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1 “복을 주시려고”(행 3:12-26) – 김도완 목사

11월 1, 2026

Series: 주일예배

Book: 사도행전

1. 신앙의 이유

사람들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많은 대답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요? 한 때 한국교회에서는 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행복하기 위해서'와 같은 말이지요. 요즘은 이렇게 잘 답하지 않는데, 기복신앙으로 비췰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의 문제는 이 복을 현세적인 부귀영화로 이해한 것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한다는 마음가짐 자세는 잘못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너무나 성경적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과정에서 하나님은 세 번이 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는 피조세상의 생물을 향해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둘째는 인간을 향해 역시 복을 주시며, 모든 생물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복에 더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사명까지 더해 주셨습니다. 셋째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며 복을 주시며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이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도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시기를,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가 복이 되게 하고 그와 그 후손으로 인해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성경의 약속으로 보건대, 하나님은 세상에 복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에서도 하나님은 복을 주시려고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다 합니다.

(행 3:26)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종(그리스도)을 택하여 먼저 여러분에게 보냈는데 이것은 여러분을 각자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은 어떤 복일까요?

2. 치유의 기적

오늘 본문 행 3장 중반부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일어난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으로 교회가 탄생한 직후의 일입니다.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 곧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던 문 앞에서 구걸하던 지체장애인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칩니다. 그가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보고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는 성전 동쪽회랑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모여든 군중을 향해 설교한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본문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3. 하나님의 선하심

첫째 복은 새롭게 되는 복입니다. 이 복을 받기 전 우리는 어떤 상태입니까? 자신도 모르는 죄로 하나님께 대항하던 죄인이었고 그로인해 심판받을 운명에 놓인 가련한 존재였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도록 넘겨준 죄를 지적합니다. 이런 악한 짓을 한 죄인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이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무지하여 저지른 죄인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이 유대인들의 죄를 비롯하여 인류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려고 진작부터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죄없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 모두의 죄짐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죄값을 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심으로 죽음의 권세마저 무너뜨리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신 후 죄인들이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19절입니다.

(행 3:19)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죄가 씻음을 받고 주님 앞에서 새로워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4. 새롭게 되는 복

19절은 새롭게 되는 길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회개와 돌아옴은 같은 말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도 두 단어를 나란히 쓰는 이유는 회개를 마음의 돌이킴으로, 돌아옴은 삶의 돌이킴으로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참된 회개란 마음과 삶이 모두 돌이킨 것을 의미합니다.

눅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회개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먼나라에서 방탕하게 살던 작은 아들은 빈털털이가 되어 굶주리게 되자 먼저 마음으로부터 돌이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뉘우칩니다. 그리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가 마음으로 뉘우쳤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큰 아들은 집을 떠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아버지 집이 아닌 작은 아들이 즐긴 쾌락을 부러워하고 있었으므로 그 역시 회개하지 않은 탕자였습니다. 마음으로 돌이키고 삶으로도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작은 아들을 맞은 것처럼 죄인을 맞아주십니다.

5. 회개한 새피조물

그 때 아버지가 작은 아들에게 좋은 옷과 반지를 끼워준 것은 그의 잘못을 용서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녀에게 죄씻음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되는 복을 누립니다. 이 새롭게 됨을 고린도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후 5: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입니다. 옛 사람은 없어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때 무엇이 새롭게 됩니까?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됩니다. 전에는 심판자와 죄인의 관계였는데 이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 상태를 의롭게 되었다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다음으로 신분이 새롭게 됩니다. 전에는 지옥에 속한 죄인이었으나 이제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나라를 상속할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새롭게 됩니다. 성령님이 마음에 거하시며 더러워진 집을 깨끗이 청소하듯 우리 마음의 모든 악한 욕망과 죄와 악을 성령의 능력으로 씻어내고 의와 거룩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새 마음을 주십니다. 이제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마음으로 선하신 하나님과 살아가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새롭게 됨, 구원을 누리려면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관계와 신분과 마음으로 살아가십니까? 참된 회개와 돌이킴으로 새롭게 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6. 새롭게 만드는 복

새롭게 되는 복에 이어 성도가 누리는 두 번째 복은 새롭게 '만드는' 복입니다.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되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 피조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20-21절입니다.

(행 3:20)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 미리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실 것입니다. (행 3:21)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오래 전에 거룩한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까지는 하늘에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만물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계시고 마침내 피조세계가 완전히 새로워질 때까지 하늘에 계시다가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그 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데에도 동참해야 합니다. 어떻게 동참합니까?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서입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행 3:22) 모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의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 한사람을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모든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행 3:23) 그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분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반역하던 이 피조세계를 새롭게 재창조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신 약속이기도 합니다. 25절입니다.

(행 3:24) 그리고 사무엘 때부터 그의 뒤를 이은 모든 예언자들도 이 때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행 3: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며 하나님이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은 계약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을 통해 세상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모든 민족이 새롭게 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7. 순종의 그림

사랑이가 여름단기선교에 갈 때마다 선교센터와 학교 등 건물벽에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옵니다. 무미건조하고 칙칙한 건물벽이 이 그림으로 인해 예쁘고 화사할 뿐 아니라 메시지와 비전을 담은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곳에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그림을 보며 이 교회와 학교와 공동체가 바라보는 비전과 철학과 분위기를 보고 공감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볼 때마다 마음에 꿈과 비전이 그려집니다. 사랑이는 그 건물과 사람들의 마음과 마을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이는 그림을 그릴 때 제일 행복한 아이입니다. 그 그림이 선교센터와 사람들의 마음에 꿈을 주는 것으로 인해 수십, 수백 배로 행복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상주실 때에는 수천, 수만 배로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그림을 그립니다. 가정에서 순종할 때 새로운 가족관계가 그려집니다. 일터에서 순종할 때 거룩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경제생활, 사회생활, 이웃과의 관계에서 순종할 때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왕 되신 새로운 세상이 그려집니다. 반면 불순종할 때는 오히려 마귀의 나라가 그려집니다. 그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과 탐욕과 시기와 미움과 다툼과 교만의 어둡고 난잡한 색으로 가득한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보는 이마다 미움과 살인과 압제와 착취와 전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불순종의 그림이 아니라 순종의 그림을 그릴 때 마치 바둑에서 한 수, 한 수가 쌓여 한 집, 한 집을 따먹고 점점 내 영토가 넓어지고 마침내 바둑을 이기듯 하나님나라의 집이 하나하나 더 서고 마귀의 나라가 점점 좁아지다가 마침내 하나님나라의 완전한 승리가 선포될 날이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세운 계획이요, 지금도 행하고 계시고 마침내는 완성하실 계획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실 두 번째 복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복입니다. 이것이 왜 복입니까?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자신도 행복하고 세상을 치유하고 복을 퍼뜨리니 행복하고 또 하나님이 헤아릴 수 없는 상을 주실 것이기에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가정과 일터와 온 세상에 아름다운 순종의 그림을 날마다 그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