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부론인가
어느 목사님이 어릴 때 교회 부흥회에 참여했는데 강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강사가 이르기를, 예수 믿고 3년이 지나도록 부자가 못 되면 예수 헛 믿은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자신도, 자신의 집도 3년이 지나도록 부자가 못 되었으니 예수님을 잘못 믿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이 강사의 말은 현대교회의 소위 청부론 혹은 번영신학이라고 불리는 생각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부는 하나님이 잘 믿는 자녀에게 베풀어 주시는 대표적인 은혜였고 가난은 그 반대로 저주였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 calling으로 보고 소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부를 주신다는 믿음이 형성되었습니다. 20세기 미국에서는 자본주의의 부흥과 맞물려 큰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물질적 부와 성공을 주시니 긍정적 믿음을 가지고 성공을 구하라는 식의 가르침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2. 청빈론인가
이런 청부론과 대조되는 청빈론도 있습니다. 대학시절 기독교동아리에서 봉사할 때 신앙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하루는 고민상담을 하는 것입니다. '선배, 예수님 믿고 정말 감사하고 좋은데 마음에 부담이 있어요. 이제 저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거죠?'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기독교인은 마땅히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고 가난한 자를 위해 베풀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청빈론이라고 합니다. 청빈론은 4세기경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후 교회가 세속화되고 부유해지면서 영성을 잃어가자 교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이들이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원운동을 시작하면서 영성을 위해서는 가난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은 13세기 가난을 찬양하고 소유를 포기하는 영성을 추구하는 프란체스코수도회 등에 의해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가난 자체가 거룩함이 아니며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여 정직한 부를 창출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가르치며 청빈론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청부론과 청빈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기독교 신앙에서 대단히 중요한데 특히 돈에 의해 모든 것이 규정되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서구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돈을 무엇이며 돈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을까요? 오늘은 돈에 대한 기독교인의 바른 태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3. 돈이란
먼저 돈이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이 창조될 때 돈은 없었습니다. 그 후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돈은 노동과 자원의 교환도구로서 발생합니다. 여러분이 노동이나 가진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돈을 법니다. 역으로 그 돈을 주고 누군가의 노동이나 자원을 제공받습니다. 물건도 사는데요? 그 물건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어떤 자원을 가공함으로써 생산된 것이니 역시 노동과 자원을 제공받는 것입니다. 이 노동과 자원이 세상이 창조될 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피조세계 즉 자원을 다스리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다스리라.' 땅 곧 자원을 다스리는 행위가 곧 후에 돈을 버는 행위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다스리는 행위가 사명이라면 돈을 버는 행위 역시 사명이 됩니다.
이런 돈에 대한 태도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서도 반복됩니다. 중세에는 성직자나 수도자만이 부름받은 소명자라고 여겼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목사나 선교사만 성직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만인제사장설을 근거로 하여 정직하게 돈을 버는 모든 직업을 소명으로 선언했습니다. 비지니스맨, 육체노동자, 세일즈맨, 서비스직 모두 목사와 선교사처럼 부름받은 소명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직업이든, 도적질이나 사기꾼이 아니라면, 소명감을 가지고 충성되게 감당해야 하며 그 결과로 생긴 돈 역시 낭비하지 말고 잘 축적하여 부를 모으고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거나 축적하거나 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세속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바른 성경적 태도가 아닙니다. 땅을 다스리라고 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세속적, 비성경적이라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청부론이 맞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사명감을 가지고 돈을 벌고 모으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안타깝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성경은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죄가 인간의 노동을 사명에서 저주로 전락시키고 땅 역시 축복 아래에서 저주 아래로 옮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즉 노동과 자원의 교환가치인 돈도 타락시킨 것입니다. 이 돈의 타락 때문에 청빈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4. 돈을 사랑함의 위험
성경이 돈에 관해 주는 첫째 교훈은 우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세상가치의 질서를 창조주와 인간과 피조세계의 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존귀한 분은 창조주이시고, 다음은 그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며 마지막이 피조세계 곧 물질세계라는 말입니다. 돈은 여기서 인간의 노동과 자원이니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이 질서를 뒤집어 돈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하나님을 그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이런 태도가 곧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의 다름 아닙니다. 디모데전서는 경고합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온갖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이것을 가지려고 열망하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고통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5. 우상이 되는 돈
돈은 인간이 다스리고 관리할 대상이지 사랑하고 섬길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돈을 다스림과 사랑함이 어떻게 다를까요? 여러분이 좋은 텐트를 샀다고 가정하십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텐트라 당장 캠핑을 떠났습니다. 텐트를 치는 시간도 너무 즐겁습니다. 이제 밤이 되었고 쌀쌀해져서 강가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텐트에 들어와 자고 싶어 달려옵니다. 야, 잠깐, 뭐야? 온 몸에 물이랑 진흙이 묻은 채로 이 텐트에 들어오겠다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안 돼, 깨끗하게 닦고 들어와. 아빠, 이 캠핑장에는 샤워실이 없어, 그냥 털고 자면 안 돼? 안 돼! 미쳤어? 그럼 이불 줄테니 밖에서 자. 텐트를 깨끗하게 지켰지만 정작 아이들은 텐트에서 못 자고 밖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잤습니다. 동생네가 연락이 왔습니다. 형, 텐트 좋은 거 샀다며? 다음 주에 우리 캠핑 가는데 좀 빌려주면 안 돼? 야? 이 텐트가 얼마짜린지 알아? 우리 애들도 안 재우며 지켰는데 네가 가져가서 더럽히겠다고?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거야?
