 재산을 위협받는 나봇이 누구인지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권리가 빼앗기고 목소리가 짓밟힐 때 침묵하지 않고 그들의 곁에 서서 연대와 지지를 보내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 안의 아합을 경계하는 일입니다. 아합이 처음부터 나봇을 죽일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나봇의 기름진 땅을 갖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땅을 매매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했어야 할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 법을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이방나라의 왕들처럼 자신의 땅을 더 넓히고 싶은 유혹에 굴복했을 때 마침내 살인과 탈취라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는 데까지 나갑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고 지내면 욕망의 목소리가 커지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늘 듣고 귀기울이면 욕망의 소리는 잦아듭니다.
너희는 먼저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안위와 더 큰 풍요, 더 큰 성공을 먼저 구하는 이는 곁에 쓰러진 나봇의 신음도, 자신 안에서 점점 커지는 아합의 괴성도 듣지 못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귀에는 나봇의 신음과 아합의 괴성이 들리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