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나라의 붕괴
오늘 본문은 2주 전에 살펴본 왕상 21장 서두에 이어집니다. 기원전 9세기 경 북왕국을 다스리던 아합왕은 이스르엘골짜기에 있는 겨울궁전 근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사려고 시도합니다. 나봇이 토지를 매매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을 근거로 이를 거절하자 아합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왕궁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끙끙대기만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선물하신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왕국의 최고권력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호받는 백성의 권리와 재산을 감히 침해할 수 없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가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나라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방의 우상숭배를 수입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성도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2. 이세벨의 등장
상황을 반전시킨 인물은 누구입니까? 왕비 이세벨입니다. 7절에서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아합을 비웃고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섭니다.
(왕상 21: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그녀가 누구이길래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며, 이 등장이 왜 이스라엘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까? 먼저 그녀의 정체를 16장으로 돌아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왕상 16:31) (아합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본받아 범죄하는 일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고 시돈 사람 엣-바알왕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섬겼다.
3. 바알의 전도사
그녀는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공주였습니다. 오늘날의 레바논 해안도시인 시돈은 두로와 함께 고대 페니키아문명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베니게라고 묘사되는 고대 페니키아왕국은 후에 지중해 패권을 놓고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 한니발장군의 고향인 카르타고를 식민지로 삼기도 한 무역왕국이었습니다. 이 페니키아의 주요신앙이 바알숭배였습니다. 이 왕국의 왕인 엣-바알은,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 의하면, 원래 바알신전의 제사장으로서 왕인 펠레스를 암살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된 인물입니다. 엣-바알이란 이름은 바알의 은총을 입은 자 혹은 바알이 함께 하는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의 임마누엘과 같은 이름입니다. 즉 이세벨은 바알신전의 제사장이자 왕인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바알신앙을 물려받은 여자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스라엘에 몸만 왔을까요? 당연히 그녀의 바알신앙과 세상의 탐욕과 쾌락을 약속하는 바알의 세계관도 함께 가져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녀가 볼 때 아합의 근심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왕이 왜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져서 쩔쩔 매는 거지? 아버지는 갖고 싶으면 죽이고 빼앗고 다 차지해도 괜찮던데? 그녀는 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대로 남편 아합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율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의 권력과 계략으로 힘없는 일개 백성 따위야 죽여버리고 빼앗는 것입니다.
4. 트로이목마
이세벨을 아내로 맞은 아합은 우상숭배의 트로이목마가 왕국의 심장과 같은 왕궁 가장 깊은 곳을 차지하도록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심장부에 침투한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을 보호하던 여호와의 율법을 단숨에 박살내 버렸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은 사랑과 공의의 질서가 아니라 탐욕과 폭력의 질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이세벨은 무엇이며 어디에 자리잡고 있습니까?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생각과 세계관과 삶의 방식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파괴하는 세상의 가치관이 그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요일 2:15)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요일 2: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눈의 욕심과 삶에 대한 자랑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일 2:17) 이 세상도 그것에 대한 욕망도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우리 마음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품고 있으면 이세벨처럼 우리 삶을 망하게 하는 트로이목마가 되어 사랑과 믿음과 소망과 평안을 죽이고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과 탐욕과 허영과 정욕으로 우리 영혼을 짓누릅니다. 멸망하는 이스라엘처럼 우리 영혼을 망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이런 트로이목마가 숨어있지 않습니까?
5. 무너지는 율법과 나라
아합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왕이었다면 이스라엘이 애초에 이런 재앙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진작에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금지했었기 때문입니다.
(신 7:4) 만일 여러분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게 되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들의 유혹에 빠져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노하셔서 여러분을 즉시 멸망시킬 것입니다.
아합은 왜 이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이세벨과 결혼했을까요? 그의 탐욕 때문입니다. 북쪽의 강력한 해상왕국이자 무역중심지였던 페니키아 공주와의 정략결혼은 정치, 경제적으로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경고하신 대로 이세벨은 바알신앙과 그 제사장과 삶의 방식을 가지고 들어와서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던 여호와의 율법을 파괴하고 나라를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엣바알의 딸답게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남편의 이름으로 거짓편지를 써서 나봇이 사는 마을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거짓증인을 세워 그를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이 장로와 귀족들은 왕의 협박편지에 굴복하여 거짓재판을 열고 나봇을 죽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를 알리고 이 비겁한 왕은 못 이기는 척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가는 것으로 본문이 끝납니다.
6. 탐욕의 나비효과
아합은 북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왕이 되었음에도 만족하지 못 하고 또 다시 나봇의 포도원을 탐을 내었습니다. 아내가 무슨 짓을 할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여 백성을 보호해야 할 왕의 의무를 가볍게 저버렸고 그 대가로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탐욕은 한 의인의 죽음과 포도원 탈취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을 전역을 뒤덮을 탐욕의 강물을 가로막고 있던 율법의 댐을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이제 왕이 백성의 포도원을 빼앗았으니 그 동안 욕망을 억누르고 있던 권력자들, 왕족과 귀족들이 너도나도 또 다른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고대 왕국이 멸망 직전에 나타나는 현상 곧 자영농계급이 몰락하여 소작농과 종이 급증하고 대부분의 토지를 소수의 귀족들이 독점하는 대농장이 출현하는 양극화가 이스라엘에서마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중산층이 무너져 빈곤층이 급증하고 수퍼리치가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극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탐욕은 개인의 영혼 뿐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탐욕을 물리치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탐욕이 곧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도 말합니다.
(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않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모두 씻겼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입니다. 그 신뢰는 더 이상 돈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는 만족하는 마음을 누립니다. 아합처럼 탐욕이 여러분의 영혼을 집어삼키지 못 하도록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7. 주인이신 하나님
아합이 빼앗은 것은 나봇의 포도원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토지제도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토지제도는 모든 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신앙고백 위에 서 있었습니다. 아합은 결국 하나님의 토지를 빼앗은 것입니다.
(레 25:23) '땅을 완전히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내 땅에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우리의 탐욕과 정욕 역시 그저 한 사람의 마음이 죄악으로 병들었다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토지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자녀를 외면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는 불신앙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와 악을 멀리 하겠다고 신앙고백을 할 때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라는 속삭임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닮아가겠노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무너뜨리고 마귀의 나라를 세우는 길을 떠나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의 사랑과 공의의 질서 아래에서 살아가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스며드는 이세벨을 몰아내고 아합의 길을 떠나 그리스도 예수를 좇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