이 사람은 텐트를 지켰지만 아이들은 감기가 걸렸고 동생과는 서먹서먹해졌습니다. 아이들보다 텐트를 더 사랑하고 동생보다 텐트를 더 가치있게 대했습니다. 이것이 악의 뿌리이며 우상숭배라는 말입니다. 이 우상숭배는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많은 고통이 뒤따르고 상처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마 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하나님과 인간과 돈의 질서를 뒤집어 돈을 하나님 자리에 올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돈은 돈의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인간보다 더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잃고 사람을 잃고 생명도 잃습니다.
6. 성실한 매니저
돈에 관한 두 번째 교훈은 돈을 충성되게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돈을 무시하는 것을 경건인 줄로 오해했습니다. 청빈론에 선 것입니다.
'나는 돈에 대해 신경 안 써,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먼저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잖아, 그러면 먹을 것, 입을 것은 다 더하여 주신다니까, 돈 걱정 할 필요 없어.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 하나님이 다 더하여 주신다니까.'
이는 돈 걱정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돈 관리를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태도입니다. 오디션을 서는 가수지망생이 열심히 노래연습을 하되 심사위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염려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기에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오디션이 다가오는데도 목관리도 않고 노래연습도 않는 것은 관리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런 이는 자신은 결과를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사실은 준비되지 않았기에 두렵고 떨리고 준비된 노래도 무대에 올릴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래연습을 하되 결과를 염려하지 않는 것처럼 돈에 대한 태도도 부지런히 관리하되 그것을 사랑하거나 그로인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 므나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일관되게 돈을 잘 관리하는 매니저가 칭찬과 상을 받을 것이며, 이를 게을리한 매니저가 꾸중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 25:21) 그래서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너는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여라.' 하였다.
7. 복을 퍼뜨리는 돈
그럼 돈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세상에 복을 주시고 퍼뜨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과 피조세계에 생명과 번영의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도 복을 주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쉬운 말로 바꾸면 세상에 생명과 행복을 퍼뜨리는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벌고 모으고 쓰는 돈이 세상에 생명과 행복을 퍼뜨리게 할 때 우리는 돈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벌고 얼마나 많이 모으고 어떻게 원없이 썼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벌고 모으고 쓰는 과정에서 얼마나 우리와 가정과 일터와 이 세상에 생명과 행복을 더했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으로 인해서 동료와 고객과. 이 사회에 행복이 더욱 퍼졌습니까, 고통이 더욱 퍼졌습니까? 여러분이 돈을 모음으로 인해 가족과 친지와 이웃에게 행복을 얼마나 더하였습니까, 상처를 더하였습니까? 여러분이 돈을 씀으로 인해 세상에 행복이 퍼졌습니까, 불행이 퍼졌습니까?
100만 불을 벌고도 세상에 단 만 불어치의 행복도 더하지 못 하는 이가 있는 반면, 만 불을 벌고도 세상에 100만불 어치의 행복을 더하는 이도 있습니다. 사기꾼과 도둑과 부정직한 이익을 얻는 모든 이는 만 불을 벌 때마다 세상에 100만 불어치의 고통을 더합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직원과 비지니스맨은 만 불을 벌 때마다 세상에 10만 불, 100만 불의 행복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도르가는 그의 돈으로 세상에 큰 행복을 퍼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가난한 과부들이 몰려와 그녀가 생전에 자신들에게 만들어준 옷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드로가 그녀를 위해 기도하자 죽은 도르가가 되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퍼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되살아남은 하나님이 그녀에게 주실 영원한 생명의 상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얼마만한 행복을 퍼뜨리는 성도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